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고스-사아군
아침 일찍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습관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게도 매일 걸을 수 있도록 내 몸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잠자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길을 걸으며 어제 미리 사두었던 사과 한 알을 베어 물고 크게 쉼호흡을 했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가슴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공기 중으로 비집고 나오며 조금씩 몸을 덥혀 주고 있었다. 동이 틀 무렵, 길에는 오롯이 나 혼자다. 홀로 길을 걷는 시간이 좋았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자연이 내게 주는 황홀한 감정이 더 크게 와닿는다. 자연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도시보단 자연 속이 더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J언니가 저녁을 먹으며 나에게 건냈던 작은 충고를 다시 주머니 깊은 곳에서 꺼냈다
"젊은 나이에 해외 경험을 하는 건 여행이자 시야를 넓혀가는 일이겠지만 30대가 되어서도 계속되는 그런 여행 아닌 여행과 오랜 출국은 '도피'가 될 수도 있어."
언니 곁의 많은 사람들이 젊은 시절에는 여행을 하다가 그 여행이 길어지면 한국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완전한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주변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내가 정말 그런 주변인이 될까봐 조금 겁이 났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종종 건내던 '역마살'이라는 단어를 오랫동안 곱씹으며 나는 걸음을 내딛었다.
새벽과 아침이 조용하게 맞물리는 그 시간의 아름다움을 어떻게든 표현하려 했지만 자연을 어떤 하나의 형용사로 표현하기에는 그 아름다움이 채 담기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했다. 아마 오늘 아침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오늘은 길 한 가운데 가만히 멈춰 서서 엄마와 아빠는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궁금해하며 아주 먼 고향을 향해 안부를 보냈다. 언젠가 기회가 닿아 엄마 그리고 아빠와 이 길을 걷는다면 우리는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눈을 뜨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며 아마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텐데. 가끔 위로가 되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나는 조심스레 손을 꺼내어 엄마의 (혹은 아빠의) 손을 잡을 것이다. 마음을 나눈 사이라는 것은 어쩌면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 때론 따스한 체온으로 서로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사이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가족들을 생각하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힘이 때론 솟아오르곤 한다. 그렇게 다시 힘을 내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내 이름을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산티아고를 걸으며 나를 가장 많이 시험에 들게 하는 T오빠가 알베르게에서 내가 오는 모습을 보고선 뛰어나오며 양치를 하고 나올테니 같이 가자며 나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나는 그에게 다음 마을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남기고 먼저 걸음을 내딛었다. 거절을 못하던 내가 비로소 이 길 위에서 거절이라는 것을 조금씩 할 수 있게 된 건 너무나도 소중한 길 위에서의 시간들을 미움과 후회로 덮어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함께 있으면 힘이 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준비가 되지 않은 누군가에게 나의 이별 이야기와 직장 동료의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동정을 바라는 것도 어쩌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혹시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를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다.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자 교훈이었고 때론 그들에게서 작은 부끄러움과 부러움을 느꼈다. 부끄러움과 부러움이라는 비슷하면서도 너무나 다른 단어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에게 하루하루 번갈아 머물곤 했다.
매일 부러움과 부끄러움을 아슬아슬한 간극으로 왔다갔다 저울질 하던 내 눈 앞에 무척이나 편안해보이는 당나귀 한마리가 나타났다. 묵묵히 풀을 뜯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때로 나에게 필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우직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아니 어쩌면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흔들리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뽑히지 않을만큼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바람이 잠잠해지면 다시 나를 곧추세워야 하는 것이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타자의 시선으로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내 자신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임을, 그 용기를 내기 위해 나는 아주 멀고도 먼 길을 날아 이 곳에 왔다.
작은 마을을 만났다. 마을 어귀에 문을 연 카페에는 아는 얼굴 몇몇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나를 향해 밝게 인사를 건냈다. 그들의 입꼬리를 따라 어느새 내 입가에도 미소가 한 웅큼 묻었다. 다음 마을에서 만나자며 손을 흔들자 다시 마음 한 켠에서 따뜻한 온기가 머물다 간다. 나의 여행은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 순간,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미소를 건내며 비로소 나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아주 신기한 경험을 하고서 나는 사람으로 떠나는 여행을 매일 아침 떠나곤 했다. 서로를 알아보는 그 시선의 끝에 올망졸망 매달려 있는 따스함이 내가 매일 길을 걷는 원동력이었다.
다시 오솔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한번도 쉬지 않고 걸었더니 발 끝이 따끔따끔 저려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제야 아침부터 쉬지 않고 먼 길을 걸어왔음을 깨달았다. 오솔길 한 켠에 있는 벤치에서 잠시 땀을 식히기로 했다. 맞은 편에는 한 노부부가 잠시 머물렀는데 할머니의 무거운 배낭을 들어주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모습이, 그런 할아버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마음을 자꾸만 따뜻하게 만들었다. 젊은이들에게도 쉽지 않은 800킬로미터의 긴 여정을 떠나온 노부부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오늘은 내 앞에 앉아있는 다정한 노부부의 삶이 궁금해지는 날이다.
도시가 아닌 변두리에 살고 있는 나의 친구들은 모두 일찍 취업 전선에 뛰어 들었다. 집 안의 가장역할을 해야 했던 친구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고 당연히 모두들 나보다 2~3년씩은 앞서 사회인의 길로 접어 들었다. 친구들이 생계를 위해 매일 같은 시간 일터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을 때,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서울의 작은 고시원에 살며 영어 학원을 다녔다. 친구들과 다른 선택을 했으니 우리의 사회적 거리가 멀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 모든 시간들이 훗날엔 더 큰 '나'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며 지내왔는데 어제 만났던 J언니는 그 모든 것들이 혹시 나의 이기적인 욕심이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느냐고 물었다. 아빠는 '가장'으로써의 무게와 경제적인 짐을 덜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계셨을텐데 그런 기대에는 한 번도 귀기울인 적 없는, 아니 어쩌면 아빠라는 역할은 그 것들을 견뎌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 것이 내가 가지고 있던 하나의 오류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다'는 걸 나는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내가 햄버거 생각을 하며 걸음을 부지런히 옮길 때 저 아이는 묵묵히 지팡이를 어깨에 두르고 발걸음을 옮겼다. 때론 앞서서 그리고 이따금 뒤에서 말이다. 이따금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면 곁에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털어 놓으며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과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묵묵한 H는 그저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줄 뿐이었다. 오늘은 아침마다 훌렁 떠나버리는 내가 야속했는지 녀석은 나에게 먼저 가고 있으라는 말을 하더니 샛길에 벌렁 드러누워버렸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지. 나는 먼저 갈게, 라는 말을 남기고 들판을 저벅저벅 걷기 시작했다.
돌아가서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지는 꽤 오래 되었다. 미리 걱정을 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 이 길을 걷는 하루 하루, 내가 걸음을 내딛는 모든 순간과 길 그리고 내 곁에서 '올라'라고 인사를 건내는 사람들과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더 소중할 뿐이니까 말이다. 매일 크고 작은 감정들이 나를 스쳐 지났고 나는 매 순간 새로운 깨달음을 얻곤 했다. 오늘은 푸른 하늘과 초록의 들판을 바라보며 작은 행복이 가슴 깊은 곳에서 따뜻하게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길을 걷는 모든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면 발걸음은 기존의 걸음보다 조금 더 가벼워지곤 한다. 그 것은 아마 다른 순례자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마을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하면 그 어떤 안도감으로 온 몸의 긴장이 조금씩 풀려 피로를 느끼거나 허기를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오솔길 곳곳에는 순례자들이 몸채만한 배낭을 한 켠에 내려두고 땀을 식히며 사과를 먹거나 빵 조각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하품처럼 노곤함이 전염되어 나도 잠시 쉬어갈 곳을 재빠르게 찾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처럼 햇살 좋은 곳에 누워 따스한 휴식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하고선 잠시 앉은 벤치에서 어느덧 단잠에 빠져 들었다. 아주 갑작스러운 단잠이었는데 그 짧은 순간의 낮잠이 어찌나 달콤하던지 나는 다음 마을까지 쉬지 않고 걸음을 옮길 수 있을 거라 확신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눈을 뜨자마자 두 눈에 가득 담기는 파란 하늘은 고단한 여정을 해내고 있는 나를 위한 선물이라 생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머물게 될 사아군은 보물과 유적이 많은 마을이다. 교회 권력의 중심지였던 마을로 석제가 부족해 대부분의 건물들이 벽돌로 지어졌는데 잦은 침공에 의해 많은 건물들이 사라지고 현재는 일부의 건물들이 남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까지 그 시대의 역사와 흔적이 깃든 소중한 유산들이다. 잠시 쉬었다 가기엔 아마 많은 아쉬움이 남는 도시가 아닐까, 이 마을은 아주 오랫동안 순례자들을 따뜻하게 품어온 오랜 전통도 있으니 말이다.
사아군에 들어서자마자 길 양쪽으로 울타리를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도시에서는 공사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 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서 나는 H와 마을의 입구에 자리한 카페에서 모닝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으며 레이몬드 할아버지를 기다리기로 했다. 오랜 휴식에도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배낭을 메고 나가려는데 조심성 없는 나는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떨어뜨려 버렸다. 당황하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던 나를 인심 좋은 아주머니는 어깨까지 두드리며 배웅해주셨다. 액자는 골절상을 입었는데도 말이다. 미안한 마음을 잔뜩 안고 나가는 길목에서 때마침 레이몬드 할아버지를 만났다. 현금이 주로 필요한 길 위에서 우리는 도시에 들어설 때마다 ATM기를 찾아 어렵지 않게 돈을 찾곤 했는데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신 레이몬드 할아버지께서는 그 모든 과정들이 어려우셨던 모양이다. 그래도 길 위에서 반갑게 인사를 건내고 자주 얼굴을 익힌 나를 믿고 어려운 부탁을 하신 할아버지와 나는 언어 소통이 10% 정도도 되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빛과 체온으로 많은 것들을 공유한 사이. 돈을 뽑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뽑은 돈을 잃어버리시지 않도록 주머니에 넣어드리자 할아버지는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하시며 내 손을 쓰다듬고 포옹도 해주셨다. 오늘은 더 멀리 있는 마을까지 걸어가겠다고 하시는 할아버지를 배웅했다. 우리는 앞으로 이 길 위에서 어제까지처럼 만날 수도 혹은 만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발그레 상기된 볼을 나에게 부비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오래 가슴에 남아있을 것 만 같았다.
할아버지를 배웅하고 끼니를 해결하려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나는 오늘 사아군에서 유명한 '산후안'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래서 그 많은 순례자들이 이 마을의 알베르게에서 쉬었다 가려는 계획을 세우던 중이었던 것이다. 나는 H와 이 사실을 급히 나누고선 스페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황소 축제'를 보고 가야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모은 후 이 곳에 배낭을 풀기로 했다. 우리가 머물던 6월 12일은 사아군의 축제로 다른 지역에서부터 뿔을 갈아온 황소들이 사아군에 도착하는 날이었다.
6월이 되면 스페인 곳곳에서 산후안 축제가 열린다. 동네 사람들은 자신의 소망을 적은 종이를 불에 놓고 태우는 의식을 행하며 불 주위를 돌거나 불 위를 뛰어넘으며 소원이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가족의 건강을 빈다. 뿐만 아니라 성난 황소들이 마을을 통과해 경기장에 들어서면 그 곳에서 비로소 투우사와 성난 황소의 대결이 시작되는 것이다.
밥을 먹고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겠다며 터덜터덜 조용한 카페를 찾아 나왔다. 맥주 한 잔을 주문하고 나에게 아는 척을 하던 '베드로' 곁에 앉아 그의 기타 연주를 나즈막히 듣고 있는데 어느새 혼자 산책 나온 H도 곁에 앉아 베드로의 기타 연주를 듣고 있었다. 베드로가 나에게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Let it be와 once의 주제곡까지 오롯이 나를 바라보며 부르자 열혈남아 H도 베드로에게 기타를 쳐보겠다며 빼앗아 다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알베르게 체크인을 할 때부터 나에게 '뷰티풀'이라며 내 본명을 외워 부르고 다니던 브라질의 열혈 청년 베드로는 H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한국 노래를 불러주겠다며 버스커버스커의 '꽃송이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H와 여러 차례의 기타 배틀이 이어졌지만 결국 그 누구의 승리도 아닌 채 기타 배틀은 끝이 났다. 순례길 위에서 마주한 얼떨결의 사랑 고백이었지만 나는 썩 쁘진 않았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 일은 적당한 선에서는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니까 말이다.
두 녀석이 아웅다웅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다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피레네 산맥을 하루종일 함께 넘었던 벨기에 친구 퀸튼, 처음에도 씩씩했던 퀸튼은 오늘도 역시나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겨주었다. 홀로 아이슬란드를 여행했다는 녀석은 나에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이슬란드를 오래오래 여행할 것을 권했다. 그래서였을까, 아이슬란드는 나에게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이게 다 혼자 아이슬란드를 여행한 퀸튼이 들려준 아름다운 밤 하늘 이야기 때문이다. 이 잠시의 만남 이후로 더 이상 퀸튼을 만날 수 없었지만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일은 내가 걸어온 세상 밖은 얼마나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를 깨닫게 되는 일이었다.
마을 곳곳이 씨에스타로 잠들어 있는 시간, 한 차례의 기타 배틀이 끝나고 터덜터덜 마을을 걸었다. 지친 누군가는 교회 옆 공터에 누워 달콤한 낮잠을 즐기고 있었고 나는 한 켠에 앉아 일기를 써내려갔다. 오늘 내가 머물 알베르게(트리니다드 Trinidad)는 공립이고 깨끗했으며 저렴한 가격을 받고 있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5유로로 따뜻한 샤워 시설과 깨끗한 침대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지는 길을 걷기 전에는 알 지 못하는 행복일지 모른다.
산책을 나온 H와 커피 한잔을 하기 위해 시에스타가 아닌 작은 카페에 들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배워온 크고 작은 것들을 H에게 나누는 시간이었다. 사실 H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보다도 훨씬 어른스러운 그에게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언제나 확신에 가득 찬 눈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친구. 이 아이가 이렇게나 단단해진 건 어쩌면 매주 기도를 하며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왔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종종 그의 앞에서 부끄러워지곤 한다. 나도 이 아이처럼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가장 가까운 곳에 닮아 갈만한 스승이 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6월 11일,
한국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던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이 길 위에서 만나오고 있다. 때론 왜 나는 저렇게 살아오지 못하는 지에 대한 반성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과 존경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기도 한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인생관도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두가 선생님이었고 나는 항상 배워가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매일 깨달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다. 배울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것만으로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