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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외계인 Sep 01. 2024

마지막 돌봄들, 마지막 인사들

“B 가 방금 전에 돌아가셨어.”


오전 9시 30분 경 휴식 시간. 필리핀 출신EN (Enrolled Nurse)인 마위가 도시락 가방을 들고 직원 휴게실로 들어오면서 소식을 전한다. 요양보호사, 세탁실 직원, 상주 물리 치료사가 몇 개의 원형 테이블과 소파가 놓인 직원 휴게실에서 각자가 싸 온 간식들을 먹다 한 마디 씩 섞는다.


한 생이 떠나간 시간, 살아있는 자들은 생을 붙잡겠다고 목구멍으로 음식을 밀어 넣는다. 너무 냉혈한 인간들로 보이지만, 생각해 보면 난 아버지를 떠나 보내고도, 첫째 오빠와 첫째 언니의 이른 죽음 앞에서도 밥을 넘겼다. 가족이 떠나고도 밥을 먹는데,직장 그것도 도처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요양원에서 밥을 못 먹을 이유는 없다. 죽음 앞에서 산 자는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잔인한데, 주어진 삶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른다. 뱃가죽이 등가죽과 사돈 맺자고 손을 내밀 정도로 홀쭉해진 내 배부터 채워야 한다.새벽 5시 반 기상,  출근하느라 아침밥을 거른 배에 서둘러 음식을 밀어 넣고, 아직은 살아있는 몸들을 돌봐야 하는 게 요양보호사들의 사명과 책무다.


파킨슨병을 지닌 80대 할머니 B. 키도 크고 80 킬로그램을 넘는 몸집도 좋으신 코카시안 할머니이시다. 코카시안 할머니들 중에는 아시안 할머니들과는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로 신체 발육이 남다른 경우가 종종 있어서 내가 근무하는 요양원에는70-80 킬로그램이 훌쩍 넘는 할머니들이 여러분 상주하신다. 호주에는 아시안 이민자들이 독보적으로 많고 또한 요양원에는 아시안 요양보호사들이 많은데 이들의 작고 왜소한 체구를 생각하면 할머니들이 마치 남자의 체구처럼 다가오곤 한다. 남자 여자의 신체에 대한 기준도 전세계 인종인 몰려 든 다문화가 기본값인 멜번에서는 일찌감치 전복되어야만 일상에 충격이 줄어든다.


B는 요양보호사와 간호사들이 애정하는 입주자이셨다. 전신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여서 손은 많이 가고 돌봄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지만, 성격이 소탈하고 따뜻하고 온화하신 어른이셨다. 이런 분들은 체력적 피로도가 높아도 정신적으로는 요양보호사들을 기쁘게 한다.


B가 머무시던 구역은 유난히 더블(Double)인 입주자가 많아서 요양보호사들의 체력과 전문성을 시험하기에 딱 맞춤인 곳이었다. 18명의 입주자 중에 7분이 더블이다. 호이스트를 써야 하는 입주자가 3분, 스탠딩 머신을 써야 하는 입주자가 3분, 사라 스테디를 써야 하는 분이 1분이다. 더군다나 기계를 써야 하는 High needs인 어르신들 중에 유난히 까다롭고 예민해서 본인의 요구에 딱딱 들어맞는 돌봄이 제공될 때까지 끊임없이 요구하시는 분들이 여럿 있다. 요양보호사들 사이엔 “마의 구역”으로 불린다. 아침 근무에 베테랑 요양보호사 셋이 달라붙어 헉헉거려야 겨우 12시 점심 시간 전에 아침 루틴이 끝나고(점심 전에 모든 입주자의 아침 씻기기와 잠옷을 일상복으로 갈아 입히는 일이 끝나야 함), 가끔은 좀 수월한 구역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가 침투되어 일손을 보태야  제 시간에 마무리가 될 때도 종종 있다.  


특히 호이스트를 써야 하는 어르신들은 전신을 움직일 수 없어서 샤워 의자나 휠체어에 앉을 수조차 없는 분들이어서 매일 아침마다 두 명의 요양보호사가 붙어서 베드 워시(Bed wash)를 한다거나, 방에서 또는 식당 라운지(프린세스 체어에 앉혀서)에서 식사를 모두 먹여 드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이분들은 돌봄의 순서가 뒤로 밀리게 되는 게 보통인데도, B는 한번도 불만을 표시하거나 화를 내시는 경우가 없었다. 여전히 인지도 남아있고, 본인의 요구나 의사 표현도 대체로 명확하게 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똑같이 돌봄을 요구하고 제공받으면서도 누군가는 돌봄 제공자의 마음을 상하게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미소가 나오게 만든다. 이틀 전 할머니에게 점심을 먹여 드릴때만 해도 할머니는 고마움을 잊지 않고 말씀하셨다.


“잘 먹었어. 고마워.”


요양원엔 죽음이 도처에 깔려 있다. 두더지 게임처럼 두더지들이 바짝 웅크리고 있다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불쑥불쑥 솟구쳐오르듯 죽음도 그렇다. 죽음의 일상화가 이뤄지고 빠진 방은 다음 대기자가 채운다. 겨우 4개월 일했는데 벌써 5번의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에 임박한 몸들을 예측하는 일이 쉽지 않다. 오늘 베드워시를 한 할머니의 상태가 아주 안 좋은데, 다음 주에 가면 상대적으로 괜찮았던 할머니 방이 비어 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혼자 돌보기 어려워 함께 입소한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요양원에 정착하시자 먼저 돌아가신다. 감기에 걸려서 누워 계셨던 할머니가 이 삼일 뒤에 출근하면 이미 하늘 나라로 돌아가셨다.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으로 이송 된 할아버지는 끝내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오지 못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다들 나의 돌봄을 받은 어르신들인데 언제나 마지막 인사를 놓치고 있다. 그래서 난 결심한다.


'오늘이 마지막 돌봄이라고 생각하고 일해야지.'


서둘러 간식으로 싸 간 요거트와 과일을 흡입하고 방금 전 운명하신 할머니 방으로 간다.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 바로 이틀 전에도 할머니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고 아침을 먹여 드렸다. 밤새 엄마의 손을 잡고 마지막 밤을 지샌 딸이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나를 맞는다. 할머니의 얼굴은 이미 핏기가 없다. 의치를 뺀 입은 푹 꺼졌다. 살아생전 인자하셨던 얼굴로 영원한 평안과 평화의 세계로 진입하셨다. 할머니의 차가운 이마에 나의 입을 가져다 대며 말한다.


“할머니,  그 동안의 친절함에 감사 드려요. 편안히 쉬세요!”


                요양원 방문에 붙은 나비 스티커



내가 일하는 요양원에서는 Palliative Care 에 들어가신 분들의 방문에는 나비 스티커가 붙는다. 나비 스티커가 붙으면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고, 숨을 멎는 마지막 순간까지의 모든 케어는 가능한 편안하고 고통 없이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르도록 제공함을 의미한다. 당사자나 가족이 거부하지 않으면 대부분은 몰핀이 투여되고(몰핀이 투여되면 대부분 3-4일이면 생을 마감하신다), 곡기를 끊고, 가족들이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들이 제공된다.   


요양원은 그런 곳이다. 죽음이 예견된 곳, 당사자나 가족도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는 이루어 진 곳, 그래서 각자의 죽음은 모두 개별적이고 처음이나 너무 급작스럽거나 생경하지 않은 곳.


고인이 되신 할머니 B는 축복받은 죽음이다. Palliative Care 에 진입한지 이틀만에 임종하셨다. 평소에도 수시로 찾아와 엄마를 보고 가던 다정한 딸이 밤새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와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자 영원한 안녕을 고한 할머니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축복을 누리셨다. 요양원에서 일을 해보면 노년의 축복과 죽음 앞에서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성찰하게 만든다.


오후 1시경, 장례회사에서 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은 두명의 직원이 와서 할머니를 모셔간다. 점심 식사를 끝낸 입주 어르신들 중에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싶은 분들과 직원들이 모두 모여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꽃으로 배웅한다.


어쩔 수 없이 이 순간 한국의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나의 엄마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얼마전 요양원에서 지내시던 엄마의 상태가 악화되어서 병원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각종 항생제와 치료들을 받고 계신다. 몇 년째 콧줄로 연명하고 계시는 엄마 몸의 모든 장기들은 이제 제 기능들을 다한 상태라고 의사가 말했다.


죽음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요양원, 죽음의 일상화가 일어나는 요양원에서 일하는 딸은 정작 내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할까 조바심이 난다. 열 명의 자식을 낳은 엄마가 자식 한 명 없이 중환자실에서 혼자 외롭게 임종 하실까봐 속이 탄다. 몇 달 전에 한국을 방문해서 엄마를 보고 왔다고, 원래 이민 생활을 하는 자식들은 부모의 임종을 종종 놓치기도 한다고, 이민 생활은 자동으로 자식을 불효자로 만든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 모두 나를 위한 핑계일 뿐이고 나는 엄마의 마지막 앞에서도 핑계를 찾고 있는 불효자일 뿐이란 사실을.


고인이 된 B와 딸의 마지막 장면이 나의 일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의 엄마에게는 부디 마지막 인사를 놓치지 않기를, 멜번에서 한 생을 떠나 보내는 요양보호사 딸은 소망한다. 엄마의 마지막 날에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곁에서 밤새 나의 글들을 엄마에게 읽어주고 싶다고.  


*더블(Double): 각종 기계를 써서 몸을 이동 시켜야하는 입주자를 일컫는 말

*베드워시(Bed wash):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어서 목욕 의자에도 앉을 수 없는 경우에 침대에서 닦아 드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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