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백지장처럼 하얗다.
우물 안의 어둠보다 더 깊고 낮은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서 몸을 뉘이고 싶다.
몸을 뉘인 다음 녹색의 들판을 떠올리며 겨울의 매화를 그리고 싶다.
더 깊은 곳으로 가면 무엇이 있을까.
내가 두고 온 외딴섬 부둣가의 돛단배가 나를 기다리는 듯 손짓을 하는 듯하다.
이리로 와 호수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쉬라고 말한다.
잠시 삶을 정지해도 된다고, 긴 날숨을 내뱉을 시간을 준다.
돛단배 위에 몸을 맡긴 뒤 호수 위의 파동에 따라 다른 섬으로 흘러간다.
나의 피부와 머리카락, 나의 모든 것을 돛단배 위에 띄워 흘려보내고 싶다.
세상과 나의 마찰에 의해 탁해진 나의 숨결을 모두 띄워 흘려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