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리데 - 몬테도 데 고조
지난 밤, 멜리데에서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 곳 스페인에서는 10시가 가까워서야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해질 무렵이면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기 때문에 나도 자연스레 그들의 생활 리듬에 맞춰가게 된다. 뒤늦게 부스럭거리며 잠자리를 정리하다보면 사람들의 잠을 방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산티아고는 혼자의 의지와 걸음으로 걸어내는 길이지만 그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는 길이기도 하다.
침낭 속에 들어가 억지로 잠을 청하기 무섭게 잠이 들고 말았다. 숙면을 취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육체 노동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떴지만 50km나 되는 거리를 배낭을 메고 걷긴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알베르게 옆 호스텔에 가방과 함께 돈을 담은 봉투와 이름 그리고 목적지를 남겨두고 길을 나섰다. 낯선 곳에 익숙한 나의 물건을 두고 떠난다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오늘은 걸어야 할 걸음이 천리다.
해가 떠오르면서 안개로 가득 했던 공간이 점점 초록으로 채워진다. 새벽을 뚫고 초록을 깨우는 들판에는 기분 좋은 이슬 냄새가 났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 내가 좋아하는 시간, 내가 좋아하는 냄새. 작은 것들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는 법을 깨닫게 된 이후로 내 마음이 더 깊게 숨을 쉬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내 감정들에 충실하고 더 많이 웃고 감동했으며 그런 마음으로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타인을 마음으로 안아줄 수 있는 가슴을 가지게 되었다. 때론 백 번의 말보다 잠시의 체온을 나누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깊은 위로가 된다는 걸, 녹음이 짙어지는 아침을 바라보며 잠시 기억해 냈다. 상처 입은 나를 안아주던 사람들, 그들은 나에게 체온을 나눠주었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다시 일어나는 용기를 얻었다.
모두 저마다의 무게를 얹고 길 위에 섰다. 모두가 저마다의 짐을 지고 길을 걷고 있기에 덩그러니 가벼운 몸으로 길을 걷고 있는 오늘 하루가 조금은 죄스럽게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나의 책임을 떠맡긴듯한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한 발짝, 한 발짝 그 모든 걸음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걸음을 옮기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함과 존경스러움이 함께 솟아 올랐다.
태어날 땐 가벼운 몸으로 태어나지만 살아가며 책임, 성실, 가족, 일과 같은 짐들을 하나 둘 짊어지고 살아야하는 우리의 운명이 길 위에서 저마다의 짐을 지고 걷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살아가면서 작은 무게 하나 책임지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 살면서 크고 작은 도움을 받는 일이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것 그렇기에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나 역시도 손을 내밀어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것도 말이다.
길 위에선 순례자들은 각자의 무게를 견디며 매일 고된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우리가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곁을 지나는 수많은 이들의 격려와 응원 덕분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며 말이다.
앞서 걷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기억에 떠오르는 길이 하나 있었다. 초등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걷던 논 사이의 작은 길, 단짝과 함께 걸었고 함께 키우던 강아지와 걸었던 그런 길을 풋내기의 사랑이라 부를 수 있었던 그 아이와 함께 걷곤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던 그 아이의 감정을 채 알지도 못한채 중학교에 가게 되었지만 후에 같은 남녀공학에 입학하면서 우린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함께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했던 날, 그 날은 야속하게도 눈이 펑펑 내렸다. 내가 타고 있던 버스는 거북이처럼 느린 속도로 겨우 목적지에 나를 데려다 놓았고 나는 한참을 달려 약속 장소로 향했다. 바보처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밖에 서 있었는지 눈사람이 되어버린 그 아이의 머리 위로 하얀 눈이 가득 쌓여 있었다. 미안하고도 안쓰러운 마음에 꽁꽁 얼어버린 그 아이의 손을 덥썩 잡아 내 코트 속으로 넣고 그를 안던 순간, 그 아이의 심장 소리는 나에게도 다 들릴만큼 크고 선명하게 그리고 빠르게 울리고 있었다. 그렇게 계절이 지나는동안 우리는 몇 번이고 그 소박하고도 푸르렀던 길을 함께 걸었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던 무렵, 그 아이는 처음으로 나에게 용기를 냈다.
"나 이 논길 3분 만에 다 지나갈거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3분만 내 뒷모습 지켜봐줘. 알겠지?"
볼에 입을 맞추고 대답할 겨를도 없이 달리던 뒷모습, 그렇게 골목이 끝날 무렵 뒤를 돌아 나에게 손을 흔들던 아이. 그 것이 우리의 마지막 추억이었다. 어떻게 마음이 어긋났던 건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따금 그 길을 걸으면 그 아이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서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곤 했다. 그 소박하고도 아름다웠던 풋사랑의 추억을 까마득히 잊어가고 있었다. 어른이 되면서 잊어가는 것들이 하나 둘 생겨났고 그 사이를 비집고 그리움들이 하나 둘 쌓여가고 있었다.
길을 걸으며 참 많은 사람들을 떠올렸고 또 그리워했다. 그리워진만큼 그들에게 고마웠던 감정들을 하나 둘 떠올리며 한 사람 또 한 사람에게 축복을 보냈다. 전화를 걸 수도, 메세지를 남길 수도, 이야기를 건낼 수도 없는 사이가 된 이들도 있지만 마음으로나마 고마웠던 모든 사람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한 때 나의 소중했던 이들을 떠올리며 축복을 건내는 순간,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돌아가면 채 편지를 보내지 못했던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여행을 떠날 때면 언제나 잊지 않았던 것이 바로 낯선 풍경이 담긴 엽서에 마음을 담고 본적도 없는 나라의 우표를 붙여 편지를 보내는 일. 그 곳에서 느낀 감정과 찰나의 순간들을 공유하고 싶은 욕심이 에둘러 펜을 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장소를 뛰어 넘은 먼 나라에서도 '오롯이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고, 거리를 뛰어넘어 함께라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얼마나 오래 걸릴진 모르지만 내 체온이 닿았던 글들이 비행기를 타고 아주 먼 고국의 작은 우체통에 꽂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금새 행복해졌다. 내가 걸음을 옮기는 이 순간에도 몇 통의 편지들이 비행기를 타고 멀고 먼 여정을 이미 떠난터였다.
내 가방은 택시로 보내버렸기에 나는 후니와 배낭을 나눠 짊어지고 걷기로 했다.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후니에게서 배낭을 빼앗아 둘러메고 씩씩하게 길을 나선다. 몸은 잠시 휘청거렸지만 마음은 금새 편안해졌다. 감당할 수 있을만큼의 짐을 져야만 비로소 걸을 수 있는 용기가 나는 것은 인생도, 산티아고 순례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아침도 채 먹지 못한 우리는 카페에 잠시 들러 모닝커피를 마셨다. 카페 창문 너머로 은은하게 쏟아지는 햇살을 보고 있노라니 오늘 하루동안 걸어야 할 길들이 까마득하게 잊혀졌다가 커피잔의 바닥이 보일무렵부터 다시 선명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일이면 그토록 그리고 오랫동안 그리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이른 아침이라 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많았다. 저마다의 이유와 모습으로 길을 걷는 사람들 곁으로 짙어가는 봄과 그 봄을 채우는 새싹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시골에서 자란 것에 너무나도 감사하게 되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워왔다는 것이다. 아마 도시에서 자랐다면 이런 소소한 행복을 채 느끼지도 못하며 자라왔겠지. 문화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조금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대신 자연에서 자란 덕분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담아낼 수 있는 시선을 가지고 자랄 수 있었다. 나는 자연 속에서 비로소 빛이 나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마을이 나타났다. 꽤 괜찮아 보이던 알베르게 옆엔 무인 카페가 자리하고 있었다. 동전 바스켓과 물, 커피, 소소한 간식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을 보니 과연 이 카페의 주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있다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알기에 그들의 너그러움과 믿음에 감히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매번 인턴 생활을 하며 변변찮은 돈 한번 벌어본 적도 없지만 무언가를 '소유'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적 또한 없다.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마음을 채우는 것들에 더 많은 노력과 돈을 쓰며 지내왔다. 이 길을 걷게 된 것 또한 가방이나 옷, 화장품 같은 것들보다 마음을 채우는 일이 더 중요했기에 떠나오게 된 것이었다. 물론 모든 여행들에서 내가 고민하던 것들의 답을 얻거나 마음이 채워진 채로 돌아오게 된 것은 아니지만 여행지에서 보낸 혼자만의 시간이 끊임없이 나에게 '내가 누구인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혹은 '왜 그 길을 가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던졌고 나는 그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조금씩 완성해가고 있었다.
언젠가 엄마는 나에게 그런 이야길 한 적이 있다.
"나는 니가 내 딸이지만 가끔 니가 독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그 당시엔 '독하다'는 어감이 그리 긍정적으로 들리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그 '독하다'는 말을 조금씩 좋아하게 되었다. 그만큼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뚝심있게 걸어 나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독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일도 해낼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에 삶이 흐르는 방향을 잊지 않고 우직하게 걸어내야 한다. 독하고 단단하지만 그 단단한 껍질 안에는 따뜻한 체온이 흐르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우직하게 길을 걸어내고 있다. 발이 아프고 몸 구석구석이 고통스러워도 기쁘고 행복한 지금의 이 마음을 잊지 않고 '내 일'을 찾아내겠다고 아니 그렇게 될 거라고 나는 마음 깊이 새겨넣었다.
오늘 H는 나에게 서툰 고백을 해왔다.
"누나, 나는 결혼할 여자가 아니면 연애를 하지 않겠다는 가치관으로 살아왔어. 근데 누나를 만나고 꼭 그렇게 살아야만 할까?하고 내 생각의 중심이 흔들렸어. 누나의 마음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냥 내 마음을 말하고 싶었어"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도 H의 걸음은 이미 조금은 가벼워 보였다.
사실 나는 H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H와 떨어져 걷는 순간들 속에서 문득 그리워지는 순간이 많았지만 그 감정을 섣불리 정의내리진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아이도 어떤 대답을 듣기 위해 했던 말이 아닐지도 몰랐다. 하지만 분명 아름답고 성숙한 H와의 걸음은 나에게 소중했고 매일의 깨달음을 주었다. 이렇게나 따뜻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오게 된 거라고 믿고싶을 만큼 말이다. 나는 H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건냈다. 분명 산티아고 순례길이 끝나고나면 무척이나 보고싶을 거라고 말이다. 매일 조금씩 성숙해져가던 H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일들은 나에게 가장 큰 축복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끝나고 어느새 시야에는 한 쌍의 부부가 담겼다. 가까워졌다 다시 멀어지기도 하며 그들은 적당한 보폭을 맞춰 걷고 있었다. 예쁜 꽃을 보면 함께 멈춰 서서 향기를 맡고 가방에서 물을 꺼내 나눠마시고 사진을 찍으며 여유있는 걸음으로 서로가 바라보는 것들을 함께 담아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나는 그들을 오래오래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길 위에 함께 선 모든 부부들은 서로에 대한 깊은 배려와 시선으로 그 누구보다 풍성하게 순례길을 채워가고 있었다.
이제 정말 산티아고까지 얼마 남지 않았구나, 표지판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내 어깨를 누군가가 툭툭 두드렸다. 이탈리아 엉클이었다. 나에게 다음 마을에서 함께 쉬었다 가기를 청하시면서 오늘 저녁에 파스타 요리를 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배낭이 있는 몬테도 데 고조까지 먼 걸음을 해야한다고 말씀드리니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포옹을 해주셨다. 나에게 누군가와의 포옹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체온을 나누는 위로였고 반가움이였으며 나를 '나'로서 안아주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엉클은 산티아고에서 만나게 되면 순례자 핀을 선물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우리는 그곳에서 꼭 만나자고 기약없는 인사를 나눴다.
이제 산티아고까지는 19.5km. 사실 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지만 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저 거리를 걸어내기 위해서는 꼬박 하루가 걸린다는 것을 말이다.
길을 걸으며 나는 버스를 타고 지나는 이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이를 부러워했다. 부모가 일궈놓은 길을 어려움 없이 지나며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해도 시작점이 다른 삶을 따라갈 수는 없을 거라는 것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 두 발로 온전히 길을 걸어내며 작은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지는 것을 배웠고 길 위에 놓여진 수많은 것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비록 나는 느릴지 모르지만 온 몸으로 길을 걸으며 조금씩 단단해졌다. 몸 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단단한 근육이 생겼다. 물론 그 근육을 얻기 위해 내 발은 온통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 덕분에 건강한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다른 이들의 삶이 부럽지 않다.
5시가 다 되어서야 긴 하루의 여정이 끝이 났다. 이미 빨래와 샤워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가운데 오늘은 H가 자신만만하게 요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오르는 맛이었다.
정성으로 배를 가득 채우고 맥주 한 캔을 들고나와 일기를 써내려 가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해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노을 지는 언덕의 곡선을 따라 눈물을 흘렀다. 아쉬움의 눈물이기도 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눈물이기도 했다. 드디어 내일, 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쉬움이 가득 밀려와 소매를 몇 번이고 훔치고서야 나는 비로소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길 위에서 나에게 깨달음을 준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꺼내보며 그들의 안녕과 행복을 진심을 담아 기도했다.
6월 22일
길 위의 노란 화살표는 조금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했다.
삶의 마침표가 누구에게든 평등하게 주어진다면 나는 조금 더 오래 걸음을 걷더라도
더 많은 배움과 깨달음으로 채워갈 수 있는 길을 가겠노라고 다짐했다.
벌써, 내일 나는 이 오랜 여정의 끝을 만난다.
얻고자 했던 답을 찾진 못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고 돌아가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