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나에게 알려준 것들
고래에 대해 한 번이라도 깊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었느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아마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겠다. '꽃보다 청춘'을 촬영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꽃보다청춘 촬영을 위해 탑승했던 웨일왓칭 크루즈는 사실 내가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단순히 고래를 보는 것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고래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인간으로서 자연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것들은 유독 그 여운이 오래 남는 것만 같다.
서호주 남쪽에 있는 던스브로라는 도시에서는 고래를 볼 수 있는 투어가 4월부터 11월까지 이뤄진다. 시야가 넓은 선장님이 운전을 해서 바다로 나가다 멀리서 물을 뿜어내는 고래의 흔적을 발견하면 배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두 시간 반 정도의 시간동안 고래 떼를 찾아 나서는 여정으로 나이 많은 분들을 위한 여행일 것 같다는 나의 편견을 깨버릴만큼 웨일왓칭은 상상 이상이었다. 배 갑판에 서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자연의 선물을 바라보는 일은 즐거웠다. 바람은 매서웠지만 고래를 찾으러 가는 길에 만난 정어리떼나 다이빙 버드를 설명해주는 가이드의 시선을 쫓아가 보는 일, 누가 먼저 고래를 발견할까 내기 아닌 내기를 하는 일, 우리가 타고 있는 배의 길이만큼이나 되는 커다란 몸을 이끌고 먼 거리를 헤엄쳐가는 고래를 바라보는 일은 경이로움을 넘어서는 일이라고 표현해도 괜찮았으리라.
험백고래Humpback Whale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녀석들은 한국에서는 흑고래 혹은 혹등고래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하얀 배를 뒤집고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수염 고래의 일종으로 젖을 먹이고 임신을 하는 여성 고래가 훨씬 더 큰 몸집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내가 탔던 크루즈 선박 만큼의 길이 즉 12~16m정도에 배 한척의 무게(약 36톤)정도가 나간다. 그들의 입과 턱 주변에는 많은 혹들이 나있으며 배에는 깊은 주름이 14~22개 정도가 있다. 엄마 고래는 12달의 임신기간을 가지고 있다. 보통 한 번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수정란이 두 개가 수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약한 수정란은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고 강한 수정란 하나만 살아남는다고 한다. 태어나기 전부터 약육강식을 혹독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새끼 고래는 엄마 고래와 함께 먼 여정을 떠나는데 수면 위로 올라오는 어미 고래의 거대한 물살에 힘을 보태어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쉰다. 엄마 고래는 이따금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새끼 고래에게 보여주고 시간이 지나면 새끼 고래도 엄마 고래의 모습을 보고 조금씩 수면 위로 도약을 시작한다. 그들이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것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다른 고래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와 근처에 다가온 적들에게 위협을 가하기 위함이라고 전해진다.
그들은 일년동안 120,000km의 거리를 여행하며 따뜻한 호주 북쪽에서 3개월 간 작은 크롤새우나 물고기들로 영양을 보충하며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 그리고 다시 남극으로 돌아가는데 그 시기에 사람들은 이동하는 고래를 조금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배를 타고 인도양 바다로 나아간다. 그들은 이동하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에너지로 수면을 뛰어오르곤 한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함께 수영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험백 고래가 다녀간 수면 위로는 '풋 프린트'라고 하는 고래 기름이 일시적으로 원을 그리는데 이 원들을 따라가다보면 고래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고래의 커다란 꼬리가 수면 위로 살짝 드러났다 다시 조심스레 바닷 속으로 향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것은 살면서 꼭 한번은 경험해봐도 좋을만한 일이었다. 고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일반인들 눈에는 구별이 되지 않지만 고래 한 마리, 한 마리의 표면 사진을 찍어 그들에게 고유의 번호를 부여해 고래의 건강과 이동경로 등을 파악하며 생태계를 보호하는데 힘쓰고 있다. 마치 우리가 태어나 이름을 가지게 되었듯 말이다.
문득 헤엄치는 고래를 바라보다 그들의 꿈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따뜻한 인도양에서 정착하는 삶? 일년 열 두달 배고플 때마다 허기를 채우는 삶? 아니 어쩌면 그들의 꿈은 매일매일 건강하게 바다를 헤엄치는 삶이 아닐까. 당연한 것들을 거스르는 욕심없이 묵묵히 물살을 가르는 고래의 모습을 보다 문득 눈물이 핑 돌았다. 누구나 고래를 직접 만나게 되면 그런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위너도 묵묵히 고래를 바라보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형, 저 고래 우리같지 않아?"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잠시 깊은 정적이 흘렀다.
누구나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지고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것이 운명이라면 기꺼이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 그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것이야 말로 고래가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알려준 교훈이 아닐까. 뜨거운 깨달음이 묻어있는 그 날 인도양의 석양은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나는 이따금 힘겹게 수면 위로 뛰어오르던 새끼 고래를 꿈에서 만나곤 한다. 아직은 작은 몸집이지만 곧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헤엄쳐 나가는 모습을 말이다.
길 위에 시간이 펼쳐지고 시간 속으로 길들이 이어진다.
눈앞에 걸어야 할 길과 만나야 할 시간들이 펼쳐져 있는 사실만으로 여행자는 충분히 행복하다.
포구기행 / 곽재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