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멀어지면서 연결된다

거리는 사라짐이 아니라 이어지는 방식이었다

by Jessie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가까움보다 거리가 더 오래 남을 때가 있습니다.


스무 살이 채 되기 전부터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에서 멀어진 이후의 삶은 편안함보다는 흔들림에 가까웠습니다.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올라탄 배 위에서 중심을 잡는 시간처럼 말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가족은 자연스럽게 한 걸음쯤 떨어진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가까이 두지 못한 만큼 더 또렷해지는 이름, 그것은 애틋함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타고난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제 삶에는 ‘머무름’보다 ‘이동’이 더 많이 적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요. 어딘가에 오래 머물기보다 자리를 옮기고, 다시 길 위에 서는 삶. 그 반복 속에서 저는 ‘돌아갈 곳’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익숙해지는 일인 동시에 조용히 작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고 없이 도착한 도시에서 사람을 만나고, 시간을 쌓고, 그러다 다시 떠나보내는 일. 정성껏 쌓아 올린 시간이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라지는 순간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면 사람은 쉽게 무력해집니다. 하지만 요즘의 저는 그 시간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함께 머물렀던 시간은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로 옮겨갈 뿐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같은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 거리만큼 다시 이어질 가능성 또한 조용히 남아 있다는 것을 기억하려 합니다.


흘러가는 일과 머무는 일 사이에서 우리는 대부분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조금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까이 있을 때는 알지 못했던 마음, 지나고 나서야 선명해지는 관계. 저는 이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단순한 멀어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리는 서로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방식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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