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길은 유난히 닮아 있었다.

몰리나세카 - 페레헤

by Jessie

지난 밤 묵었던 몰리나세카, 내가 머물렀던 지난 밤의 숙소는 누군가의 집을 개조하여 순례자들에게 제공한 모습이었다. 다른 방에 머무는 순례자들도 있었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4인실에서 혼자 방을 쓸수 있었다. 지난 밤,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홍콩 아주머니와 캐나다 여자는 한국인들이 어떻게 영어 이름을 짓는지에 대해서, 한국인들이 왜 이 길 위에 많은지에 대해서 묻고선 코웃음을 쳤다. 나야말로 갇혀있는 생각을 하고 있는 그들이 의아하고 기분이 나빴지만 그런 사람들의 사고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사뿐히 그들을 무시했다. 그러고보면 누군가가 나에게 주는 상처를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상처라는 것은 내 선택에 따라 받을 수도 혹은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나니 이젠 쉽게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도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어젠 먼 거리를 한참동안 걸어서인지 지칠대로 지쳐 깊은 잠을 잤던 것 같다. 냉기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차가운 바닥이었지만 추위도 모른 채로 말이다.








새벽에 눈을 뜨니 창 밖으로 보슬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혼자서 방을 쓴 덕분에 눈치보지 않고 짐을 꾸려 길을 떠날 채비를 할 수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거리는 여전히 어두웠다. 노란 화살표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아 몇 번이고 길을 잃고 다시 되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그저 스스로를 믿고 도로를 따라 쭈욱 걷는 수 밖에. 도로만 따라가면 어디든 나오겠지, 하는 생각은 의외로 잘 맞아 떨어졌다. 우비를 입고 한참을 걷는데 등 뒤로 다른 순례자들의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들렸고 나의 걸음에는 걷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이 실렸다. 새벽이 오기 전, 그 칠흙같은 어둠이 조금씩 걷힐 즈음에야 작은 마을의 불빛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캄포'라는 이름의 마을은 오랜 스페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밤, 여전히 잠들어있는 마을은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다. 올리브 나무로 둘러쌓인 불빛들 사이로 오래된 교회와 집들이 보였다. 마을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마을, 잠들어있는 캄포를 조심스레 걸어내자 드디어 대도시인 폰페라다에 도착했다. 마을로 이어지는 커다란 다리는 현대와 중세의 느낌을 고루 갖추었는데 다리 너머로 비춰지는 마을은 비에 젖어서인지 더욱 운치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주위를 스쳐가는 순례자들은 웅장한 다리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감탄을 하고 있었다. 경쟁하지 않는 길 위에서 우리는 언제나 멈춰 서서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었다.








비에 젖어서도 충분히 아름다웠던 마을, 나는 순례길에서 잠시 벗어나 발길이 닿는 곳으로 나도 모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 곳에서 우연히 만난 벽화는 내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는데 벽화 속에 있는 표정없는, 목적지도 잃어버린 듯한 소녀는 마치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누구나 마음 속에는 저마다의 어린 아이가 자리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충분히 치유받거나 위로받지 못한 채로 자라나게 되면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어른이 되면 크고 작은 문제들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나에게도 그런 어린 아이가 하나 있었다. 매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동안 내 안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걸었다. 어느 날 문득 홀로 길을 걷다 문득 어둠 속에 앉아 홀로 울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했을 때 나는 그제야 내 앞에 선 아이를 '괜찮다'며 토닥여 줄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꿈꾸는 엄마의 모습을 미리 바라보는 것이라 단순히 넘겼는데 이 그림 앞에서야 그 것은 내 안의 상처받은 자아를 만난 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언젠가는 스스로 이겨내야 할 일이었고 아빠와 나의 상처를 위해서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땅히 직면해야할 문제였다. 덮어둔 상처는 언젠간 곪고 곪아 악취를 풍기기 마련이다. 더 이상 상처들을 안은채로 어른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템플기사단


순례 여행을 떠나온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결속된 템플 기사단은 교회 등에서 많은 지원을 받으며 상당한 부를 쌓아왔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의 음모에 몰려 대다수가 감옥에 갇히고 재산을 압류 당하고 고문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특히나 템플 기사단의 단장이던 자크 드 몰레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 화형시켜 본인의 권력을 많은 이들에 선전포고 했는데 자크 드 몰레가 화형 당하며 예언한대로 필리프 4세는 8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필리프 4세가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템플 기사단원들을 체포하던 날이 10월 13일의 금요일로 그 후 '13일의 금요일'을 불길한 날로 만든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엄청난 도시의 규모에 나는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템플 기사단 성문 앞, 채 문을 열지 않은 카페 처마 밑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비가 그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폰페라다는 템플 기사단의 성 뿐만 아니라 곳곳에 자리한 로마시대 유적들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며 유명한 와인 산지이자 풍부한 천연자원으로 산업과 경제의 요충지가 된 도시여서 다른 어느 곳보다 세련된 도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날이 밝아오며 비는 점점 잦아 들더니 순식간에 그쳤다. 마을 곳곳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카페의 창문 여는 소리, 커피 내리는 소리, 순례자들이 서로에게 인사를 건내는 소리까지 매일 수많은 소리가 이 도시를 가득 메웠다 사라지고 또 다시 메워지고를 반복하는 중일 것이다. 나는 문을 열지 않은 템플 기사단 성곽을 한참동안 서성이다 아쉬운 걸음을 돌려 다시 길을 나섰다.





폰페라다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서는 대학 순례자 도장을 받을 수 있다. 대도시에 온 기념으로 도장을 받아 움직이고자 거리를 확인했는데 왔던 길을 한참이나 되돌아가야한단다. 11kg의 배낭을 메고 40분이나 되는 거리를 다시 걸어야 하나를 고민했는데 지나는 사람이 버스를 타면 그곳까지 쉽게 갈 수 있다는 팁을 알려주었다. 버스 정류장을 찾던 중 마을 할머님들을 만나 길을 물었는데 스페인어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어 결국 나는 걸음을 옮겨 먼 거리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길을 잃어 헤매는 동안 꽤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고 모든 사람들은 친절하게 온 몸으로 길을 알려주었다. 어렵사리 대학교를 찾아 도장을 받고 다시 순례길로 돌아가는 길, 빵 냄새에 이끌려 낯선 골목에 들어선 나를 어린 아르바이트 생이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한국인이냐고 묻더니 슈퍼주니어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녀와 악수를 나누고선 온기가 가득한 빵을 입 안 가득 밀어넣으며 다시 길을 걸었다. 도시 구석구석을 여유롭게 훑으며 몸채 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빵을 우물거리는 소녀에게 사람들은 밝게 인사를 건냈다. 한참이나 왔던 길을 다시 걸어야하는 기운 빠지는 일을 해야하지만 길 위에서 내게 인사를 건내 준 많은 사람들 덕분에 걸음에 힘이 더해졌다. 동이 터오는 오늘은 길 위에 꽤 많은 순례자들이 함께 하는 중이다.







도시를 벗어나자 과수원과 크고 낮은 형형색색의 집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고풍스러워 보이는 호텔 앞쪽으로 몇몇 아주머니들이 모여 계셨는데 알고보니 체리 나무에 달린 체리를 따고 계셨다. 체리라면 사죽을 못쓰는 나지만 서리는 곧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이기에 모든 욕구를 절제하며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떤 순례자는 계절마다 카미노를 걷는 재미가 각각 다르다고 했는데 길 위의 달라지는 풍경들을 보고 일컫는 말이라는 생각이 비로소야 들었다. 양귀비가 그득한 길, 초록 밀밭이 바람에 일렁이는 길, 노란 들꽃이 핀 들판을 걷는 일 그리고 포도가 주렁주렁 익어가는 길을 걸으며 이따금 몇 알의 포도를 우물거렸을 사람들의 모습이 눈 앞을 스친다.






아직 포도가 파릇파릇 자라나고 있는 길을 지나다보니 와인으로 유명하다는 명성을 조금은 상상해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채 걷히지 않은 먹구름들이 하늘을 가득 덮고 있지만 그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아름다워 잠시 길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를 가지게 했다. 매일 햇살이 내리쬐는 길만 마주했다면 아마 나는 그 소소한 고마움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때론 비바람을 맞고 어둑어둑한 길을 걸었기에 비로소 나는 햇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었을테다. 비온 뒤 더 단단해지는 땅처럼 나의 인생도 조금씩 영글어 가는 과정이었다.








과거에 순례자들의 구호시설이 있던 예배당은 순례자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벽화의 무늬들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게 이 길을 지나는 순례자들을 오래오래 바라보며 건강과 안녕을 빌어주었을 그림 속의 순례자 앞에 잠시 서서 감사의 인사를 건내본다. 매일 그는 지치지도 않고 이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성스러운 순례길을 빌어왔을 테닐까 말이다.








체리 나무를 지나치고 꽤 오랫동안 체리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내 앞에 거짓말처럼 체리를 파는 청년이 등장했다. 반갑게 인사를 건내는 그에게 체리의 가격을 물었더니 도네이션이라고 한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1유로 60센트의 동전을 건내고 체리 한 봉지를 선물 받았다. 마을은 체리 나무가 그득했다. 체리를 입 안 가득 넣고 씨를 우물 거리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지나는 길마다 뱉어냈다.

체리 한 봉지로 이토록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알았다면 아마 더 많은 체리를 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순식간에 체리를 반 이상 먹어치웠다.6월에 순례길을 걷는 일은 꽤 행복하고 마음이 풍요로워 지는 일이었다.







남은 체리를 가방 한 켠에 고이 넣어두고 내 시선은 장미가 아름답게 피어있는 가정집으로 향했다. 그 언젠가 장미 꽃다발을 엄마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났다. 찬장 어딘가에 잠들어있는 화병을 꺼내와 꽃다발을 꽃아두던 엄마, 어려운 살림살이에 시장 한 켠에 마련한 집에서 나를 낳고 키우던 엄마는 평생 하고 싶은 일, 꽃 한 다발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한 채 50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지난 시간들을 내가 다 갚을 수 있을까, 그러기에 내가 가진 것이 너무나 초라해 보이기만 하는 건 왜였을까. 엄마는 항상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해줄 수 없는 게 없어서 미안하고, 가진게 많지 않은 부모여서 미안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항상 갈구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야만 했던 내 욕심에 엄마는 참 많이 우셨다. 나의 욕심을 감당해내기엔 부모님이 너무 작다며 어른이 된 내 앞에서 조그맣게 우셨다. 이미 나는 충분히 이기적이었고 결국 아빠와 다투고 몰래 배낭을 짊어지고 나올만큼 나는 이기적이고 못된 어른이 되어있었다. 이제서야 비로소 눈물이 났다. 밤새 잠 한 숨 못자고 몰래 집을 나서는 내 앞에 토끼눈을 한 엄마가 서있었다. 엄마는 몰래 엄마의 카드를 손에 쥐어주었다. 먹고 싶은 것 혹은 사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고민하지 말고 쓰길 바라면서 말이다. 엄마를 울리고 결국 떠나온 그 길을 지금 내가 걷고 있었다. 울고 있는 나에게 길을 걷던 순례자가 휴지를 건냈다. 부끄러움에 눈물이 멈추는 듯 하더니 금새 또 흐르기 시작했다. 언젠가 엄마도 나처럼 꽃을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을텐데,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던 예쁜 시절에 활짝 그리고 오래 피어보지도 못하고 나이 들어버린 엄마는 나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눈물을 닦고 한참을 걷자 어느새 활짝 갠 하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홀로 무거운 걸음을 걸어내는 나를 위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나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일과 부모님이 바라는 안정적인 삶 가운데서 저울질을 하고 있다. 더 넉넉한 환경이었다면 과연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을 살았을까, 나는 마지막까지도 이렇게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행복이 결국은 부모님이 행복해지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말이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생각이 바뀌고 또 바뀌었다. 나는 예측할 수 없는 날씨처럼 하루에도 수십번씩 순식간에 바뀌어 버리고 만다.






좋아진 날씨에 나는 자꾸만 카메라를 꺼내들 수 밖에 없었다. 돌돌 말린 짚단은 제주 또 호주의 풍경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러고보면 내가 사랑하던 풍경들은 푸르름이 언제나 가득했고 사람보다는 자연이 우선이 되는 장소였으며 도시라는 이름보다는 마을과 더 가까운 이름의 장소들이었다. 그리웠던 장소에 언제 다시 닿을 수 있으려나, 잠시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마음이 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풍경이 마음 한 켠에 담겨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카카벨로스 다리를 건너며 아름다운 마을 풍경에 잠시 넋을 놓고 있는데 강가에 나란히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한 노부부가 카메라 앵글에 들어왔다. 그들의 모습만으로 풍경은 어느새 따뜻하고 아름다워졌다. 차마 사진에 오롯이 담을 수 없는 느낌이지만 지금의 감정들을 잊고 싶지 않아 나는 그 찰나의 순간을 담고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나도 저런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성숙해져가는 모습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늙어가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순간을 마주해야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나이를 먹어갈지에 대한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그 날을 준비하는 것이 결국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보았다.

아이들을 모두 독립시키고 다시 둘 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 부부는 아마 많이 닮아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며 겪어온 많은 일들을 아마 강가에 앉은 노부부는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함께 회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 인구가 5천명을 조금 웃도는 비야프랑카 라는 마을에 닿았다. 점심 때를 놓치고 한참을 걸어서인지 허기가 조금 사그러들었지만 그래도 유서 깊은 마을에서 좋은 식사 한끼를 하고 싶었다.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테라스에 앉아 햇살을 즐기고 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2시가 넘은 시각에 산길을 올라야 하나를 꽤나 고민하는데 화창한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를 피해 레스토랑의 지붕 안 테이블에 앉아 주문한 순례자 음식을 즐겼다. 꽤나 훌륭한 음식을 10유로에 즐기며 오랫동안 식사를 했다. 긴 거리를 걸어서인지 와인을 마시고 금새 온 몸이 나른해졌지만 다시금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걸음을 옮기자고 마음 먹었다.


모두가 걸음을 멈춘 오후 4시, 길 위엔 아무도 없었다. 몇 번이고 길을 잃었지만 다시 길을 묻고 찾아가기를 반복하는데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사람을 보지 못하기도 했고 금새 어두워지기 시작해 두렵고 무서운 감정이 엄습해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맛있는 점심과 와인을 즐기며 행복해하던 나는 금새 괜히 걷기 시작했다며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되돌아갈 수 없을만큼의 거리를 걸었기에 이를 꽉 깨물고 다음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오르막 길은 언제나 턱 끝까지 숨에 차오르게 했지만 오늘은 유독 고요한 길 위에서 그 숨이 더 거칠게만 느껴졌다.






산길에 위치한 마을인 '페레헤'

마을을 만나자 두려움에 떨었던 몸이 녹는 듯 했다. 길을 걷는 동안 차를 타고 주변을 지나던 호기심 어린 아저씨를 만난 후 너무 긴장을 해서인지 근육이 아파오는 듯 했다. 여자 혼자 길을 걷는 것에 대해두려운 적은 없었지만 어두워지는 시간이 되면 밀려오는 두려움은 이겨내기가 어려웠다. 혹시 알베르게에 자리가 없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몇 자리가 남았단다. 푹신한 침대 한 켠에 배낭을 내려둔 채 잔뜩 지친 몸을 이끌고 세면실로 가려는데 이탈리아 엉클을 우연히 만났다.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다행스러움인지, 엉클의 따스한 체온 때문이었는지 나는 포옹을 하자마자 엉엉 울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오래 머물렀지만 엉클은 오래도록 나를 토닥여주시며 눈물이 멈추기를 기다려주셨다.


'많이 무섭고 외로웠구나'


나를 쓰다듬어 주시는 손길에는 그런 위로가 담겨있었다.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매일 느끼며 걷고 있다. 약하지만 동시에 강하기도 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아가고 있고 말이다.








6월 17일


오르막 길의 초입에 있던 미국 락가수 톰 페티의 Life is a highway 의 가사.



삶은 당신이 여행하고 있는 길과 같습니다.

어떤 날은 여기 있지만 다음 날은 다시 떠나야하는,

어떤 날은 구부러지고 또 어떤 날은 멈춰 서있겠죠.

또 어떤 날은 마주오는 바람을 헤치고 당신이 걸어온 그 길로 돌아가야겠죠.




외롭고 어두운 길을 걷는 내 가슴에 오래 남아 여운을 남기던 가사였다. 이 가사를 핸드폰에 담아두고 몇 번을 여러번 곱씹으며 마음에 담았다. 여행과 삶이 닮은 점에 대해 생각하며 어쩌면 그 것이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여행을 하면서 삶을 살아내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은 그 길 위에서 하게 된 수많은 생각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배우는 삶의 경험 덕분일것이라고 말이다.


여행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이유는 더 풍부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함일테니 나는 오늘의 걸음을 후회없이 걸어가겠다. 그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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