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은 감사하는 삶을 위한 선물

사아군 - 렐리에고스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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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틀 무렵,

지난 밤 대충 싸놓은 짐을 챙겨 들고 사과 한 알을 베어 물며 길을 나섰다. 밤이 아침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시간, 이 시간만큼 나를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순간이 있을까. 내 앞에 놓인 모든 길들이 오롯이 나만의 길이 되는 축복과도 같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이 이렇게나 다양한 색을 감추고 있었는지, 내가 이렇게나 벅차고 설레이는 감성을 지닌 사람인지를 새삼스레 깨닫는다. 매일 아침, 오로지 나에게만 들리는 유난한 심장소리를 들으며 나는 매일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걸음을 내딛고 있다.



400여 킬로미터가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았던 것이 어제 같은데 어느새 앞자리가 3으로 줄어 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오묘한 기분을 안고 걷는다. 언제 끝이 날까, 빨리 그 곳에 닿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엔 간절했지만 다른 한 켠에서는 조금 더 천천히 길을 걷고 싶다는 욕심이 새어 나왔다. 그토록 걷고 싶었던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은 매일 아침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한다. 발끝으로 전해지는 고통에 눈물이 나려고 할 때마다 이 길이 너무나 간절했던 나를 떠올리곤 한다. 무언가에 '간절함'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를 말이다. 결국 모든 일들은 마음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는 걸 새벽이, 한 걸음씩 내딛는 걸음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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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1만 시간 동안의 남미>라는 책에서 그런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차가움이 없다면 뜨거움이 없고, 쓴 맛이 없다면 단 맛을 못 느낀다. 집시처럼 떠돌다가 느낀 간만의 여유는 더 없는 천국이었다. 고생을 못해봐서 매사에 시큰둥한 사람이 되느니 모자람과 결핍을 알아 남들보다 더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의 글이 내 가슴에 들어오고선 아주 오래오래 남아 깊고 깊은 여운을 남겼고 찰나 같은 순간에 문득 떠올라 내 삶을 더 뜨겁게 만들어주었다.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기에 5년간 조금씩 준비해온 이 길 위에서의 모든 순간들이 나에게 소중할 수 있는 것임을 다시금 떠올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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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는 모습을 보며 걷고 있다. 광활한 자연 앞에서 나는 종종 생각했다.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사사로이 걱정하며 지내왔는지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곤 했다. 걱정을 해도 내 손을 이미 떠나간 일이라면 담담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편이 차라리 더 나은 선택이었을텐데 말이다. 나는 그렇게 지나간 것들을 보내는 법을 몰랐다. 손 위에 움켜쥐고 몇 번이고 다시 꺼내어 아픈 상처를 자꾸만 더 곪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길을 걷는다고 해서 앞으로 내가 깨달은 것들을 행하며 살 수 있을까 혹은 살아가는 동안 이 깨달음을 잊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아마 나는 힘들고 외롭고 흔들리는 순간들마다 이 길을 걷던 내 모습을 생각하며 지금의 깨달음을 몇 번이고 곱씹고 되새기며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나는 무릎을 툴툴 털어내고 다시 일어서서 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상상했다. 마음이 부쩍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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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 밤 사아군 알베르게에서는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LA에서 온 발렌테였다. 미션스쿨 인터뷰에 뽑힌 몇몇 학생들을 산티아고로 보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산티아고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나와는 이미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어 우리는 오늘 잠시 동행이 되었다.


"굳모닝! 발렌테, 다른 친구들은 어디가고 H랑 걷고 있는거야?"


"친구들이랑 어쩌다보니 떨어지게 되었어. 사실 친구들과 매번 같이 다니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거든. 그래서 잠시 혼자 걷고 싶다고 얘기하고 오늘은 홀로 걷게 되었지.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네. 어제 만났던 아저씨는 사랑하던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그 아픔에 힘들어하다 우연히 이 길을 알게되어 걷게 되었다고 하시더라. 매일 부인을 축복하며 걷는데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하셨어. 대단하지 않니? 그런데 넌 왜 이 길을 걷게 된거야? 물어봐도 괜찮을까?"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던 이유가 처음이었어. 이 곳에 오려는 계획은 아주 오래 전부터 세워두었는데 떠나오며 아빠와 트러블이 꽤 있었지. 결국 아빠 몰래 배낭을 메고 이 곳까지 왔어. 그런데 걸으며 계속 생각하고 그 생각의 꼬리를 잡고 깊이 깊이 생각하다보니 이 모든 갈등들이 사실은 아주 어릴 때 있었던 일 때문에 트라우마처럼 나를 옭아매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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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H는 혼자의 시간을 가지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는동안 발렌테는 나에게 덤덤하게 그의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나는 어머니, 여동생과 살고 있어. 아버지가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셨지. 엄마는 그 일로 많은 고통을 받으셨고 우리 가족은 아버지 없이 살아내기 위해 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꽤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야 했어. 나는 학비를 아끼기 위해 미션스쿨에 오게 되었고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고 있어.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나도 많은 방황을 겪었고 가족과 어머니에게 상처를 준 아버지가 너무나도 미워 10년 동안 대화조차 하지 않고 지냈었지. 미션스쿨에 들어온 후로는 매일 기도를 했고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지더라구. 용서하기보다는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 난 정말 오랫동안 기도했어. 아버지를 위해서 말이야. 그리고 지금은 종종 아버지와 따로 만나서 밥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곤 해. 지금의 아버지는 내 꿈을 응원해주고 계셔"


덤덤한 듯 내 곁에서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였지만 아주 오랜 시간동안 남 모르는 아픔에 고통받고 원망하기도 하면서 오늘의 성숙한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보여주고 있는 성숙함은 오랜 기도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나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흘러 이 곳에 올 수 있었던 이유와 과정들에까지 닿았다. 5년 동안 간직했던 나의 꿈을 응원해준 소중한 친구들, 부족한 친구의 주머니를 걱정하며 여기저기서 편지와 책 언저리에 돈을 담아 건내주던 이야기를 들으며 발렌테 그 역시도 친구들이 그를 위해 모금해준 돈으로 비로소 이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라 말했다. 그는 자신을 도와준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길이 끝난 후 미국에 돌아가면 다른 사람들을 위한 나눔에 관한 비즈니스를 시작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가 이젠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면서 그는 밝게 웃었다. 그의 확신에 찬 반짝이는 눈과 온 몸에서 풍기는 성숙, 그는 그 존재 자체로도 이미 충분히 멋진 사람이었다. 그의 말이 끝난 후 나는 그를 꼬옥 안아주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는 분명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고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었다. 나는 잠시 속도를 줄여 H와 발렌테, 아름다운 두 사람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되리라 생각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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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심취해서 걸음을 걸으며 의도치 않게 대체 루트로 들어섰다. 덕분에 마을 하나와 마주한 우리, 발렌테는 이 마을에서 오늘 여정의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 했다. 끝도 없는 땡볕의 평지를 걸어야 한다는 마의 코스를 앞두고 나와 H는 잠시 망설였지만 나는 발렌테의 이야기를 원동력삼아 길고 뜨거운 길을 조금 더 걷기로 마음 먹었다. 헤어지기 전, 우리는 마을의 그늘에서 함께 쉼표를 찍었다.


아직 알베르게가 문을 열지 않은 시간, 공터에 짐을 풀고 간단한 주전부리를 사와 허겁지겁 배를 채운다. 오늘은 낮부터 맥주 한캔과 비스켓을 먹으며 앞으로 몇 시간동안 고생할 발에게 오랫동안 바깥 세상을 구경시켜주는 중이다. 바닥에 누워 한참 쉬고 있던 중 발렌테와 후니의 시선이 내 배낭에 향해 있는 걸 발견했다. 60L라는 어마어마한 크기도 크기이지만 그들은 한번씩 내 배낭을 들어보고서는 놀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여전히 11kg 언저리를 기록하는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걸음을 옮기는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내 배낭을 짊어지기 전과 후로 조금은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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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발렌테와 길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며 작별의 포옹을 나눴다. 인연이라면 분명 다시 만나게 될테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함께 말이다. 마을을 터벅터벅 벗어나자 거짓말처럼 그늘 한 점 없는 길이 등장했다.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 처음 들어 섰을 때 H와 나는 분명 발렌테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성숙함에 감탄사를 내뱉었는데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묵을 지키기 시작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를 걸으며 때론 아무런 생각이 없기도, 생각이 넘쳐 흐르기도 했다. 지평선 끝자락에 희미하게 보이는 산자락을 멍하게 보며 걷다가 문득 저 산들 중 하나를 멀지 않은 날에 건너게 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멀리서 보면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일들도 가까이서 마주했을 땐 별거 아닌 일이 되어버리는 순간들이 떠올랐다. 때로 우린, 시작도 해보기 전에 너무 많이 주춤거린 것은 아닐까. 시작은 누구나 지금처럼 작은 한 걸음에서부터 비롯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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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긴 길을 걸으며 오늘도 H는 나에게 그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 무엇도 믿지 않는 나에게 이 아이는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겠지만 언제나 우리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한다. 이 아이를 통해 지난 대학시절,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던 한 선배를 떠올렸다. 대학교 독서토론 클럽 회장을 하던 중 동아리 승격 과정을 거치며 만났던 동아리 연합회 부회장 역할의 선배였다. 그를 이른 새벽 도서관에서 만나고선 그 간의 일들에 대한 감사 쪽지와 함께 캔커피를 남겼었는데 그 때의 일을 계기로 반 년이 지난 뒤 우리는 이메일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서울 종로3가의 허름한 고시원에서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모두 외롭게 보냈던 나에게 용기가 되는, 힘이 되는 말들을 가득 담아 이메일 가득 보내주던 선배 덕분에 나는 서울의 작은 고시원에서도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힘들었던 1년 간의 고시원 생활, 예상치 못했던 엄마의 수술 그리고 좌절과 방황을 하던 나에게 마침내 선물처럼 다가온 디즈니 월드 인턴쉽의 기회, 그렇게 운명같은 티켓을 선물 받게 된 나는 두 달 간의 연수를 받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다시 그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요가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매트를 구해다주고, 감기 약을 가져다주고, 버킷리스트에 있는 무언가를 이루도록 도와주고 싶다며 우클렐레와 기타를 가르쳐주었는데 떠남을 앞둔 몇 일 전, 그동안 준비했던 자작곡과 함께 고백을 해오던 사람. 사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에게도 거절의 시간은 무척이나 아팠다. 흔들리던 눈빛과 잠시 고였던 눈물, 떠나는 날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건낸 편지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는 편지에서 언젠가 내가 꼭 한번 즈음은 성경을 읽었으면 그리고 하느님을 믿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남겼었는데 H에게서 그 선배가 보이는 것은 아마 깊은 믿음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성숙함이 닮아있어서였을 것이다. 종교는 누군가에게는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두 사람의 삶을 통해 배운다.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선배도, H도 그래서 나보다 훨씬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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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걷는데 그늘도 없는 도로를 홀로 걷고 계시는 할아버지와 마주쳐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그 인사는 멀고 먼 뙤약볕을 이겨내며 걸으셔야 하는 할아버님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내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어쩌면 준다(give)는 것의 이면에는 나눈다(Share)라는 의미가 깊이 전제되어 있는 것만 같다.


드디어 발견한 그늘과 쉼터, 마치 나에게 구세주와도 같은 장소가 아닐 수 없다. 화장실이 급한 내가 후니에게 뒤돌지 않고 노래를 부를 것을 요구하자 이젠 익숙하다는 듯 음악의 볼륨을 키우고 할 일을 차분히 해나가는 녀석은 분명 좋은 길동무가 맞다.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아도 센스가 넘치는 H는 어디에서도 사랑 받을 사람이라는 걸 나는 감히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그늘 아래서 간식을 먹으며 배를 채우고 나는 H가 낮잠을 자는 동안 책을 읽었다. 뙤약볕을 잠시 벗어난 것만으로도 우리는 잠시 천국에 머무는 중이었다. 한참을 꼼지락거리며 쉬던 우리는 작은 그늘을 향해 멀리서 걸어오는 또 다른 순례자를 발견했다. 잠시 행복을 만끽했으니 다음 사람을 위해 우리는 다시 뜨거움 속으로 걸음을 내딛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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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뻗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었고 이글거리는 태양에 구름은 한 점 없었지만 하늘과 초록이 무척이나 잘 어우러지는 풍경이었다. 가만히 멈춰 사진을 찍는데 어디선가 파도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바다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숲에서도 바다가 느껴지는 걸 보면 말이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너무 앞만 보고 살아왔던 지난 날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 이후로 나는 이따금 뒤를 돌아 보곤한다.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더 이상 나의 돌아봄에는 후회나 미련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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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 길을 지난 누군가의 흔적이 드넓은 들판 위에도 남아있다. 크고 작은 낙서들, 그리운 누군가에게 보내는 사랑의 언어. 그들의 언어를 모두 알아 들을 수도, 읽을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과 눈빛과 마음, 체온으로 통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때론 언어가 사랑을 표현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길 위에서 수도 없이 깨닫는다. 종교도, 인종도, 경제적인 능력도 그 모든 '벽'들은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 이 길 위에서는 모두가 같은 길 위에 선 사람일 뿐, 사람들은 그저 제마다의 '짐'을 짊어지고 길고 긴 길을 걸을 뿐이다. 그렇게 자신의 본질을 찾기 위해, 스스로를 깨닫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는 연습을 위해 이리도 먼 길을 떠나온 것이다. 그리고 우린 이 길 위에서 매일 사랑을 느낀다. 그 사랑은 누군가에겐 '신'에 대한 것이기도, '이미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것이기도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기도 했다.


커다란 그늘을 만났다. 차량이 지나는 다리였지만 이 길 위를 달리는 차량은 단 하나도 없었다. 고가 다리 아래 만들어진 시원한 그늘은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계속되는 뙤약볕에 지칠대로 지친 우리는 배고픔도 피곤함도 이미 땀과 함께 몸 속 깊이 베어 버린 상태였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숨을 돌리며 가방 속 오이를 나눠 베어 물었다. 온 몸에 수분이 공급되고 활기가 도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빠가 등산을 갈 때마다 오이를 가방 한 켠에 넣어둔 건 이유있는 선택이었던 게 분명했다. 여전히 다음 마을 까지는 3.5km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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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는 이상하게 생긴 건물 한 동이 덩그러니 서있었다. 몇몇 순례자들이 그늘 아래 테라스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잔뜩 지친 H가 쉴 수 있도록 현관에 앉혀 두고 터덜터덜 걸어 알베르게의 주인집으로 향했다. 가까스로 체크인을 하고 침대를 배정받았는데 바람도, 햇살도 여유롭게 머물다가는 아늑한 숙소였다. 방명록에 남겨진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읽는 것은 무척이나 의미있는 시간, 샤워를 하고 바람부는 창가에 앉아 방명록을 남기고 일기장에 오늘 하루의 기록들을 써내려간다. 창가로 살며시 부는 바람과 적당한 햇살, 고요한 알베르게 모두 하루 종일 열심히 걸어온 고단함이 준 선물일 것이다.


H는 가장 뜨겁고 힘든 길을 걸었으니 아껴 두었던 고추장을 개시하겠다며 나에게 내밀었다. 그의 가방 한 켠에 소중하게 모셔둔 튜브 고추장으로 나름의 볶음밥을 만들었다. 설익은 양파가 서걱거리며 씹히는 밥이었지만 맛있게 먹어주는 H에게 부끄러움과 함께 고마움을 느꼈다. 제대로 된 자취를 해본 적도, 요리를 해본 적도 없는 내가 누군가에게 해주는 한 끼의 식사, 우리는 내일 아침을 위해 조그만 주먹밥을 만들어두고 해가 채 지지 않은 마을을 산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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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있는 아담한 바에 앉아 몇일 전 알게 된 클라라 콘 리몬을 주문했다. 작은 마을의 넉넉한 인심은 주전 부리 하나를 통 크게 내어 주셨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한 자매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들은 내가 미국에 있을 때 머물렀던 델라웨어(Delaware)에서 왔다고 했다. 혼자 걷는 나를 몇 번이고 지나치며 인사를 건낸 그들이라 더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밀리언과 콜린, 두 자매는 몇 해 전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채 잊지 못해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위로하는 순례길을 떠나왔다고 했다. 아침은 따로 떨어져 길을 걷고 늦은 아침식사를 하는 지점에서부터 함께 길을 걷는 그녀들의 모습은 가족이지만 서로의 삶과 시간, 가치관 모두를 존중해주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자식들이 모두 독립을 시작하는 나이에 이 길을 걷기 시작한 그녀들의 걸음은 어쩌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의 위로와 함께 가족들을 위한 삶이 아닌 스스로를 찾아가기 위한 삶으로의 여정이기도 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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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오늘 길 동무가 되어준 발렌테, 내가 과연 그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아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10년이라는 미움의 세월을 뛰어넘을만큼 그의 마음은 단단했고 눈빛에는 따스함이 고여 있었다. 사람들에게 받아온 귀한 마음을 다시 누군가를 위해 나누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에 나는 나를 몇 번이고 돌아봐야만 했다. 5년 만에 산티아고로 향하는 나를 만나기 위해 먼 제주에서 우리집까지 걸음을 해준 친구와 귀한 용돈을 떠올리며 나는 그녀의 마음만큼 귀한 걸음을 걷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삶에 간절함과 부족함이 없었더라면 감히 느끼지 못했을 친구들의 응원과 격려. 그 소중한 것들을 떠올리다보면 나는 오늘의 부족함들이 감사와 나눔에 대한 삶을 위해 나에게 내려진 선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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