비얄카사르 데 시르가에서 레디고스까지
지난 밤에 나에게는 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잠에 취해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던 어젯밤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었나보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한 할머니가 나에게 물어오셨다.
"너 괜찮니?"
모든 분들의 시선이 나에게 머물렀다. 뭐가 괜찮냐는 건지 도통 알지 못했던 나는 사람들과 아침 식사를 하려고 테이블에 앉아서야 비로소 지난 밤의 일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몸 구석구석을 더듬거렸다. 지난 밤의 꿈이 무엇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청나게 몸무림을 치던 나는 결국 2층 침대에서 침낭 째 애벌레 모양으로 고공 낙하를 했던 것이다. 분명 머리 맡에 서랍장이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을텐데 벌떡 일어나 다시 사다리를 기어 올라갔던 기억 뿐이던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내 아래 침대에서 주무셨던 할머니를 통해서 들었다. 그 얇디 얇은 침낭 째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침대로 올라가 다시 잠을 청한 나만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었고 내 주변 침대에서 주무시던 두 분의 아주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한 중년 부부가 잠에서 깨어 내 다음 반응을 살폈다고 했다. 운동 신경이 좋았던 것인지,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님 둘 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이지 멀쩡했다. 그 날의 에피소드는 같은 알베르게에서 잠을 청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구전처럼 전해져 유일한 동양인 여자아이 였던 나에게 모두가 괜찮냐고 안부를 물었고 호스피탈레로는 간단한 아침을 먹던 나에게 와서 걱정을 해주는 결과까지 초래했다. 그는 다음부터는 1층에서 잠을 자라는 당부도 아끼지 않았다. 아마 지난 밤에 지독한 꿈을 꾸었던 모양이다. (그 날 이후로는 덕분에 2층 침대에 올라가지 않게 되었다.)
처음 이 곳에 도착했을 땐 햇빛이 들지 않고 방도 무척이나 어두워 베드버그가 있을 까봐 몇 번이나 핸드폰 불빛으로 침대를 살펴보았는데 지난 밤 깊디 깊게 잠든 나에게 침대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는 벌레의 존재는 그리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래 침대에서 주무시는 할머니의 코고는 소리에 잠들 수 있을지 무척이나 걱정했었는데 30km의 강행군에 와인을 한잔 마신 후라 걱정이 무색할만큼 금새 잠에 빠져 들었다. 이번 알베르게는 숙박도 아침도 도네이션이기에 양심에 맞게 금액을 지불했다.
길을 걷다보면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 중 나눌 만한 무언가가 없다는 사실은 제일 아쉬운 점 중 하나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가끔 들리곤 하는 카페나 알베르게에서 한국인들이 남기고 간 그림과 익숙한 한글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요동치곤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취미로 악기 하나 혹은 그림 솜씨를 좀 길러둘 것을.. 하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몇 일 전, 작은 마을 하나를 지나던 중 몸이 불편한 누군가가 손으로 페달을 저으며 나아가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뒤이어 세 명의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그의 뒤를 따라 순례길을 달리는 중이었다. 몸이 불편한 친구의 앞 뒤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친구의 빠르지 않은 페들링을 기다려주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잠시 울컥거리고 말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평범함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깨달음과 마주한 나는 그 깨달음이 때론 '부끄러움'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마음의 끝에는 내 당연함을 나눌 수 있는 삶이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 눈에 띄진 않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내일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고도 다짐했다.
산티아고까지의 여정을 시작하고 8로 시작되는 숫자가 어느덧 4로 바뀌었다. 언제쯤이면 이 길의 끝에 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금새 스스로의 걸음에 대한 뿌듯함으로 이어졌다. 어느새 많은 걸음 끝에 여기까지 왔다. 때론 혼자서 그리고 또 때론 함께 말이다. 순례길을 걸으며 나는 조금씩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마음먹은 무언가를 훨씬 더 용감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어디서든 씩씩하게 그리고 나 다운 모습으로 설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조금씩 선명하게 자라나가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걸음을 걷는터라 길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시야가 깨끗하지 않은 와중에서도 나는 앞서가는 누군가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나는 상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안개 속에서 겨우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이자 그제서야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것 이를테면 가장 쉬운 예로 '미래' 같은 것들을 용기있게 대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하루하루 걸음을 걸을 때마다 답보단 질문의 갯수만 늘어나는 중이었다.
문득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라는 책이 떠올랐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마주한 주인공이 어둠을 이겨내던 구절이 떠오르며 문득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길에 대한 그림이 머릿 속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소설가들은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그 것들을 글로 풀어내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쩌면 그 두려움을 이겨내던 감정은 파울로 코엘료 자신의 이야기 이기도 할 것이며 그 경험이 훗날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을 가지고 글을 써내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경험이 결국 먼 나라에 살아가고 있던 나에게로 와서 실현이 된 것일테고 말이다.
새벽과 아침은 언제나 혼자의 시간을 가지는 편이다. 오늘도 역시 H보다 앞서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짙은 안개 속을 걸으며 꼭 듣고 싶은 노래가 있었다. 몇 일 전 H의 핸드폰 속에서 발견한 노래로 브라운아이드 소울의 '폭풍속의 주'라는 곡, 꼭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기독교나 카톨릭 신자가 아닌 나에게 그 노래가 주는 영감은 꽤나 컸던 모양이다. 10번을 내리 반복해서 들으며 어쩌면 H가 길을 걸으며 말하던 그 어떤 존재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며 그제서야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멀리서 터벅터벅 발소리를 내며 걸어오는 H를 기다렸다. 처음으로 이 아이가 걸음을 걷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이지만 분명 이 아이의 모든 걸음에는 작은 힘이 담겨 있었다.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리지만 나는 H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그 모든 순간에 우리의 나이차를 느껴본 일이 없었다. 생각의 성숙은 아마 나보다 H가 훨씬 앞서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짙은 안개를 오랫동안 걷고서 드디어 캐리온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비가 아닌 안개로 잔뜩 젖어버린 머리를 잠시 말리기 위해 오래된 건물 아래에 잠시 배낭을 내려놓았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는 우산으로 막을 수 있지만 안개는 소리없이 천천히 스며드는 터라 막을 새도 없이 옷과 머리카락이 온통 축축하게 젖어 버렸다.
이 작은 마을에는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있는데 그 곳에서는 목걸이를 나누어 주며 특별한 의식을 행한다고 한다. 수녀님들의 축복을 받은 순례자들이 이미 길을 떠난 후라 마을은 꽤나 한산했다. 등교하는 아이들 몇 몇이 나와 H를 힐끔거리고 돌아보며 웃었다. 아침부터 희미하게 풍겨오는 빵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나는 동네 빵집에 들러 유일한 이방인의 신분으로 커다란 크로아상과 바게트를 하나씩 샀다. 오늘의 점심은 마을에서 조달한 빵으로 만든 엉성한 샌드위치가 될 예정이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신발을 신고 걸음을 걷는 H와 누구보다 또렷한 색감으로 걸음을 걷는 내가 함께 길을 걷고 있다. 이미 한 번의 순례길을 걸었던 H의 신발이지만 아버지를 이어 아들이 다시 그 신발을 신고, 같은 길을 걷는 일은 꽤 마음이 뭉클해지는 일이어서 나는 그의 신발을 이유없이 좋아했다. 오래된 것들은 저마다의 온기를 지니고 있는 법이니까.
마을을 벗어나 우린 다시 푸르름 속으로 들어섰다. 날씨는 여전히 흐리지만 다행히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우비를 꺼내 입는 일은 생각보다 꽤나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뜨거운 햇살 아래를 걷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기에 비가 오지 않는 흐린 날씨는 그 무엇보다 순례자에게 최적화된 날씨임에 분명하다.
길을 걸으며 종종 앞서 길을 걸은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하곤 한다. 그들은 때론 일행들에게 자신이 오늘 머물 곳의 위치를 남기기도 했다.
'스테파니, 나는 오늘 어디까지 갈거야. 거기서 보자!'하고 말이다.
그 흔적들을 보며 H는 나에게 말했다.
"누나, 내가 누나한테 '제시, 빨리와!' 라고 남긴 거 봤어? 돌멩이 위에다 써놨었는데!"
제시..가 어디 한 두명이고, 돌멩이가 어디 한 두개였어야 말이지.
어제 30km를 걸었던 나와 나보다 더 많은 걸음을 걸은 H는 완전히 넋다운 상태였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H는 결국 길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지난 밤 먹은 것이 잘못 된 것인지 내 배는 한창 아우성을 치고 있었고 온 몸과 얼굴을 땀으로 뒤덮어버리고 있는데 말이다. 벌러덩 누워 배낭 안에 넣어둔 바게트를 먹고 있는 녀석을 두고 가기도, 그렇다고 눕거나 앉아 있자니 불상사가 벌어질 것 같았던 나는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침착한 마음으로 심호흡을 하고 식은땀이 조금씩 가라 앉을 무렵, 벌러덩 누운 우리 곁에는 또 다른 독일인 커플이 자리를 잡았다. 순례길에 어울리지 않는 까만 스타킹에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는 남자친구에게 배낭을 맡기고 걷고 있었는데 까만 스타킹 위로 난 구멍에는 피가 나고 있었다. 가방 깊은 곳에 넣어둔 대일 밴드가 생각나 주섬주섬 짐을 꺼내 대일밴드를 건내자 에바는 고맙다는 인사와 미소를 건냈다. 이 길을 걸으며 내가 받았던 도움들에 비하면 대일밴드 두 어개 즈음은 아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상처를 치료하고 한 숨 돌리던 그들에게 부엔카미노, 라고 인사를 건내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을이 보인다. 사실 제일 힘들 때는 마을이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이다. 마치 화장실이 무척이나 급한데 화장실이 눈 앞에 보이는 순간부터 참을 수 없어지는 그런 마음처럼 말이다. 나는 급한 볼일을 위해 Bar에서 맥주 한잔을 주문하고 화장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신에게 감사하기로 했다.
점심을 대충 해결하고 길을 나서자 길 위에는 후니와 나 온전히 둘 뿐이다. 점심을 먹고 난 뒤 길을 걷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시 고독과 싸우며 길을 걷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고독함도 혼자가 아닌 둘의 몫이 되자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도 없고 지나는 차도 없는 이 넓은 도로와 들판에서 우리는 잠시 예능인이 된다. 성대모사를 하다가 노래를 목청껏 부르다가 잠시 화장실을 해결하는 후니를 두고서 나는 홀로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이미 길을 지난 사람들이 뒤따르는 이들을 위해 길 위에 크고 작은 흔적을 남겨 두었다. 지금까지 봐온 그 어느 화살표보다 더 크고 또렷한 모습이다. 삶에도 종종 이런 화살표 하나 즈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때로 그 화살표들은 누군가가 나에게 던져준 기회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참 많은 기회들과 마주했는데 때론 그 기회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놓쳐버리기도 했다. 이따금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였고 때론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조용히 밟아나가는 걸음을 내려다보며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삶을 돌아본다. 거울을 제대로 들여다 본 적이 없는 삶이었다. 나는 기회 속에서도 긍정을 찾아내기 보다는 걱정을 기어이 발견해내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내가 오랜시간동안 사랑을 하지 못한 이유는 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길이 끝나는 곳에서 나는 아마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내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는 일, 그 것이야말로 내가 이 길에서 가지고 가게 될 가장 큰 가치일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걸으며 H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마을 표지판을 발견하고선 피곤함이 밀려와 아스팔트 도로 위에 벌러덩 누워 H를 오래오래 기다렸다. 신발도 양말도 모두 벗어던지고 그렇게 벌러덩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 보는 일이 거짓말처럼 행복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레디고스라는 마을.
일찍 샤워를 마치고 나와 마을을 구경하다 과일과 채소를 파는 트럭을 발견했다. 이미 몇몇 순례자들은 과일장수에게서 사과와 복숭아 같은 과일을 사먹으며 나에게 인사를 건냈다. 과일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저렴해기쁜 마음에 방방 뛰었더니 조금 전 과일장수 아저씨에게서 받은 체리가 주머니에서 우르르 떨어져 모두에게 의도치 않은 웃음을 안겨주었다. 역시 나는 몸으로 웃기는 일이 적성에 맞는 모양이다.
Bar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일기를 쓰고 있는데 레이몬드 할아버지가 곁에 오셨다. 할아버지는 벨기에에서 보내진 돈을 뽑아야하는데 ATM기 사용법을 알지 못하겠다며 나에게 내일 지나는 큰 도시인 사아군에서 잠시 도움을 줄 수 없겠냐는 요청을 하셨다. 약속 시간을 정하고 다시 일기를 쓰던 중 옆 자리에 앉은 언니가 신기한 걸 주문하기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더니 나에게 한 모금 맛보는게 어떻겠냐며 쿨하게 술잔을 내미셨다. 태어나서 처음 마셔본 이 알콜의 이름은 '클라라 콘 리몬'이란다. 환타와 맥주가 적당히 섞인 음료로 적당한 당도와 취기를 선물하는 역할을 했다.
오늘 저녁은 좁디좁은 부엌에서 눈치를 봐가며 요리를 하고 몇 없는 테이블을 찾아 식사를 해야했는데 순례길도 사람이 걷는 길인지라 성숙하지 못한 자아의 어른들도 이따금 만나게 되곤 했다. 우리가 요리하는 모습이 못마땅한지 친근한 척 말을 걸며 우리의 요리를 힐끔거리시기도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말을 툭툭 내뱉으며 깔보시기도 하던 아저씨, 우리가 식사하는 모습을 힐끔거리고선 쑥덕쑥덕 일행들과 뒷말을 하는 아주머니..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때론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할 수 있지만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결국 남을 낮추며 본인의 의미를 찾는 역설을 행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오늘은 숙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한국에서 이 먼 길을 날아온 언니들이었다. 남들이 모두 우러러 보는 직장에 다니는 삶이 그저 좋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인지 좋은 직장을 박차고 나온 언니의 얼굴이 무척이나 후련해 보였다.
6월 10일
자욱한 안개 속을 걸으며 내가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이, 짙은 안개 속에서 앞서가는 누군가가 있음을 발견한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깨달았다. 아마 인생도 그럴 것이다. 나보다 앞서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위안이 되는 일 말이다. 아이러니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새로운 모습들을 매일 마주하면서 길을 걷고 있다. 많은 날들은 실망스러웠지만 또 다른 날들은 나라는 사람이 꽤 마음에 들기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