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꿈 하나를 품고 살아갑니다 :)
오늘은 아이가 할머니 집에 가겠다며 친정엄마의 손을 잡고 짐을 챙겨 갔다. 가득 쌓인 집안일을 하느라 놀아줄 겨를이 없는 엄마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삼촌까지 있는 그곳이 32개월 아들에게는 더 좋을 터였다. 나에게도 아들이 없는 주말은 로또 같은 것이라 무엇을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올 해는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겠다며 다짐을 하고 또 했지만 벌여놓은 일들을 수습하느라 글쓰기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 중간 어딘가에서 흐지부지 흩어지고 만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자유도 얻었으니 더 이상의 핑계는 없어야만 했다.
글을 쓰기에 앞서 유튜브 탐색을 가볍게 시작한다. 너무 신나지도, 가볍지도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은 배경음악을 동력으로 손 끝에서 문장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대게는 재즈 피아노를 켜두지만 이른 아침에는 풀벌레소리를 듣는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익숙한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편안하게 이완되는 모양이다. 취향에 맞는 음악을 만나는 날에는 쉬지 않고 글을 쓰게 되는 행운이 찾아오기도 하는데 그런 일은 열 번에 한 번 즈음 있는지라 늘 그런 행운을 바라며 책상에 앉는다. 오늘의 글감 창고에서 발견한 키워드는 '도서관'이었다.
나는 엄청난 다독가이거나 독서광은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책 그리고 책이 있는 공간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아낀다는 점이다. 내가 도서관에 탐닉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생 시절 나의 청소 담당 구역은 바로 학교 도서관이었다. 오래된 갈색 책꽂이에 꽂힌 빼곡한 책들, 책 표지를 넘기면 꽂혀있던 수기로 작성된 도서카드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불을 켜지 않아도 될 만큼의 아늑한 어둠이 있던 공간. 청소를 부지런히 끝내고 나면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기대어 앉아 책 냄새를 맡으며 함께 청소를 담당하던 친구와 수다를 떨곤 했다. 책이 가득한 공간이 주는 아늑함과 책 냄새에 묘한 끌림을 느끼게 되면서부터는 버스를 타고 동네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해리포터 시리즈를 빌려 읽다가 점차 제목에 이끌려 이런저런 책들을 펼치기 시작했고 우연히 읽게 된 이병률 시인의 '끌림'을 시작으로 여행 에세이에 탐닉하게 되었다.
지구 너머의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용감하게 배낭을 메고 떠나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던 것도 책 속의 문장들의 격려가 있었던 이유에서였다. 막연하지만 작가들이 써 내려간 경험들과 사진을 읽다 보면 그곳에 있는 내 모습이 어느샌가 느려지기도 했다. 미국 디즈니월드로 인턴을 떠난 일도, 캐리어 하나를 들고 호주로 덜렁 떠난 것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게 된 것도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 한 권에서부터 비롯된 일이었다.
서울에 있을 땐 광화문이나 강남 교보문고 주변에서 늘 약속을 잡았고 한 시간쯤 일찍 도착해 책을 읽곤 했다. 머리가 복잡할 땐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고 독립서점이 우후죽순 생기면서부터는 합정, 을지로, 홍대, 이태원에 있는 작은 책방들로 여행을 떠나는 기쁨을 누렸다. 처음에는 책방을 구경하고 책을 읽을 요량으로 부지런히 지하철을 타고 다녔지만 나중에는 한 시간 거리의 이태원 ('별책부록'이라는 서점)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책 제작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때 만들었던 작품은 호주를 여행하며 썼던 짧은 기록들을 사진 에세이로 만든 책이었는데 딱 한 권이 출판된 전적만 남았을 뿐이다.
그 후, 자비를 들여 독립출판을 해내는 용기 있는 작가가 되진 못했지만 책을 좋아하는 취향은 아이를 낳고도 여전한 지라 일주일에 두어 번은 동네 도서관에 들러 아이와 함께 유아실의 자그마한 책상에 앉아 그림책을 읽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런 나의 부지런함 덕분인지 도서관에 가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할 만큼 아이는 책이 있는 공간과 책을 좋아하는 존재로 자라나고 있다. 사서 선생님과도 친분이 생겨 아이는 씩씩하게 인사를 해 비타민 사탕을 받기도 하고 도서관의 이벤트나 프로그램에도 부지런히 참여하며 도서관과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해나가고 있다.
요즘의 나는 엄청나게 커다란 욕심은 없지만 자그맣게나마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꿈이 있다면 친애하는 공간들에 언젠가 내 이름이 쓰인 책의 자리가 마련되는 것. 요즘은 그 작고 선명한 장면을 머릿속에 담고 엄마로서의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아이와 함께 다양한 그림책들을 읽으면서 또 아이와의 소소한 일상들을 수집하면서 그림책의 글감이 될 만한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아이와의 매 순간들이 문득 소중하게 다가온다. 꿈이 조금씩 선명해지는 날까지 친애하는 도서관으로의 여행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