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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Jin Han Nov 01. 2020

귀하게 쓰이는 깨끗한 그릇

우리 집 찬장에 값비싼 그릇 세트 한벌이 진열되어 있다. 어머니가 큰 마음먹고 구매한 그릇이다. 그 그릇에 음식을 정갈하게 담으면 김치도 고급스러운 음식이 된다. 신기할 만큼 그릇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모든 집에는 다양한 그릇이 있다. 가까이 놓고 자주 쓰는 그릇, 손님 올 때만 쓰는 그릇, 예쁜 그릇, 비싼 그릇, 깨질 염려 없는 그릇, 설거지 하기 부담스럽게 조심스러운 그릇까지. 그 용도도 가지각색이다. 


그 어떠한 그릇이든, 그릇이 사용되려면 깨끗해야 한다. 아무리 비싼 그릇도 더러울 땐 사용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손님용으로 사서 찬장에 넣어둔 그릇도 사용할 땐 한 번쯤 먼지를 닦는다. 


사람도 그릇과 같다. 잘 닦여진 그릇은 그것이 만들어진 용도에 맞게 잘 사용된다. 그러나 비싼 그릇이라도 깨어지거나 먼지가 쌓여있다면, 바로 사용하기가 어렵다. 사람도 그릇을 닮아서 깨끗해야 한다. 그가 갖춘 학벌과 실력은 정결함과는 다른 측면이다. 그것은 용도 혹은 디자인일 것이다. 유리, 도자기, 플라스틱 등 다양한 재료로 그릇을 만들 수 있고, 모양에 따라 용도도 다르다. 사람도 저마다 능력이 다르고, 일하는 분야가 다르고, 하고 싶은 일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과 준수한 외모를 갖추고 있더라도 인격과 성품이 갖추어지지 않다면, 사회생활에서 그 위치를 지키기 어렵다.


깊은 내면의 자아가 건강한지 여부에 따라, 그의 인격과 성품은 달라진다. 사회생활 초반에는 인격과 성품이 얼마큼 중요한지 잘 몰랐다. 그때는 실력이 더 중요했다. 사실 실력을 쌓기에도 바쁜 시기다. 그렇게 실력을 쫒아 쌓아 가다 보면 우리의 인격과 성품은 때론 환경에 따라 변하기 하고, 자신도 모르던 성향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렇게 10년 즈음 지나다가 어느새 인격과 성품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사회생활은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성과도 혼자 이룰 수 없다. 그리고 10년~20년 정도 일을 하게 되면 중간관리자 혹은 임원의 위치에 서 있게 된다. 사원급을 지나 위로 올라갈수록 협업이 많아지고, 함께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고, 조율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아지며, 책임질 일도 커지기 때문에 그의 성품과 인격, 태도와 언행은 생각보다 넓고 깊이 있는 무게감을 갖게 된다.  


10년 즈음 시간이 흐른 그릇이 디자인의 수려함이나 용도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사람도 그의 탁월한 업무 능력을 앞지르는 성품과 인격이 그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를 체감할수록 나는 나 자신의 그릇에 대해 질문했다. 나는 과연 얼마큼 깨끗이 닦여진 그릇일까? 내가 어떤 종류의 그릇인지는 그다음 문제다. 갑자기 내가 의사가 되고 싶다거나, 유명한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일하는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성실하게 일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물불 가리지 않는 무모함이 없다는 뜻이다. 다만, 내가 쓰여할 시기와 자리에서 제대로 쓰일 수 있는 깨끗함이 있는가를 되돌아볼 뿐이다. 


뉴스를 보면, 높은 자리에 있어도 어느새 수많은 소문에 시달리고 자격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는 기사들을 심심치 않게 접한다. 그 자리의 위차가 높으면 높을수록, 흠과 티가 없는 정결함은 더욱 요구된다. 권력과 재물의 힘에 비례하여 그릇의 모양보다 고도의 정결함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그 위치가 가진 무게다.  비록 나의 위치가 어떠한 지를 가늠하지 않더라도 그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정결하고, 깨끗해져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Dear J

정결함의 중요함을 이제는 조금 깨닫게 되었구나. 놋그릇이든, 나무 그릇이든, 금그릇, 은그릇이든 그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단다. 금그릇으로 태어나서 한 번도 쓰이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지. 그래서 흠과 티 없는 깨끗함이 그릇의 사용 범위를 결정하기도 한단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니? 물건마다 자신의 역할이 있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어떤 물건이든지 더러워서는 안 될 거야. 


심지어 땅을 밟고 다니는 신발을 생각해 보렴. 깔끔하게 수선되고 닦여진 신발이 그 사람의 이미지를 결정하기도 하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란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로 인해 정결함을 잃기도 해. 그렇다고 무자비하게 정죄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된다. 사람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도 안 되지. 늘 깨어서 내가 바르게 서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난 네가 누구보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릇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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