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트 메세지

호주의 주인에 대한 아주 오래된 이야기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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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riginal hunter in the Australian Outback. (Credit: Grant Faint/Getty Images)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이름이 하나 있다. '애보리진'이라는 원주민들을 일컫는 말로 동부에서 생활한 사람들보단 서호주나 세상의 중심이라 불리는 노던테리토리에서 생활해온 사람들에게 더 익숙한 존재이다. 오스트레일리안 + 오리진 (Australian+Origin = Aborigine)이라는 단어가 합쳐지며 비로소 '애보리진'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처음 서호주의 '퍼스'라는 곳에서 생활을 하며 그들을 만났을 때의 감정은 처음엔 다른 인류를 만나게 되는 설레임과 호기심이었지만 이내 그 설레임은 일상 속에서 두려움과 안타까움으로 바뀌고 말았다. 퍼스라는 도시에서 백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애보리진은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존재인데 그들에게 폭행을 당해 지갑이나 핸드폰, 귀중품을 빼앗긴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이따금씩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무료로 운행되는 도심의 순환버스에서 만났던 그들은 두려움이 대상이 되었다. 애보리진들은 동양인들에게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며 웃음거리를 만들거나 위협을 하기도 했고 공원이나 야외에서 잠을 청하는 그들의 몸에서는 언제나 땀에 절다 못해 몸 속 깊이 베어버린 냄새가 났는데 그 모든 행동들은 그들에 대한 평가를 일관되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들을 멀리하며 지내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애보리진의 이야기가 담긴 한 권의 책을 선물 받게 되었다.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이었다. 미국에서 학회 참석을 위해 호주에 넘어왔던 한 여의사가 우연한 기회로 애보리진 부족과 함께 아웃백을 횡단한 일화가 담겨 있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이 책 한권은 애보리진에 대한 나의 편견과 짙은 견해를 벗겨내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4999813896_6d99f0ba9a_b.jpg www.flickr.com/photos/shadowdogphotos


미국의 인디언들과 비슷한 스토리를 가진 애보리진이지만 이들은 조금 더 안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호주 대륙에 본격적으로 터를 잡기 시작한 영국인들은 처음엔 그들을 도와주는 듯 보였지만 이내 약탈과 폭력을 일삼았다. 무기를 가진 그들에 비해 여전히 농경/수렵사회에 살고 있던 애보리진들은 힘없는 존재들이었다. 백인들은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발전을 꾀했고 조금 더 잔인하게는 애보리진 문명의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백인과의 결혼을 권장했으며 아이들을 빼앗아 가정부, 노예로 취급해 버린 빼앗긴 세대(Stolen Generation)를 불러왔다. 올림픽에 참여했던 애보리진 출신의 한 여성이 애보리진 국기를 카메라 앞에서 펄럭인 것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애보리진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고 그제서야 호주 정부는 애보리진들에 대한 진짜 복지 정책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중심이자 지구의 배꼽이라 불리는 울룰루를 원래의 주인인 애보리진들에게 계약 기간이 지난 후에 다시 돌려주는 약속 이외에도 (깨어있는 호주인들은 애보리진의 숭고한 장소인 울룰루 바위를 오르지 않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애보리진 가정을 위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유할 수 있는 비용과 함께 정규 교과를 이수하도록 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미 담배, 술, 본드 등 유럽인들이 들여온 중독성 깊은 유해 물질에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대다수의 애보리진들은 기대했던 바만큼 살지 못하고 있고 사실은 보이지 않는 많은 애보리진 부족들 역시 도심에서 벗어나 문명이 거의 닿지 않는 사막에서 크고 작은 군락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연과 공생하는 법을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으며 점과 선을 이용해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 예술품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이 사람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모든 것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이 우주 속에 일시적인 변덕이나 우연 도는 무의미한 일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며, 아직 인간에게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신비가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무탄트 메시지 / 말로 모건




나는 종종 생각하곤 한다. 내가 내려버린 섣부른 판단으로 감춰져버린 진실은 없는지 혹시 하나의 시선으로만 상황을 바라보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 책을 읽은 것은 단순히 정보를 얻는 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시선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으로 상황을 이해하게 되는 일이었고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애보리진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깊이 있는 정신과 자연과의 공생 그리고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발전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통해 나는 내가 오래도록 지내온 '호주'라는 나라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알게 되었다. 아웃백을 여행하며 크고 작은 애보리진 마을을 지날 때마다 두려움 대신 반가움을 가지게 된 것은 너무나도 감사한 일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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