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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Jin Han Nov 01. 2020

금보다 귀한 겸손의 가치

과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월이 지났을 때,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이 있다. 바로 겸손이다. 겸손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곤 하는데, 그것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조차 없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은 자신이 어려웠을 때 기억하고, 꼭 내가 잘 된 이후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일들을 그대로 할 가능성이 꽤 높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는 초심을 기억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만과 겸손은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뒤바뀌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닮은 것 같다. 교만도 내가 교만한 지 모르고 교만하다. 겸손도 내가 겸손한지 모르는 겸손하다. 더 힘든 일은 그 교만을 가장 가까운 사람이 말해주기도 어렵고, 먼 사람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내가 교만한 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 늦어버린 경우도 상당하다. 


사람은 누구나 그것이 크든 작든 교만한 마음이 있다. 아주 작은 씨처럼 있다가 그것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자라 있음을 발견한다. 내가 발견하면 다행인데, 다른 사람들이 먼저 발견하면 그때부터가 문제다. 교만은 신기하게도 자신의 것은 발견하기 어려운데, 남의 것은 발견하기 쉽다. 다른 사람들의 교만을 들추다 보면, 어느새 그 교만이 내게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오랜 시간 사람들은 알고 지내다 보면, 환경의 변화로 인해 겸손한 사람이 교만해지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마음이 가장 어렵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혹시 나도 그렇게 될까 봐 매번 점검하게 된다. 알고 지낸 오랜 세월이 있으니 말할 법도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남도 나에게 그럴 것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초반부터 알게 된 사람이 있다. '참, 괜찮은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 나중에 잘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따듯한 마음과 배려가 변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바랬던 사람이었다. 그는 외적으로 잘 성장했고, 위치도 높아졌다. 우연히 그를 가까이서 보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보이는 모습에서는 비슷했다. 말투도, 언어도, 목소리도, 태도도 비슷했다. 하지만 어려움이 닥칠 때, 사람에 대한 태도가 변해있음을 순간순간 보아야 했다.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근거 없는 소문으로 사람을 의심하고, 그 소문을 알아보라고 다른 사람을 시키는 그의 모습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변해버린 모습을 알게 되는 것이 마음이 어려웠다. 예전에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모습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일 수 있지만 마음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변해있을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다. 사람은 낮은 자리에 있을 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권력을 가졌을 때, 재물이 많이 쌓였을 때, 인기가 많을 때, 존경을 많이 받을 때, 가장 위험해진다. 자기 영광을 받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타락하기 쉬운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많이 갖지 못했을 때조차 겸손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드러내고 나 잘났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내 마음 깊은 곳에 남보다 내가 좀 더 낫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행동했을 것이다. 그 마음조차 위험함을 이제는 안다. 


우리의 교만은 때로 누군가를 정죄하고 판단하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는 행동과 언행을 하게 한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그래서 겸손이 아닌 교만은 주변의 사람들을 떠나게 한다. "이젠 보지 말자!" 하며 대놓고 떠나면 다행인데, 몸은 그대로 있고,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이 떠난다. 그것이 더 무서운 일임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꾸며내지 않은 진정한 겸손은 그 사람을 존귀하게 한다. 사람이 모여들고, 그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세운 불안한 기준으로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겸손을 선택하고 싶다. 많이 부족할 것이다. 나도 모르게 교만한 모습이 드러날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깨어 지각하고 싶다. 나의 태도, 언행, 모습, 마음을 겸손의 방향성에 두고 싶다. 내가 낮을 때나 높을 때나 그 모습이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임을 점점 피부로 느끼게 된다.




Dear, J

J, 삶에서 조금씩 무엇이 더 중요한 지를 깨닫는 네 모습에 감사해. 부귀영화를 꿈꾸는 것보다 사람을 향한 겸손이 얼마나 값진 것임을 알게 된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이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그것을 느끼게 될 거야. 겸손이 떠나면 사람이 떠나지. 그것도 네 옆에 있어야 할 좋은 사람이 떠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혹 주변 사람들이 너의 교만에 대해 나무라면, 그 또한 겸손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단다. 그때는 아프지만, 그 말은 너에게 금보다 귀한 가치를 선물하길 때문이지. 


그런데 포장된 겸손은 소용이 없단다. 언젠가 그 진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거든. 깊은 내면이 진짜 겸손하지 않으면, 그것은 위선이 된단다. 진짜가 되렴. 진정한 삶의 지혜는 가까이에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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