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떠나는 쪽에 있습니다

보내는 사람이 되기 전까지, 반복되는 작별에 대하여

by Jessie




지난해는 유난히 파도가 높았습니다.


아버지는 위를 도려냈고, 어머니는 담낭을 비워내는 일들이 줄줄이 이어진 이유에서 입니다. 먼 곳에 사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는데, 마음만은 그 사이에서 오래 출렁였습니다. 손에 쥔 것이 없을수록 마음은 더 오래 흔들린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부터 집을 떠나 살았으니, 떠남은 어느덧 스무 해째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림책 모임 선생님들은 문득 제 사주를 궁금해하셨고, 저는 이미 오래전부터 스스로의 기질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한때는 어디론가 가야만 할 것 같아서, 그 충동을 운명이라 부르며 안심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단어가 더는, 설레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조금 자란 것 같았습니다.



호찌민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늘 같은 시간에 뜨고 내립니다. 아이와 단 둘이 비행을 한다는 건 하루를 부지런히 시작해야 하고, 누구보다 늦게 비행기에 오르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새벽 네 시, 알람이 울리자마자 건넛방에서 자던 아버지가 먼저 몸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떠나는 날이면, 집 안의 잠은 얕아집니다. 그래서 귀국은 늘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돌아온다는 사실보다, 다시 떠난다는 사실이 더 크게 남기 때문입니다.



젖은 머리를 대충 말아 올리고 어머니의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여섯 살 아이는 잠을 덜어내지 못한 얼굴로 몸을 일으킵니다. 세수도 미루고 옷만 급히 챙겨 입은 아이의 손을, 부모는 말없이 잡아 이끕니다. 아직 빛이 들지 않은 길 위에서, 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공항버스가 도착하기까지의 짧은 시간. 그 안에 담기는 것은 늘 비슷합니다.


그래서인지, 떠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비가 왔습니다. 우산과 캐리어를 동시에 쥐고 움직이다 보면, 눈물을 꺼낼 틈조차 없었고, 그 부산함 덕분에 저는 번번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늘 떠나는 쪽에 서 있던 저도, 언젠가는 보내는 쪽에 서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 제 발로 멀어지는 날이 오면, 그제야 어머니의 손을 다시 잡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마음을 물어보며, 대답을 듣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지도요.


다시 먼 길을 건너온 지금, 저는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마음은 아직 자리를 찾지 못해,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머뭅니다. 그렇게 글을 씁니다. 살아가는 동안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몇 번이고 조용히 되짚어가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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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folio
호치민에서 꼬마와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클라이밍과 달리기를 하며 마음을 덜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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