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그 후의 이야기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묵시아 -피스테라
지난 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생각날 만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늦은 밤까지 골목 가득 흥이 넘쳤다. 내가 묵었던 숙소 앞 광장에서 큰 행사가 열린 덕분에 재미있는 구경을 할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모닥불 위를 뛰어넘으며 용기와 건강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모닥불을 에워싸고 서로의 안부와 남은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산후안축제가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산후안축제
6월 24일, 성요한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2주 전부터 축제가 시작되며 스페인에서 가장 긴 기간동안 열리는 축제로 밤이 제일 짧고 날이 제일 긴 날, 모닥불을 뛰어넘으면 나쁜 일을 물리치고 원하는 일들을 이룰 수 있다는 설이 있다. 매년 모닥불을 뛰어넘다 화상을 입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날만큼은 야외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되기 때문에 거리 곳곳에서 기쁨에 취해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스페인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함께 스페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의 온도와 색이 분명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러한 열정과 흥도 삶에 충실하고 뜨거운 해를 벗삼아 살아가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즐거운 기운에 둘러 쌓인채 피곤한 몸을 눕히자마자 잠에 빠져 들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한정된 시간동안 이 곳에서 다시 걸음을 옮겨 100km를 걷기보단 묵시아에서 0km의 사인이 있는 피니스테라까지 걸음을 옮기는 길을 선택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걸음을 멈추기엔 끝맺음이 너무나 아쉬웠고 모든 여정을 두 다리로 해내기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한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바닷길을 마지막으로 걸으며 30여일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 마무리에는 아마 내 곁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H에 대한 고마움도 함께 일거라고 생각했다.
산티아고에서 묵시아까지의 106km. 걸으면 내리 3일은 족히 걸릴만한 거리였지만 버스로 단 몇 시간만에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지는 건 지난 시간동안 두 다리로 온전히 걸어냈던 거리가 나에게 주는 의미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서 고생한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지만 나는 그 사서한 고생이 내 스스로를 삶의 목표에 더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 어떤 깨달음도 '그냥' 얻어지진 않기에 나는 적어도 수동적으로 무언가의 힘을 빌려 깨달음을 얻진 않았다. 그 사실 하나가 앞으로의 나를 굳게 지탱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가진 작고 깊은 내면의 힘으로 더 먼 길을 걸어갈 수 있을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여정을 끝내기에 그 이후로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차창 밖 노란 화살표를 따라 눈길을 옮기지만 순례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두 시간 여를 달려 드디어 묵시아에 도착했다. 파란 바닷가에 조용히 자리한 묵시아를 보는 순간 800km의 여정이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파란 바다와 대조적으로 스페인의 열정을 나타내는 듯한 붉은 지붕이 위화감없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보며 아름답다는 말이 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H와 나는 각자의 걸음으로 마을을 거닐며 서로의 시간을 가졌다. 며칠 전, 산티아고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묵시아에 꼭 머물러야 된다고 강조하던 이탈리아 삼촌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작고 고요한 마을이지만 그동안의 수고로움과 스스로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하기엔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걸음이 이끄는대로 마을을 거닐다 언제나처럼 사람들의 곁에 놓여진 떠난 이들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 곳에서도 삶과 죽음은 같은 공간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마을 한켠에 자연스레 자리하고 있는 묘지를 보며 결국 행복과 불행도 항상 공존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둔하게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한 면만 바라보며 하루의 기분을 맡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은 그렇게 '우연히' 마주한 것들에게서 '답'을 끌어내는 힘이 있었다.
잠시 쉬어가기 위해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버스 창가 자리에 앉아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공항 전광판에 시시각각 쏟아지는 수많은 목적지들을 바라보다가,
그렇게 '문득' 깨달음이 찾아온다는걸, 나는 여행을 통해 배웠다.
묵시아는 순례자들의 마지막 목적지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곳이다. 한 때는 '죽음의 해변'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과거에 많은 배들이 암석 해안에서 난파된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 날에는 '해산물의 천국'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청명하고 깨끗한 파란 빛의 바다에서 어업을 꾸려가는 것이 마을의 주요한 경제원이며, 오늘 날에는 관광객들을 통해 부수입을 얻고 있다. 크지 않은 마을이기에 소소한 레스토랑 몇 개와 작은 바 두어 곳 그리고 구멍가게라고 불러도 좋을 슈퍼마켓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래서였을까, 소란스럽지 않은 마을이 마음을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선물해주었다.
해안 끝의 교회는 개방되지 않아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고개를 빼꼼히 들이밀고 교회의 편안한 분위기를 가득 느낄 수는 있었다. 멀리서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냈다. 코끝이 조금 아리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느낌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선의 끝에 놓여진 상처투성이 발이 오늘은 참 기특하고 대견해 보였다.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 곳에 채 다녀가지 못하고 또 다른 여정을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친구들에게 이 곳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산티아고에서 꼭 한번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K오빠는 오래오래 걸음을 걸어 몇 일 후에야 이 곳에 닿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깊은 고민과 아름다운 생각들을 하며 길을 걷던 오빠는 누구보다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일은 마음이 충만해지는 일, 오빠는 그 후 산티아고에 도착해 노란 화살표의 문신을 새겼다고 했다. 충직하게 길을 알려주던 화살표를 잊지 않고 살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을 거라고 나는 자그맣게 생각했다.
동산 끝까지 오르자 한 아이와 아빠가 함께 가리비 앞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아이의 모습은 때때로 내가 되었다. 아빠는 아이에게 인생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아이는 아빠의 이야기보다는 눈 앞에 보이는 노란 가리비를 쓰다듬으며 돌맹이를 만지작거리기에 바빴다. 하지만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들은 이미 충분히 가까워 보였다. 아이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다시 집으로 향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나는 위로 받고 또 위로 받았다.
미국의 디즈니월드에서 인턴십을 하던 반 년의 시간동안 아빠와 종종 통화를 하던 나를 보며 많은 친구들은 아빠와 친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했다. 아빠와 나는 서로를 매우 사랑했지만 그 사랑 한 켠에 야트막히 덮여있는 아빠에 대한 미움과 트라우마를 두고 나는 종종 싸워야만 했다. 가까울 땐 모두가 부러워할만큼 가까운 부녀지간이었지만 한 번의 트러블이 지날 때마다 미움을 주체할 수가 없어 괴로워하던 아빠와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빠를 이해하기 위해 이 길을 걸으며 매일을 노력했고,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모든 시간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이 길을 걸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수도 내가 바뀔 수도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나는 단지 두려워서 상황을 피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아빠에 대한 미움을 아빠에게 꺼내보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것은 잘 알지만, 아빠의 손을 잡는다는 것이 상상만으로도 마른 침을 삼키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까만 점이 되어가는 화목한 부자의 모습을 보며 아빠의 곁에 앉아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마을 한 바퀴를 돌고 일몰이 가장 잘 보이는 해변에서 마주친 H와 나는 바람이 부는 언덕에 앉아 하루가 저물어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하늘이 점점 더 아름다운 색으로 변해가는 동안 우리는 30여일의 여정을 저마다의 방법으로 정리해가고 있었다. 한동안 우리 사이를 침묵이 메꿨지만 그 침묵조차도 아름다울 수 있는 사이가, 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배웠다. 한참의 침묵 끝에 H가 작은 이야기를 건냈다.
"나는 누나를 보며 많은 걸 깨달은 것 같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누나를 보면 이 시가 자꾸만 떠오르더라. 과연 나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누군가에게?
나는 앞으로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누나처럼"
해는 매일 뜨고 지고를 반복하겠지만 오늘의 태양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조금은 특별했다.
의미를 부여하면서 '무언가'가 특별해진다는 것 그리고 삶의 작은 조각들을 특별하게 만들어가며 인생의 행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앞으로 내가 추구해 나갈 모습일 것이다. 내 인생이 어떤 모습이 되어갈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벌써 설레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는 것을.
오랫동안 완벽한 그리고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애써왔다. 부모님은 완벽한 자아를 가진 존재들이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해왔다. 이 길을 걸으며 그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나도, 부모님도 그리고 모든 사람들도 완벽하기 보다는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나를 비롯한 모두의 상처와 아픔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갔다.
앞으로의 나는 나를 위해 조금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 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해야하는 것은 마음의 중심을 잡는 일,
나에게 자주 말을 걸어주는 일,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일,
못나고 부족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해나가는 일
그날 밤,
묵시아에서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고 깊고 밝은 별이 빛났다.
새벽에 길을 떠나야 피스테라까지 닿을 수 있다는 계획을 토대로 새벽 5시에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알베르게의 키친 자판기에서 카푸치노 버튼을 꾸욱 눌렀다. 고요한 새벽에 홀로 정적을 깨는 자판기 기계음에 괜히 머쓱해져 동전을 만지작 거렸다. 사과 한 알과 카푸치노 한잔으로 배를 채우고 지난 밤, 돼지코를 빌려달라던 에드워드 자리에 돼지코를 찾으러 가보니 작은 쪽지 하나가 함께 남겨져 있다.
'항상 행복하길 빌어'
그 짧고 강렬한 문구에 나는 그만 코끝이 찡해지고 만다. 고마움과 아쉬움이 뒤섞여 쉬이 발걸음을 떼기 어려워지는 오늘, 하지만 오늘은 다시 30km를 걸어야 목적지에 닿게 된다. 이른 아침, 항구를 가득 매운 물안개와 그 사이로 고요히 자리한 묵시아의 풍경은 오래도록 가슴에 자리할 것만 같다.
H와 함께 걷는 마지막 걸음이다. '폭풍속의 주'라는 브라운아이즈의 노래를 알게 된 건 H의 노래를 빌려들으면서부터의 일인데 이상하게도 신을 믿지 않는 나에게 그 노래는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오늘은 H와 그 모든 감정들을 나누고 싶어져 함께 그 노래를 듣자고 청했다. 바라보는 방향이, 가야할 길이 다르지만 길 위에서 그는 나의 좋은 동료이자 친구였고 인생의 선배이자 작은 것들에 행복해지는 법을 알려준 순례자였다. 길을 걷는동안 그 아이는 나의 작은 신이었고,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산티아고를 벗어나고부터는 길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를 찾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선 바람에 한참동안이나 잘못된 길을 걸어 다시 원래의 길을 찾아오느라 진을 뺐는데 그런 우리를 보고 계셨던 한 할아버님께서 대문 밖으로 나와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주셨다. 우리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내고 다시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뒤돌아본 자리에 여전히 손을 흔들고 계시던 할아버님을 보고선 다시 뛰어가 가방 한켠에 넣어둔 초코바를 쥐어드렸다. 말이 통하진 않았지만 우린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그저 그 웃음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F피스테라로 가는 길, M묵시아로 향하는 길.
순례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누군가의 배려가 엿보였다. 길은 듣던대로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묵시아에서 피스테라 구간이 특히나 그랬다. 바다는 쉴새없이 반짝였고 하늘은 청명하고 푸르렀다.
힘이 들 때마다 바다를 보며 위안을 받고 또 다시 걸음을 옮기길 반복하던 중이었다. 오늘은 유난히 한국사람을 많이 만났는데 가방을 택시로 보내고 피스테라에서 묵시아까지 뛰어가는 한 남자분은 특히나 오래 기억에 머물렀다. 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는 그 모습은 오래도록 잔상에 남았다.
나는 이미 가벼운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간 사람의 마음이 된다.
얼마나 가볍고 또 행복한 마음일지, 그 멀고도 먼 길을 스스로 걸어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지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 함께 가벼워졌다.
피스테라는 꽤나 큰 마을이었다. 피스테라에만 오면 모든 게 다 끝날 줄 알았는데 길은 끝이 없고 우리의 걸음은 조금씩 지쳐갔다. 잠시 걸음을 쉬며 가방에 넣어둔 초코바를 먹는동안 H는 오늘을 기점으로 수염을 깎고 그의 오랜 상징이었던 밀짚 모자를 태우겠다며 작은 구멍가게에 들러 면도기와 라이터를 한 손에 들고 나왔다.
겨우 찾은 0km의 장소를 위해 묵묵히 오르막길을 오르던 중이었다.
"와우, 이게 누구야! Jessie!!
완전 반가워. 여기까지 걸어온거야? 이제 조금 밖에 안남았으니 조금만 힘내서 걸어봐.
아참, 우리 지난 번에 사진을 못찍어서 너무 아쉬웠는데 우리 사진 한장 찍자"
그렇게 한참을 걷는데 호주에서 온 팽과 브렛이 우리를 반겼다. 우린 짧은 인연이 아쉬워 진한 포옹을 몇번이고 나누었고 그들은 내 뺨에 짧은 입맞춤을 해었다. 그리고 마지막 여정이 남아있는 나를 위해 "부엔 카미노"라는 축복을 나눠주면서 말이다.
드디어 눈 앞에 나타난 0.0km의 사인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도달했을 때와는 또 다른 뭉클한 마음이었다. H는 아마 이 곳에서야 비로소 뜨거운 눈물을 참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조용히 비석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아름다웠고, 지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이 곳까지 고단한 걸음을 해왔을 이 아이가 대견했다. 그리고 또 고마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름다운 뒷모습을 조용히 담아주는 것 뿐이었으리라.
언젠가 '꽃보다누나'에서 배우 이미연씨에게 지나가던 한국분이 나눴던 말이 떠올랐다.
"항상 마음으로 바라왔어요. 기쁘고 행복하세요"
라는 말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던 이미연씨를 보며 나도 함께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간은 흐른다.
힘들었던 순간, 깊고 아팠던 그리고 영원히 낳지 않을 것 같았던 상처도 언젠가는 나아진다.
언젠가는 나아질거라는 그 일말의 희망으로 살아가야 한다. 힘든 순간을 기필코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이, 아프고 힘든 순간도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닫는 지혜가 필요했다.
나도 이제 내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피스테라, 이 곳에서 우리는 한 때 우리의 일부였던 것들을 태워버리기로 했다. 그동안 저마다의 마음 한 켠에서 응어리져가던 감정과 함께 말이다. H가 밀짚모자를 던져두었고 나는 장갑을 한 켠에 던졌다. 이미 누군가가 태우고 간 옷가지와 신발 그들의 그을음을 오래오래 내려다 보았다. 그 속에는 그들이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곁을 떠나간 사람과 세상을 떠나버린 가족, 차마 내려놓지 못한 미움과 미련들이 응어리져 함께 남아있었다.
산티아고를 걷는동안 나의 일부였던 무언가를 태우는 의식을 하며 사람들은 그제서야 비로소 카미노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누군가의 시선은 오랫동안 미동도 없이 바다를 향해 있었다. 울어도 좋고, 웃어도 좋고, 소리를 질러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 곳에 닿으면 정말 공(空)의 상태가 된다.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아무런 짐도, 미련도 없는 그런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아마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라고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비워내야 채울 수 있어. 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그 말의 뜻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서야 마음으로 깨닿고 있다.
다시 돌아온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산티아고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으며 서로의 안녕과 축복을 빌었다. 나는 내일이면 포르투갈로 또 H는 스페인의 남쪽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여정이 남았다는 설레임과 이제 정말 카미노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섭섭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날 밤,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한참동안이나 침낭을 들썩였다.
다음 날 아침, H와 나는 또 다른 여정을 앞두고 카미노에 마침표를 찍으며 마지막 차 한잔을 나눴다. H가 건내준 엽서 한장을 몇 번이고 읽으며 나는 몇 번이고 입 안 가득 느껴지는 쓴맛을 삼켜야했다. 포르투갈로 향하는 버스는 쉴새없이 달리고 있었고 창 밖 풍경은 야속하게 흘렀다.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해지기 위한 여정을 다시 시작하는 중이었다.
언젠가, 문득 그렇게 생각나는 그리운 사람.
나는 카미노에서 만난 사람들을 그렇게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히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아름다울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멀어져가는 노란색 화살표를 아낌없이 눈에 담았다.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 앞에 다시 섰다.
엄마와 거실에 같이 누워 팩을 하면서 이 길 위에서 느낀 것들을 하나 하나 꺼내놓았다.
엄마는 그래도 잘 다녀왔네, 한 마디 하시고선 목이 막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셨다.
아빠에 대한 내 마음들을, 내가 받은 상처들을 그제서야 깨닫고 꺼내놓는 내가 부모님은 부담스러우셨을지 혹은 마음 아프셨을지 알수 없지만 나는 언젠가는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에게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카푸치노는 그 날따라 어찌나 더 뜨겁던지 -
아빠는 괜히 커피가 쓰다면서 설탕을 넣어달라고 하셨다. 아마 아빠는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이미 알고 계셨을지도 모르겠다. 한참동안 말을 선뜻 꺼내지 못하는 나를 타이르고 또 타이르며 겨우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 나는 아빠를 사랑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5살 때 아빠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오랫동안 남아 트라우마로 자리하고 있었어요. 아빠가 나를 때리고 그 상처를 아빠가 치유해주지 않은 채 지금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아요. 그래서 아빠가 무슨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제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했을 때 저는 저도 모르게 화가 주체가 되지 않았어요. 그게 지금까지 아빠와 저의 트러블을 종종 만들어 왔던 것 같아요"
물론 아빠가 쉬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나는 더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아빠는 자식들이 말을 안들으면 때리고 그렇게 체벌하는게 당연한 부모의 교육행위라고 대답을 하셨다. 이미 이런 행동을 예상해서였는지 화가 나지 않았다. 나는 아빠를 바꾸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받은 상처를 아빠가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을 건냈을 뿐이었다. 하루 아침에 무언가가 달라질거라는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하며 단 한번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 아빠의 눈동자를 봤다. 내가 아닌 창 밖을 응시하며 대답하는 아빠의 눈빛은 이미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딸아......'
아빠는 강한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도 원치 않는 말들을 하고 있었지만 분명 아빠는, 아빠의 눈동자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종종 아빠와 트러블이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의 상처받은 아이는 그 날 이후로 많이 자랐고 더 많이 웃었다.
좋아하는 일이자 심장이 떨리는 일을 위해 호주에서 20대의 절반을 보냈다. 돈은 바랄 수 없는 일이지만 마음먹은 길을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가끔 생각하고 있다. '돈'이 아니라 '뜻'을 보고 길을 걸으면 곧 나도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으며 말이다. 4년이라는 시간동안 사막에서 보낸 추억과 그 곳에서의 깨달음들을 나누기 위해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카미노가 끝나고 다시 새로운 인생의 카미노를 걷고 있는 것만 같다.
산티아고와 인생의 카미노가 다른 점은 노란색 화살표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방향을 찾고 걸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카미노에는 동반자도 없고 끝이라는 기약이 없으며 도착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도 다르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얻은 지혜와 용기 그리고 깨달음으로 나는 인생의 카미노도 아주 잘 걸어낼 수 있을거라 믿고 있다.
나의 카미노는 오늘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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