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산티아고

몬테도 데 고조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산티아고 대성당)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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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남아있는 한 가지 작은 욕심은 동이 트는 새벽, 대성당 앞에 홀로 앉아 오래도록 그 성당을 올려다 보는 일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 곳에 닿았을 때 내가 어떤 마음으로 대성당을 마주하게 될 지를 알고 싶었다. 기쁠까, 끝이 났다는 생각에 아쉬울까 아니면 믿겨지지 않아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까 를 말이다.


사람들이 채 일어나기도 전인 새벽 5시, 나는 그렇게 주섬주섬 지난 밤 대충 싸두었던 짐을 들고 마지막이 될 걸음을 홀로 걷기 시작했다. 거리는 주말을 맞이한 사람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 머물렀던 열기가 여전히 맴돌고 있었고 때론 술에 취한 사람들이 거리 한켠에 남아 새벽의 차가운 공기에 남아있는 술기운을 털어내려 애쓰고 있었다. 그들은 몸채만한 배낭을 메고 한 걸음, 한 걸음 힘있게 내딛는 조용한 나의 걸음을 오래도록 소리 없이 지켜보았다.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고 그저 잠시의 눈 인사가 머물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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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길을 걸을 때 마주하는 그 설레임과 두려움의 감정은 인생과 유독 닮아있다. 모두가 나에게 꿈꾸던 일을 해내는 실행력이 대단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그 무엇도 알지 못했기에 용감했을 뿐이었고 그렇기에 내일을 걱정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과 본능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섰다. 나는 직감을 믿는 사람이었기에 그 직감에 따라 용기를 낼 수 있었을 뿐이었다. 5년이란 시간동안 눈을 감으면 언제나 선명하게 그려지던 그 길을 꿈꾸다보니 비로소 그 길 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엇도 정해지지 않았을 땐 막연한 산티아고와 관련된 책을 읽고 사진을 보고 만화를 보며 마음을 키워가는 연습을 했다. 하지만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난 후 다음의 행동들은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꿈꿔온 모습으로 진행되어 갔다. 매일 10-20km씩 꾸준히 걷는 연습을 하며 필요한 물건들과 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모든 시작은 비행기 티켓을 끊으면서부터 시작된다던 그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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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오랫동안 길을 걸었다.

내가 지금까지 느끼고 깨달은 것들, 용서해야하는 사람들, 용서 받아야 하는 사람들, 내가 해야하는 일들에 대한 생각들을 하나씩 마음 속에서 꺼내어 오래도록 살펴보고 곱씹으며 그리고 깊이 호흡하며 걸었다. 그게 이 길에 대한 예의이자 지난 아픔들에 대한 예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동이 트기 시작했고 어느 새 길은 점차 나를 그 곳으로 이끌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산티아고 대성당의 뾰족한 첨탑은 자꾸만 가슴 속 어딘지 모를 감정의 주머니를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이 커다란 마을은 미로처럼 구불구불 거렸고 때론 부랑자들이 거리 한 켠에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 지나는 순례자들에게 구걸을 해댔지만 그 조차도 신경쓰이지 않을만큼 심장이 뛰고 있었다. 5년이란 시간동안 마음 한 켠에 담아둔 무언가를 두 눈으로, 가슴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컸다. 코너를 돌아 광장으로 걸어 나가면 마침내 오랜 시간동안 꿈꾸던 그 곳에 도착하게 된다는 사실이 자꾸만 목이 메이게 했다.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붙잡고 나는 가만히 멈춰서서 쉼호흡을 하고 마침내 광장으로 나섰다.


동이 터오르고 있는 광장은 고요했고 오롯이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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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광장 가운데 주저앉아 동이 완전히 터오를 때까지 나는 오래도록 광장을 올려다 봤다.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자꾸만 터져나와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울고 싶을 땐 울어야 한다는 생각에 광장이 울릴만큼 아주 크게 울어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광장엔 몇 몇 사람들이 성당을 올려다보며 저마다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세상은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의미있는 날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상과 다를 바가 없는 날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미칠만큼 아프고 슬픈 날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을만큼 기쁜 날이기도 했다. 누군가가 그랬다. 세상엔 슬픔과 기쁨이 딱 절반이라서 나의 기쁨이 때론 누군가의 슬픔의 이면이라고 말이다. 영원한 슬픔도, 영원한 기쁨도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에게 깨우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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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에게 아픔을 준 사람들을 모두 용서할 수 있을까. 그와 함께 내가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를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이 함께 눈 앞을 지났다. 죽음 앞에서도 나는 어리석게 누군가에 대한 미움을 한 켠에 간직한채 눈을 감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나니 '미움'이 거짓처럼 사르르 녹기 시작했다. 나는 채 성숙하지 못해 잘되라는 기도는 할 수 없지만 이 먼 길을 걷고서야 비로소 그 누군가들이 나에게 준 상처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멀고도 먼 길을 걸어 그 하나를 버리고 가는구나, 어쩌면 그 '미움'이 너무나 무거웠기에 나는 그들을 채 내려놓을 용기를 얻지 못한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서도 아주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성당을 올려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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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도착한 덕분에 남들보다 먼저 성당을 둘러볼 수 있었다. 겨우 몇몇 사람들이 앉아 기도를 올리고 있는 신성한 새벽, 광장엔 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성당에는 미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조금은 분주했다. 사실 어제 무리를 해서라도 이 곳에 주말에 도착한 이유는 인생에 한 번 뿐일지 모를 일요일 향로 미사를 두 눈에 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기도하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성당 뒷켠에 조용히 배낭을 벗어두고 무릎을 꿇었다. 드디어 이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조용히 내딛으며 깨닫게 된 것들을 평생 잊지 않고 살 수 있는 마음을 불어 넣어 주시기를, 그 누구보다 상처입으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이제는 희망의 존재가 될 수 있기를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마음을 다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용기를 주시기를 아니 그런 사람이 되겠노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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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도를 올리고 비로소 순례자 사무실을 찾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 걷고 나면 그제서야 순례자 증서를 받을 자격이 생긴다. 순례자 사무실의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순례자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고 사무실 앞엔 줄지어 세워둔 배낭이 그득했다. 800km를 두 발로 다 걸어내고서 이름이 적힌 순례자 증서와 원통형 케이스를 들고 밖으로 걸어나오는데 오랫동안 꿈꿔오던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기쁨과 함께 목적지를 잃었다는 슬픔이 한데 어우러져 알 수 없는 감정을 자아내고 있었다.


'가야할 길을 잃었다'


어쩌면 이 말이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로소 마침표를 찍었지만 나는 더 이상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부랑자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자유로워졌지만 그 갑작스러운 자유로움 앞에서 나는 잠시 외로웠고 혼란스러웠다.

더 이상 따라서 걸을 화살표가 없다는 사실이 문득 허기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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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안정한 감정을 채 추스리지 못한채 나는 다시 대 성당 앞으로 털레털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익숙한 모습을 찾았다. 주변의 수 많은 걸음에도 아랑곳 않고 오랫동안 성당을 올려다보는 H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보다 더 깊은 마음으로 하루하루 신을 향해 걸음을 옮긴 저 아이의 감정은 더 떨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섣불리 이름을 부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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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내 뒤에서 걸으며 앞서 걸음을 옮기는 나를 오랫동안 눈에 담았을 녀석을 위해 오늘은 내가 한 걸음 뒤에 물러 앉아 녀석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주었다. 뒷모습은 솔직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는 뒷모습, 나 스스로는 알 수 없지만 다른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서야 비로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모습 말이다. 뜨거운 애정이 없다면 타인의 뒷모습을 담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누군가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일 또한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H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성당을 올려다보고 있었던 것인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나도 그 뒷켠에 앉아 오랫동안 그를 하나의 풍경처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 밖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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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배낭을 베고 광장에 누워 하늘과 성당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이름을 힘껏 불렀다. 목소리를 따라 가보니 이탈리아 엉클이 나에게 손을 흔들고 계셨다. 함께 길을 걸으며 마음을 나눈 사람과 마지막의 기쁨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나는 감격의 포옹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함께 마지막을 나눌 수 있다는 반가움의 눈물이기도 했고, 힘들 때 나를 안아준 엉클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기도 아쉬움의 의미이기도 했다. 한참을 울던 내 두 손에 엉클은 무언가를 쥐어주셨다. 그 것은 바로 산티아고 순례자가 담긴 핀이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만나게 된다면 꼭 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셨는데 이 것이었구나, 잊지 않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도 따뜻한 일인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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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엉클과 다소 소란스러운 재회를 한 덕분에 H에게 존재를 들켜버린 나는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함께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순례자 사무실에 증명서를 받으러 간 H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길 위의 기념품 가게에서 몇 장의 엽서를 사서 카페에 앉았다. 산티아고 길 위의 아스토르가에서 먹는 핫초코와 츄러스야 말로 스페인과 순례길을 대표하는 음식이라 들었는데 산티아고 데 성당이 있는 마을에서 먹는 츄러스 또한 잊을 수 없는 달콤한 맛이었다. H가 오면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를 꼭 대접하기로 마음 먹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생각나는 사람은 정말로 보고 싶은 사람이라 했는데 어쩌면 정말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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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초코를 후후 불어 마시며 엽서를 썼다.

내 여행을 후원해준 보고싶은 친구에게, 곧 먼 여정에 떠날 H에게 그리고 나에게 말이다. 류시화 시인의 책을 종종 꺼내 읽곤 하던 이 아이의 모습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자꾸만 기억에 남을 것만 같았다. 순하디 순한 그 마음이 참 예뻤는데 오늘 H는 산티아고 내내 차고 있던 실팔찌를 내 팔목에 묶어 주었다.


"이 실팔찌가 누나의 팔목에 걸려 있는 것으로 누나의 마음을 대신할게. 호주에 가더라도 씩씩하게 잘 지내고 이 실팔찌가 누나를 지켜줄거야"


나보다도 더 어른스럽고 따뜻한 H의 덤덤한 듯 따스한 그 마음이 팔목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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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향로 미사가 있는 날이라 꽤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와이파이 존에서만 비로소 통신이 되는 바람에 H를 잊어버려 결국 혼자 향로미사를 보게 되었다. 그들은 오늘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 증명서를 받아간 사람들의 이름과 국가를 하나씩 읊어주며 축복을 내려주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광경이 펼쳐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은 충분히 성스러웠다. 홀로 앉아 있는 내 곁에 브라질에서 온 에드워드가 옆자리에 앉아도 될지를 아주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렇게 함께 앉아 알아듣지 못하는 미사를 오래도록 들으며 기도를 올렸다. 지난 한 달 간의 여정을 꺼내보는동안 보타푸메이로 라는 향로가 순례자들 머리 위로 거대한 추운동을 하며 지났다. '보타푸메이로'는 갈리시아 어로 '향을 내보낸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향로에서는 연기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으며 향냄새는 깊고 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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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고 커다란 향로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꽤 많은 성직자의 힘이 필요하다. 향로가 움직이는 거리는 왕복으로 65m 정도이며 무게는 80kg이다. 향로통이 움직일 때마다 그을음과 연기가 흘러나오는데 이는 어리석은 생각을 쫓아낸다는 종교적인 믿음을 지니고 있다. 오랫동안 잘 씻지도, 옷을 빨지도 못했던 순례자들에게서 나는 냄새와 전염병을 예방하고자 향로가 고안되었고 11세기 경에는 많은 순례자들이 성당에서 숙식을 해결했기에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성당의 구조상 향로는 무척이나 유용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 전통이 오늘 날까지 이어여 오늘 날에는 많은 순례자들과 관광객들을 이 곳에 불러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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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의 인파에 밀려 함께 성당을 빠져나왔다. 어두컴컴했던 성당에서 나오자 눈부신 햇살에 잠시 화이트아웃현상에 휩쌓였다. 온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이는 순간, 나는 잠시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아니 그렇게 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벼운 마음을 아주 오랜만에 가져보는 것 같았다. 얼마만에 느끼는 감정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멀고도 먼 길을 걸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해서야 그 동안의 짐들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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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여행을 사치라고 표현할 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행을 깨달음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꼭 무언가를 보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먹고 즐기기 위해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좋다. 꿈꾸던 풍경 앞에서 기분 좋은 낮잠을 자기 위해, 예쁜 노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여행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파리에서 뭘 보고 왔어?"라고 누군가가 물어왔을 때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지라와.." 처럼 유명한 무언가를 봐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풍경을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세느강의 키스하는 연인들과 그 위로 거짓말처럼 날아가는 비둘기들, 골목길 언저리에서 바라보는 먼 발치의 에펠탑 그리고 지나는 카페에서 구매한 한 잔의 카푸치노의 부드러움'정도가 나에겐 파리를 기억해내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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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일들은 타이밍이었다.

섣불리 일어난 일도 없었고 그저 그런 일도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일들은 언젠가 오랜 나의 친구 루이스가 말해준 것처럼 그 '어떤 이유'로 인해 일어나는 일이었다.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어학연수를 갈 수 없었기에 1년 이란 시간의 간절함이 더해져 디즈니월드에 갈 수 있었고 그 1년이라는 시간동안 수술받은 엄마의 곁을 지키며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선한 마음을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을 만나며 '믿음'이 누군가에게는 악용이 될 수도 있는 삶의 가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서도 비로소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길을 걸었다고 해서 아빠와의 관계가 그리 쉽게 풀리거나 호전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도 지금에서야 이 길을 걷게 된 것은 비로소 아빠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내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조금 어리거나 조금 더 나이를 먹었다면 나는 지금만큼의 이해와 포용력을 발휘할 수 없었을 지도 몰랐다.


지금 내 앞의 산티아고, 이보다 더 기막힌 타이밍이 존재할지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겠지만 그 모든 것들의 어떠한 이유로 인해 나는 이 곳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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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후면 이 곳에 도착하게 될 톰아저씨를 그리워해본다. 삶의 '마침표'를 위해 인생의 화살표를 따라 이 길 위에 섰다는 톰아저씨는 암 말기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과 살아온 인생을 멀리서 바라보며 정리하기 위해 이 길 위에 섰다며 웃었다. 후회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도 어렵고 힘겨운 과제겠지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언젠가 나 역시도 마침표를 찍게 되는 그 어느 날, 톰 아저씨를 닮은 미소를 지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멀리서 느린 걸음을 옮기는 벨기에 레이몬드 할아버지가 대성당 앞을 지나며 나를 발견하시곤 반가운 인사와 뜨거운 포옹을 건내셨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마음 속 꿈을 이루기 위해 언어가 통하지 않는 스페인에서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어내신 가장 멋진 순례자. 흔들림없이 그렇게 홀로 외로운 길을 걸어내시던 할아버지의 발갛게 상기된 볼이, 나를 아무 의심없이 믿으며 도움을 청하셨던 그 모든 것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만 같았다.


일본에서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아버지의 채 타지 않은 뼛조각과 함께 길을 나선 유코도 아마 나와 멀지 않은 곳에서 이 곳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고 있음을 안다. 그렇게 함께 눈물을 흘리고 마음을 나눈 그녀와 더 이상 만나지 못한 것이 오래도록 마음에 걸렸는데 산티아고에 도착한 기념으로 그녀에게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아마 그녀의 아버지는 하늘에서 이 모든 것들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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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광장에 벌러덩 누웠다. 오늘은 더 이상 길을 걷지 않아도 된다. 한 달간의 피로가 그새 밀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광장에 한 가득 쏟아지는 햇살을 덮고 누워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잠시 신의 시선 아래서 기분 좋은 낮잠을 잤다. 그 짧은 시간동안 나는 기억 나지 않는 기분 좋은 꿈을 꾸었다.



우리는 대성당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깔깔거리고 낮잠을 자고 사진에 찰나의 기억을 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진정한 자유" 그 말이 떠오르는 내 인생의 가장 선명한 장면이었다. 우리는 대성당 앞에 앉아 아쉬움을 토로하다 이렇게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쉬워 묵시아에서 피니스테레까지의 구간을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피니스테레에서 묵시아로 이어지는 해안길이 너무도 아름다워 꼭 한번 걸어보라는 누군가의 권유 때문이기도 했고 생각보다 산티아고에 일찍 도달했기 때문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함께 식탁에 앉은 다른 친구들과 내일이면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는 사실에 조금은 슬퍼졌지만 이 모두가 'And'를 위한 쉼표임을 알기에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서로의 내일을 축복해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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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를 항구에 정박시켜 놓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닙니다.


배는 항해를 위해 만들어진 도구 입니다.


순례자 / 파울로 코엘료



길을 걸으며 제가 느껴온 작은 감정의 조각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일지는 모르겠지만 가족과의 크고 작은 트라우마 하나 쯤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의 작은 용기가 훗날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이 글을 쓰는동안 매일 순례길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저에게 주어진 길을 후회하지 않고 살기 위한 다짐이었으며 훗날 지치고 힘들어 주저 앉고 싶어질 때마다 이 길을 간절히 꿈꾸며 결국 걸어내게 된 기적을 떠올리기 위함이기도, 지난 잘못들을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써내려간 반성문이기도, 누군가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았던 저의 상처이기도 합니다.



이 길의 끝에서 저는 행복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여정에서도 그 행복을 찾아 끊임없이 흘러가리라는 것을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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