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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M Oct 06. 2024

원망했었던 기억 1

어려서 늘 키가 작았던 나는 항상 맨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학교 교실 안에서도 가장 앞자리는 늘 나의 차지였다. 우리 부모님 두 분들은 다 키가 작으시다. 그런 두 분이 낳은 자식은 유전적으로 당연히 키가 작을 수밖에 없다. 자녀들의 키는 유전이라기보다는 후천적이기 때문에 다를 수 있다는 신문 기사도 보곤 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안 믿는다. 그렇다고 시골에서 평범하게 사셨던 우리 부모님들은 무슨 특별한 마법을 생각해 보지도 않으셨다. 그냥 자연의 법칙을 그대로 수용하셨다. 


자라면서 사실 키가 작은 것이 나에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 내가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키가 작다는 이유로 내가 피해를 보았거나 또는 내가 그런 것으로 인해 내 인생의 좌절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오히려 내 아버지는 내가 키가 작은 것에 대해 신경이 많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나의 어릴 적 기억으로 늘 아버지는 저녁 밥상머리 앞에서나 그리고 운전 중에 시간만 되면 세상에는 키가 작아서 문제 되는 것은 없다며 키 작은 영웅들의 이름을 하나하나씩 일장 나열하시면서 봐라 이렇게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키가 작아도 성공하고 유명해서 이름을 날리고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지 않았냐면서 나를 설득하곤 했었다. 그러니 나도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의기 소침하지 말라는 나름의 아버지로서 최대한 나에게 동기 부여를 주려고 노력하셨다. 하지만 솔직히 내가 그런 말들로 인해 감동을 받았거나 그런 것들로 인해 나의 콤플렉스가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저 당시의 내 아버지의 말에 별로 귀를 기울여 듣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작은 키는 나에게 큰 장애물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운동신경이 좋았던 나는 어렸을 적에 그 어떤 운동 종목을 해도 친구들에게 뒤처지지 않았다. 키와 상관없는 축구, 육상, 탁구는 물론이고 키가 중요한 농구 그리고 배구 경기에서도 동기생들과 같은 레벨에서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공부도 늘 상위권에 들어가서 오히려 친구들이 주위에 늘 많았다. 그래서 교실에서 맨 앞줄에 앉아도 월요일 아침마다 운동장 밖에서 하던 조례 행사에서 맨 앞에 서서도 무심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당시의 내 학교 친구들이 좀 다 순수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들이 고맙기만 하다. 만약 요즘에 내가 학교를 다녔다면 아마도 키가 작은 걸로 놀림을 받거나 상처를 받아서 많이 힘들었지 않았나 싶다. 


그러던 것이 한꺼번에 무너지게 된 것은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서울에 있는 대학은 다른 세계였다. 전국 각지에서 그래도 공부 좀 제법 했다는 친구들이 다 몰려든 곳이었고 그러다 보니 별애 별 아이들이 다 있었다. 더군다나 일단 대학생이 되다 보니 공부와 운동을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이 따로 있었다. 바로 외모였다. 특히 프레쉬 맨(대학 1학년)들은 저마다 최상의 외모에 온갖 신경을 많이 쓰고 다녔고 어떻게 하면 학교에서 예쁜 여자 학우들 하고 데이트를 좀 해 볼까라는 것들이 최고의 관심거리였고 대화의 주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의 작은 키는 순식간에 나의 가장 큰 약점이 되어버렸다. 방법이 없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님으로 받은 유전자를 원망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그런 원망들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못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대학을 입학하게 된 당시에 농구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대학 농구의 인기가 아마도 최고조에 있을 때였다. 고등학교 적부터 농구를 좋아했던 나는 당연히 농구 동호회에 들어갔다 그리고 당연히 내가 제일 작았다. 친구들이 엄청 놀렸다. 물론 장난으로 그랬다. 안다 그렇지만 난 애써 괜찮은 척했고 실력으로 뭔가를 보여줘서 남아 있고 싶었다. 당연히 주전 멤버로 경기에 나갈 수는 없었고 항상 교체 멤버로 그것도 가끔씩 뛰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기다리다가 어느 날 나의 키로도 슛을 할 수 있고 멋진 슛도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 주면서 인정을 받았다. 당시에 같이 농구를 하던 친구들은 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농구할 때는 늘 나한테 장난으로 놀려대기는 했고 코트를 떠나서도 친구들의 장난과 놀림은 계속되었지만 적어도 게임에서 만큼은 진심으로 나를 인정해 주었고 그래서 그 그룹에 계속 남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키가 작아서 손해를 보는 일들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난 항상 비슷한 방법으로 그 순간들을 넘어갔다. 바로 실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해 보였다. 아직도 나와 친했던 선배님 중에 한 사람은 사석에서 늘 나를 “작은 거인”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분은 키가 190cm에 가깝다. 만나면 늘 나를 내려 보아야 하지만 나를 늘 존중해 주신다. 


우리 부모님들은 내가 키가 작아서 늘 내가 키 큰 여자와 결혼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지금의 아내를 보시고는 별 반대가 없으셨다. 적어도 키가 큰 아내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 후로 우리 아이들이 태어났지만 슬프게도 둘 다 엄마의 유전자가 아닌 아빠의 유전자를 받아서 그런지 둘 다 나처럼 키가 작다. 아빠로서 나도 걱정이 되었지만 나의 부모님들도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느끼셨는지 몰라도 우리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무척이나 키에 관심을 두셨다. 세상이 변하고 아이들도 다른 세계를 보고 자라서 인지 내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동기 부여 방식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해보지만 잘 안 먹힌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외모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외모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무슨 영웅담 내지는 역사 인물전 이야기는 씨알조차도 안 먹힌다. 


그러다가 참 슬프고 아픈 일이 생겼다. 첫째 딸이 아마도 고등학교 1학년 때쯤으로 기억이 난다. 키가 작아서 나는 내 아이들에게 아주 어릴 때부터 공부보다는 운동을 참 많이 시켰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던 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많은 운동 시간에 노출되었고 그것도 부족해서 주말에는 또 따로 운동 클럽에 가입해서 운동을 시켰다. 다행히 나를 닮아서 둘 다 운동을 좋아했고 제법 실력도 있었다. 그러다가 첫째 딸이 어느 날 학교에서 내 준 에세이 숙제를 해야 하는데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숙제 제목이 뭐냐고 물었고 첫째 녀석은 바로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고 그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첫째 딸이 드래프트를 가져와서 어떠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The short” (키가 작은 사람들).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니 자기는 키가 작지만 지금 농구팀에서 가드를 하고 있고 키가 작아서 슛은 못하지만 다른 친구들을 위해 패스와 도움을 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보고 순간 내가 뭐라도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았고 한참을 생각한 끝에 첫째 딸에게 내가 어릴 적에 농구를 하게 된 이야기와 유명한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의 이야기도 같이 해 줬다. 딸에게 마이클 조던도 사실 농구 선수로서는 작은 키였으며 2미터가 넘는 장신인 선수들이 수두룩한 정글에서 끝까지 살아남고 결국엔 챔피언이 되었던 것은 그의 외적인 능력이 아니라 끝없는 연습과 노력의 결과라고 말을 해 주었다. 안 믿는 것 같아서 비디오도 같이 다운로드해 보고 여러 가지 자료들도 같이 찾아서 보여주었다. 그러자 첫째 딸은 비로소 그 말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두 번째로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준 유전자에 대해 불평했었다. 


키가 관련해서는 둘째 딸과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언니와 마찬가지로 둘째 녀석도 어릴 적부터 농구를 시작했고 학교 농구팀에 들어가서 게임을 했다. 둘째는 당시 자기 또래에 비해 그렇게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역시 작은 그룹에 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 딸은 당시 팀에서 친구들에게 리바운드를 제일 많이 잡는 선수로 유명했다. 자기 보다도 더 키가 큰 친구들도 많았지만 둘째 딸이 그들보다 더 많은 리바운드 볼을 가로채곤 했었다. 그런 경기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편으로 참 신기했다. 호주에서는 아이들이 운동을 하면 프로 선수들과 비슷하게 시즌 동안 다른 팀들이랑 계속 경기를 하게 되고 경기에는 많은 부모와 다른 가족들이 와서 관람하는 것들이 일상화되어 있다. 어느 시즌에 여느 날과 같이 둘째 녀석이 경기를 하기 전에 친구들과 워밍업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잠시 물병을 둘째 녀석에 건네 주기 위해 코드로 가야 했고 그 모습을 상대방 팀에 있던 둘째 녀석의 친구가 봤다. 그 친구는 나와 둘째 녀석이 서 있는 곳으로 와서 둘째 녀석한테 누구야?라고 물었고 내 딸은 우리 아빠라고 당연히 말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갑자기 아빠가 왜 이렇게 작아?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귀여워서 웃었지만 둘째 녀석이 갑자기 얼굴을 정색하더니 그 친구한테 "그래서 뭔 상관이야 너도 작잖아 저리 꺼져"라고 말했다. 그 순간이 좀 어색할 것 같아서 나는 바로 수습을 했고 다행히 경기가 바로 시작하는 바람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경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내가 계속 둘째 녀석을 힐끗힐끗 쳐다보니 둘째가 뭐 말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라고 대뜸 그랬다. 그래서 아까 경기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둘째는 쿨하게 아빠한테 키 작은 얘기를 해서 기분 나빠서 그 친구한테 그랬다고 하면서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고 했다. 속으로 고마웠다.


나의 두 딸들은 이제 20대가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외모에 관심이 많다. 키 큰 모델이나 예쁜 연예인들이 나오는 영상들을 자주 보고 잘 생긴 남자아이들을 보면 좋아한다. 아마도 이 모든 것들이 정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이 외모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방황하거나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지금까지 딱 두번 정도 키 작은 유전자로 인해 우리 부모님을 원망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살아보니 우리 부모님의 말이 맞았다. 작은 키는 내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물론 내가 연예인을 하게 되었다면 다른 이야기였겠지만. 그래서 내가 예전에 가졌던 그 두번의 부모님에 대한 원망도 이 글을 통해서 반성하고 싶다. 오히려 어릴 때 나에게 들려주신 그 영웅들의 이야기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마도 우리 딸들도 나중에 나이가 더 들고 시간이 더 지나고 나면 그때야 작은 키가 외모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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