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도심이 아닌 외곽이고, 아이가 귀하고, 모든 아이들은 소중하기에 나와 동료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만날 때 어른을 대할 때보다 더 환대하며 맞이한다. 어린이들이 자기 혼자, 스스로 도서관에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언제든 책이 필요할 때, 숙제를 할 장소가 필요할 때에도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은 저기 먼 바닥으로 내려놓는다. 가끔은 <흔한남매> 시리즈를 보러 방학 때 아침 일찍부터 도서관을 찾는 초등학생도 있었지만 그럴 때를 제외하곤 아직 아이들이 스스로 도서관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우리 도서관에서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는 항상 특별 대우를 받는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아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활동지가 준비되어 있고, 서로 떠들고 웃으면서 장난을 치더라도 나를 비롯한 어른 이용자들은 거의 눈치를 주지 않는다(그러나 가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어르신들이 큰 소리로 얘기하는 소리를 들으면 바로 나에게 눈으로 레이저를 쏘면서 매우 화가 난 표정으로 노려본다). 아이가 귀하다 보니 대부분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물론 소리를 지르면서 다른 사람의 독서를 방해하거나, 뛰어다니면서 소음을 유발하고 다칠 위험이 있는 행동을 하면 단호하게 주의를 준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어른들의 암묵적인 배려와 함께 부드러운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던 어느 날, 과한 요구를 하는 보호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 애가 밖으로 나가는지 봐주세요"
"제가 20분만 밖에 나갔다 올건데, 애가 밖에 못 나가게 해 주세요"
(두 명의 아이에게 여기서 놀면 된다고 말하고, 나를 바라보며)
"애들은 언제 데리러 오면 돼요?"
물론 대부분의 아이 보호자들은 도서관에 아이와 함께 오면 같이 책을 읽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항상 아이의 행동을 예의주시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지 살핀다. 나에게 도서관은 일터이고, 일을 하다 보면 아이 하나하나에게 신경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아무리 도서관의 규모가 작다지만 해야 할 일이 있고,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한 공간에 있는데 단 한 명의 아이만 주시하고 있을 수 없다. 아이를 봐달라는 식의 요구를 받을 때마다 정중하게 안 된다고 말씀드린다. 그리고 이런 요구를 하는 보호자들의 아이는 미취학아동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잠깐 눈을 떼면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몰라 보호자의 눈길과 손길이 꼭 필요하다.
하루는 진한 분홍색 바지를 입은 여섯 살 아이가 어기적거리며 도서관을 돌아다니기에 아이를 따라가 봤다. 가까이에서 본 아이의 바지는 젖어 있었고, 아이에게 화장실이 가고 싶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기분에 화장실로 향하는 길에 곳곳에서 작은 물 웅덩이를 발견했다. 아, 여기구나. 아이가 여기서 소변을 흘린 것 같다는 강한 직감이 들었다. 대걸레로 바닥을 닦으며 흔적을 지우고 있는데, 때마침 밖에 나가있었던 아이의 보호자가 들어와서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이는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 없게 웅얼거리며 대답했고, 보호자는 나를 바라보며,
"화장실 가고 싶으면 여기 선생님한테 얘기하지 그랬어~"
다행히 마스크를 쓰고 있어 나의 한숨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일요일,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아이가 아빠의 손을 잡고 두리번거리며 도서관에 들어섰다. 아빠는 어린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마련해 둔 책상 앞에 아이를 앉혀두고 "아빠 한 시간만 있다 올게" 라고 말하고는 아이를 떠났다. 그 날, 아빠는 정말로 한 시간 후에 아이를 데리러 왔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일요일, 아빠는 아이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 와서 "아빠 한 시간만 있다 올게" 라는 말로 아이를 떠났고, 아이는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렸으나 아빠는 오지 않았다. 도서관의 운영을 종료하고, 퇴근 시간이 점점 가까워오자 내 마음도 조급해졌다. 아이에게 아빠한테 전화하라고 전화기를 건네줬지만 아빠는 받지 않았다. 아이에게 몇 살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집은 어딘지 여러 질문을 던졌지만 아이는 집에 혼자 갈 수 없었고, 아이가 말해준 집 근처 가게의 상호도 정확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엄마의 전화번호는 모른다고 한다. 아이를 파출소에 데려다 줘야 하나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오늘은 일요일이고 아이가 지난주에도 일요일에 왔던 것으로 미루어 혹시 교회에 다니는지 물어봤다. 다행히 아이가 다니는 교회는 도서관에서 아주 가까웠고, 아이를 데리고 교회로 가니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알아보는 어른들이 꽤 많았다. 그 어른들에게 아이 아빠에게 전화를 해 달라고 했고, 아이가 아빠와 통화한 후 아이를 어른들에게 인계하고 집으로 향했다.
브런치에 이런 이야기를 써도 될지 사실은 엄청 망설였다. 지금까지는 결론이 훈훈한 이야기만 했지만 현실엔 좋은 일은 가끔, 씁쓸한 일은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과한 요구와 컴플레인으로 마음이 힘들어지는 날에도, 아이들을 보는 눈에는 따뜻함을 담으려 늘 노력한다. 보호자에 의해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나는 과연 남들에게 정말 한 톨도 폐를 끼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늘 관대하게 보려 하지만 의욕이 꺾일 때도 많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이들은 잘못이 없고 여전히 예쁘다. 오늘도, 내일도 그런 마음으로 도서관의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