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을 정의하는 것

산볼 - 이테로 라베가

by Jessie

삼볼 알베르게의 아침,

나무 냄새 가득한 오두막의 다락은 지나치게 안락했다. 그 자그마한 공간에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네 사람이 쪼롬히 누워 잠에 빠져드는 일은 꽤나 낭만적이었다. 밤새 무언가를 자그맣게 나누다 그렇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자 지난밤에 왔던 비는 말끔하게 그쳤고 사람들은 이부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5유로를 지불해야 하는 아침이지만 향긋한 빵 냄새를 지나치지 못해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아 아침인사를 나누며 아침을 먹으며 든든히 배를 채웠다. 매일 아침 엄마가 차려주던 아침 밥상은 하루를 견디는 힘이었다는 것을, 누군가의 식탁 앞에서 알아차리는 중이었다.








신발끈을 동여 메고 비에 젖어 아직 속이 채 마르지 않은 신발에 발을 욱여넣었다. 아주 잠시만 눈을 질끈 감으면 이내 적응될 일이지만 몇 번을 반복해도 결코 이 느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여전히 고통이 느껴지는 발을 용기 있게 내딛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중이다. 풍력발전기가 예쁘게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3년 반 동안 대학 생활을 했던 제주도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2학년에 들어서자마자 담임선생님과 진로에 대한 상담을 하던 내게 주어진 첫 질문은 "니 뭐 좋아하는데?"였다. 경상도 억양이 잔뜩 배어있는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아마 나는 "선생님, 저는 사람 만나는 게 좋고 그런 일을 잘하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동생의 학교도 생각해야 하니 국립대를 갔으면 하시더라고요. 그런 학교가 있을까요?"라는 이야기도 함께 말이다.


그렇게 선생님과 함께 고심하여 찾아낸 학교는 바로 '제주대학교'였다. 학교 점수에 맞추기 위해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운동을 하고 공부하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런 코미디가 따로 없지만 덕분에 나는 원하던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때부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주말이면 버스를 타고 외지로 나가 올레길을 터벅터벅 걷는 일만큼 제주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그 당시 나의 제주 사랑은 꽤나 두터웠던 것이었다. 덤덤하게 돌아가고 있는 풍력 발전기를 바라보는 순간 문득 그리운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제주의 넓은 들판 위에서 외롭게 돌아가던 그 풍경기들이 말이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비가 내리더니 오늘의 길들은 모두 질척거리는 진흙탕으로 바뀌고 말았다. 조심조심 최대한 진흙이 없는 곳을 내딛으려 했지만 그렇게 걸음을 옮기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서는 조금 더 속도를 내어 길 귀퉁이를 걸었다. 자꾸만 엉겨 붙는 진흙들을 떼어내며 걸음을 옮기자니 이들은 마치 내가 쉽게 털어내지 못한 미련인 것 같기도 했다. 신발과 종아리 그리고 지팡이 끄트머리까지 질척이며 달라붙어 있는 녀석들에게 불평을 토로하며 애꿎은 신발만 누워있는 풀 위로 슥슥 비벼댔다.









걸음을 조금 더 옮기자 그제야 하늘에서 빛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만나왔던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습관처럼 '산티아고'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와 함께 길을 떠나겠다고 말하던 그 친구를 떠올렸다. 나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인해 애틋하기만 했던 친구를 잃었고 그 친구와 함께 나누었던 지난 추억들조차도 모두 덮어두어야 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조차도 그 친구가 생각이 나는 건 그가 너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선물해준 사람,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은 나였지만 나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도록 용기를 준 사람.


후회는 언제나 늦다.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안해지는 사람에 대한 생각이 마치 미련처럼 신발에 엉겨 붙어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호주로 떠나던 날을 떠올린다.

인턴 생활을 통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흠뻑 상처 받았던 나의 지난 시간들. 국가 혹은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많은 것들은 모두 간과된 채 인턴이라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피해받아야 했던 시간들. 상처 입은 내게 사과 한 마디 조차 건네지 않았던, 타인을 시켜 대리 사과를 했던, 눈 앞의 피해가 무서워 나를 가해자로 만들어버린 회사의 대표에 대한 미움이 가슴 한 구석을 뚫고 나온다. 용서하기 위해 이 길 위에 섰지만 나는 여전히 많은 것들을 용서하지 못한 채 길을 걷고 있다.









고뇌에 찬 발걸음이 어느덧 침착해지기 시작하는 순간, 같은 색의 가방을 메고 앞을 걷는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기에도 다정해 보이는 그들은 신혼부부로 남들이 꿈꾸는 안락한 리조트와 해먹이 그려지는 신혼여행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앞으로 인생의 여정을 함께 걷기 위한 길을 걷고 있었다. 결혼과 연애의 갈림길에서 함께 국토 대장정을 떠나 비로소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떠오르던 참이었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각자의 짐을 지고 같은 방향을 보며 걸어가는 일은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일과도 무척이나 닮아있었으니 말이다. 서로의 짐을 나눠지기도, 잠시 멈춰 숨을 고르기도 하면서 그 거대한 장면 속에서 둘 만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비로소 서로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기 시작하게 될 테니까.








눈 앞에 보이는 오래된 건물은 고대 수녀원의 모습이라 했다. 5월부터 9월까지 문을 여는 알베르게는 기본적인 시설들만 갖추고 있지만 전통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여전히 많은 순례자들의 방문이 있다고 한다. 'T'자 모양의 십자가는 기사단의 성스러운 상징인 '타우'를 지칭하는데 이는 그리스 알파벳 19번째 글자로 불길함과 병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순례의 십자가'로도 불린다.








수녀원의 흔적을 지나다 우연히 마주친 이 작은 공간에는 이미 이 곳을 지나쳐간 순례자들의 쪽지와 빵조각 들이 남겨져 있다. 배고픈 순례자들을 위해 빵을 남겨두는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데 고국에서 가지고 온 편지나 돌멩이, 사진들도 이 곳에 고요히 자리하고 있다. 묻어두고 싶은 기억 하나 즈음 이 곳에 두고 올 수 있다면 조금은 그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수녀원의 흔적을 지나쳐 다시 걸음을 옮기던 중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젖어가는 아스팔트를 바라보고 있으니 곧이어 비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비가 오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그 친구를 만나고서 내 심장은 처음으로 찌릿하고 전기가 통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전기가 통한다는 말은 익히 들어보긴 했으나 그것이 동성 간에도 해당되는 일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내 심장에 대한 가벼운 정전기는 그 전으로도 그 후로도 이 친구 이후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 제주도에서 육지로 가는 비행기 삯이 아까워 명절에도 집에 가지 않고 기숙사에서 외로움을 자처했던 나는 태풍 때문에 밖으로도 나가지도 못하고 애꿎은 자판기 캔 음료만 뽑아 마시며 배를 채우고 있었다. 비가 거세게 오는 오후, 누군가가 갑자기 방문을 두드렸다. 방문을 열자 귀퉁이가 젖은 신문 뭉터기를 들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홀로 남아있는 내가 떡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집에서부터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달려와준 친구의 젖은 우산에서 떨어지던 물방울은 힘든 순간이 올 때면 위로처럼 떠오르곤 했다. 1년의 호주 생활을 끝내고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을 때 비행기를 타고 나를 찾아온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듣고선 마치 자신의 일처럼 울었다. 책 한쪽에 작은 정성이라며 10만 원을 고이 넣어두고 간 아이, 내가 그렇게나 간절해 마지않던 산티아고를 걸으로 간다는 사실에 나만큼이나 기뻐해 주던 그녀를 축복하며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용기를 냈다.








카스트로 헤리스라는 다음 마을은 약 1,000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한가로운 마을로 전쟁에 훼손된 건물의 잔재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과거에는 8개의 순례자 병원이 있을 만큼 중요한 기점의 역할을 했지만 오늘은 시에스타에 잠들어 있는 하나의 마을이었다. 오락가락하는 빗방울과 몰아쳐 오는 허기를 생각하며 나는 잠시 조용한 카페에 들러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마을로 이어지는 길, 마을 어귀에 자리 잡은 카페에는 이미 익숙한 얼굴의 사람들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반가움에 손을 흔들었지만 오늘은 잠시 혼자이고 싶은 마음이 커서 나는 조금 더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한참을 그렇게 마을을 따라 걸었지만 카페가 보이지 않자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던 나는 지나가는 마을 주민 분께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카페 아끼?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근방을 흔들어 보였다)" : 카페 여기?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이었지만 원시적인 바디랭귀지를 캐치하신 아저씨가 어딘가를 가리키셨다. 그 손가락 끝에는 카페 같지 않은 외형의 카페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고 나는 아저씨의 추천을 믿고 용기 있게 카페로 들어섰다.









히피스러운 느낌이 잔뜩 드는 이 카페의 천장에는 각국의 순례자들이 남겨놓고 간 지폐들이 가득 줄지어 있었는데 눈에 깨나 익은 우리나라 지폐도 가만히 자리하고 있는 걸 보니 꽤 많은 한국인들이 스쳐 지나간 걸 알 수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의자에 가방을 털썩 내려놓고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던 다른 테이블의 순례자들이 지친 나에게 가벼운 미소와 인사를 건넸다. 다음 마을까지 꽤 먼 거리를 걸어야 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을에서 쉬어갈 거라는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우노 카페 콘 레체, 우노 쿠키 그라시아스"


이젠 적당히 자연스러워진 스페인어를 주인아저씨에게 꺼나본다. 아저씨는 그런 내가 만족스러우셨는지 작은 쿠키 하나를 덤으로 얹어 주셨다. 하루에 커피 한잔을 마시곤 하지만 오늘은 많은 생각과 걸음을 해준 내 스스로를 위해 커다란 쿠키 하나를 사주었다. 나를 위한 보상을 잊지 않는 내 자신이 문득, 좋다.








배도 부르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카페에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앉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걷고 있는 길, 끊임없이 이어지는 길, 저마다의 이유로 걷고 있는 길에 대해서 말이다. 이 길이 끝나면 내가 과연 달라질 수 있는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나는 여전히 되묻고 있다. 어쩌면 나는 이 길에게 나의 변화를 강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변화의 주체는 '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길이 마치 나를 바꿔줄 것이라고 말이다.








한참 동안 글을 끄적이던 나의 행동이 끝나자 카페 주인아저씨는 접시를 치워주겠다며 오셔서는 벽에 붙어있는 액자 속 까만 옷의 남성을 가리키시며 누군지 알겠느냐는 질문을 던지셨다. 알지 못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나에게 아저씨는 "파울로 코엘료"라는 간결한 답을 남기고 카운터로 돌아가셨다. 그렇게 한참 동안 나는 사진 속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연금술사를 썼던 그의 책을 읽고서 나는 비로소 이 길을 걸을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그 주인공을 간접적으로나마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걸어온 이 길은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걸어왔던 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코엘료의 기운을 잔뜩 받고서 호기롭게 출발한 길이었는데 오늘은 눈 앞에 보이는 이 산을 넘어야 한단다. 잠시 후회를 해보지만 앞서 나간 발걸음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어느새 산 정상에 닿아있을 거라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들을 통해 깨달아온 사실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내딛는 발걸음을 믿어주는 일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일 테다.








산 입구부터 경사가 12도라는 걸 말해주고 있다. 거친 숨은 이미 턱 끝까지 찼지만 이 산을 넘어야 쉴 수 있는 곳이 비로소 나온단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는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한 걸음, 한 걸음을 천천히 내디뎠다. 홀로 걷는 걸음이 무거워오면 언제나처럼 일행이 그리워지지만 금세 혼자이길 원하는 나의 변덕을 생각하면 지금의 어려운 순간들을 홀로 견뎌내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맞다. 이제 더 이상은 의존적인 사람이 되지 말자고 나는 조심스레 마음을 먹었다.








이를 꽉 깨물고 걸음을 씩씩하게 내딛으며 앞서 걷는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를 건넸다. 거친 숨이 섞인 "부엔 카미노" 혹은 "올라"라는 인사는 많이 지쳐있지만 밝은 힘이 실려 있었다. 용기를 얻어 한참을 걷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아주 멀리 까마득하게 내가 쉬어왔던 마을이 보였다. 결국 모든 상황들을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얻기 위해 열 시간이 넘도록 비행기를 타고 이 곳까지 온 것이었다. 어쩌면 이런 크고 작은 깨달음을 위해 나는 매일을 걷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이 한 달, 두 달, 세 달 그리고 일 년 후에는 아주 작은 점이 될 거라는 기대가 들기 시작했다.



힘들게 산길을 오르고서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는 순례자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우리는 아주 가끔씩 우리가 지나온 혹은 흘러온 길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돌아보기엔 너무 아프고 힘든 일이라고 굳게 덮어놓은 상처들은 언젠가는 더 아프게 곪아버려 치유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꺼내놓기 힘든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또는 홀로 이 길 위에 섰으며 어쩌면 이 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가슴 한편에 나와 비슷한 아픔 하나쯤 안고 산다는 사실을 알고 위로를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우린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고 또 진심으로 아파하며 치유받는 법을 배운다. 그것이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길은 내게 말했다.









홀로 걷는 나와 동행이 된 미국 아주머니와 잠시 길동무가 되었다. 아주머니는 아이들이 모두 커서 독립을 하자 문득 밀려드는 외로움에 힘들어하시다가 아들의 제안으로 이 길을 걷게 되셨다고 한다. 대학 교수이셨던 아주머니는 내 이야기를 또 내가 미국에 가게 된 우여곡절의 이야기를 들으시고선 잠시 울컥해하시더니 사진 한 장을 찍을 수 있겠냐고 물어오셨다.


누군가는 태어나면서 '미국' 국적을 가지고 태어나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가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지구 한편에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주머니는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계시는 분이었다. 아주머니는 아들들이 나처럼 용기 있게 커나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사실 나는 여전히 어리고 독립적이지 못한 그리고 배워나가야 할 것들 투성이의 사람이었다.







잠시 쉬었다 가겠다는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는 다시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물집이 잡히고 나면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고통스러운지라 나는 속도를 낮춰 걷기 시작했다. 속도가 더뎌지며 점차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풍경은 제주도 올레길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산티아고도 올레길도 무척이나 닮아있는 길인데 나는 그리고 또 왜 사람들은 이리도 먼 길을 날아 스페인까지 오는 것일까.










두 갈래 길에 멈춰 서서 아스팔트 길로 걸어야 하는지, 흙길을 따라 걸어야 하는지를 망설이는 나에게 지나가던 자전거 순례자가 아스팔트를 따라 걸으면 10km를 더 걸어야 하니 흙길을 따라가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고 떠났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너무 많은 거리를 걸어 다리도 몸도 모두 지쳐버렸다. 그래서 마을 어귀에 자리한 작은 알베르게에서 배낭을 풀기로 했다. 혼자인 나를 위해 아저씨가 보여주신 곳은 1인용 공간으로 10유로에 홀로 방을 쓸 수 있는 작은 사치를 권유하셨다. 한참을 망설이던 나는 고생한 스스로를 위해 작은 사치를 부려보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슈퍼마켓에 들러 요기를 하려고 했는데 여전히 마을은 씨에스타라고 한다. 따뜻한 차라도 마시겠다며 부엌으로 들어선 나에게 옆 테이블의 독일 중년 자매가 빵과 캔에 담긴 야채를 권했다. 배도 고프고 추웠던 나에게 그들이 나누어 주었던 건 음식만이 아니었는지 마음이 훈훈하게 덥혀져 갔다.








씨에스타가 지나고 요깃거리를 위해 들른 슈퍼마켓에서 어젯밤 같은 알베르게에 머물렀던 뉴질랜드 세라와 브라질에서 온 제이드를 만났다. 그녀들은 나에게 함께 마을 구경을 가길 청했고 그런 우리를 바라보던 유치원 원장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시면서 마을 나들이는 순식간에 다국적 소풍이 되었다. 브라질에서 온 제이드가 스페인어를 잘해서인지 원장 선생님과의 대화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원장 선생님은 마을 구석구석을 설명해주시고 카페에 가서 와인 한 잔과 함께 간단한 스페인어까지 가르쳐 주셨다. 엉성하면서도 열심히 발음하는 나를 보며 다들 호탕하게 웃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누군가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다. 아마 우리는 이 짧은 추억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과 앞으로 더 많이 가까워지게 되겠지. 인종도, 국가도, 직업도 이 길 위에서는 모두가 동등하니까 말이다.








6월 8일


길,

끊임없이 이어지는 길.

다들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이 길을 걷고 있다.


어떤 생각, 어떤 사람, 어떤 풍경

그 어떤(Something)을 규정짓는 건 누군가의 생각과 배경.


그 모든 것과 내 안의 규정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나'라고 불렀던 것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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