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곳들로 가는 지도
9화 _ 퍼스, 그 참을 수 없는 그리움 호주 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서호주 그리고 그곳의 주도인 퍼스는 시드니나 멜버른처럼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그곳에는 여운을 남기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빛의 도시’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만큼, 어두컴컴한 아웃백을 지나 퍼스의 상공에 다다르면 쏟아지듯 빛나는 불빛이 여행자들을 환영한다. 1년 중 260일 이상 맑은 날씨는 퍼스라는 도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지만,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의 따스한 친절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길모퉁이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에도 걸음을 멈춰 괜찮은지 안부를 묻던 사람들. 마음의 구김까지 밀어내는 그곳의 맑은 날씨와 사람들의 여유로운 친절에 점차 마음을 두게 되었다.
퍼스와의 첫 인연은 국가 인턴으로 여행사에서 일을 시작하면서였다. ‘해가 뜨는 도시’라 불리는 브리즈번과도 닮아 있었지만, 퍼스는 그에 비해 훨씬 더 고요하고 잔잔했다. 즐거움의 이유를 문 밖에서 찾는 이들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도시였지만, 자신에게서 크고 작은 질문의 답을 찾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퍼스(Perth)’라는 발음을 현지 사람들이 알아듣게 발음하는 데까지 꼬박 1년이 걸렸지만, 그만큼 퍼스는 느리게, 그리고 천천히 다가가도 괜찮은 도시였다.
퍼스가 조금 더 애틋해진 것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였다. 33일 동안 순례자의 시간을 충실히 보내며, 나는 호주에서 보낸 1년의 시간을 자주 떠올렸다. 특별할 것도, 반짝이는 기억들도 크게 없었지만 익숙하고 따뜻한 장면 속에서 피어나는 마음이 있었다. 순례자의 옷을 벗고 나는 주저 없이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퍼스에서의 삶은 머릿속으로 그린 것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꿈을 좇았지만,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와 어머니의 눈물을 뒤로한 채 4년의 시간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버텨야 했다. 처음 호주에 도착했을 때 내 손에 남아 있던 돈은 겨우 18만 원 남짓. 하루 한 끼를 컵라면으로 버티며, 삐걱거리는 철제 침대가 놓인 8인실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생활했다. 바퀴벌레와 곰팡이가 공존하던 그 낡은 건물은 도심 한가운데 골칫덩이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도시에서 가장 남루한 차림의 이들이 이웃으로 머물고 있었다. 메고 온 배낭의 크기도, 성별도 각기 다른 여덟 명의 젊은이가 선풍기 두 대를 나눠 쓰던 어두운 방. 때로는 유일한 여성으로 지내야 했던 밤이 있었고, 화장실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던 시간도 있었다. 그런 날들은 깊이 잠들지 못한 채 복도를 지나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동이 트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했다.
어떤 가난은 젊다는 이유로 감당할 수 있는 몫이 되었다. 허기를 참으며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강가를 달리던 날들이 있었기에 달리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한 줄기 선풍기 바람이 주는 감사함도 배웠다. 몸을 뉘일 수 있는 침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때론 충분히 안도하면서. 넘치던 것들은 오래 남지 않는다. 오히려 부족하고 목마르던 순간들이 오래도록 깊은 곳에 머물다 그리움의 잔상이 된다.
퍼스에서 보낸 날들은 내게 참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았다. 무모했기에 가능했고, 젊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시간들. 결핍의 시간을 오래 걸으며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그 시절이 남긴 것은 결핍의 고통이 아니라, 불편을 견디며 스스로를 단단히 세운 기억이라는 것을. 퍼스는 천천히, 느리게 걸어도 충분히 괜찮은 도시였고, 나의 젊음은 그곳에서 비로소 한 겹 더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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