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오른다.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다. 사랑, 우정, 사람도. 그래야 인생이 새로워진다.”
책제목도 작가도 그리고 언제 읽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지만 내 개인 메모장에 저장을 해 둔 것을 보면 분명 내가 공감했던 문장이었음이리라. 지금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공감이 가는 걸 보면 유효기간이 아직 지나지는 않은 것 같다. 예전에 어른들이 자식은 품에 있을 때 자식이고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했다. 이 말을 달리 해석해 보면 자식이 일단 품을 떠나 성장하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자식이 이쁘지도 않고 귀엽지도 않고 더군다나 사랑스럽지도 않다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나의 해석이 틀린 것일 수 도 있다. 모든 자식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 성장했다고 나쁘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모를 떠나서 예전보다 더 부모님을 챙기고 귀여운 그리고 사랑스러운 행동과 말을 하는 자식들도 많다고 들었다. 그래도 오래 사신 어른들이 저런 말들을 많이 하시는 이유는 평균 이상으로 대부분의 자식들이 그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의 두 딸들은 이제 둘 다 스무 살을 넘었다. 어른이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 어른이라고 말하기 이르다고 생각되지만 사회가 그렇게 말하고 딸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내 품 안에 안기는 자식들은 더 이상 아니다. 각자의 인생을 나름 독립적으로 살려고 한다. 그래서 어릴 적에 내가 말하는 대로 다 들어주던 그런 딸들이 더 이상 아니다. 설령 내가 맞는 말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들에 맞게 해석하고 행동한다. 자신들의 의견을 통제 없이 말하고 싫은 것을 싫다고 하고 좋은 것만 받아들인다. 일부러 나에게 귀엽고 예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가 그들의 행동을 보고 귀엽다고 또는 예쁘다고 수동적으로 해석하고 표현해 준다. 부모는 자식이 성장하면서 늘 자식이 참 잘 컸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를 바란다. 물론 잘 컸다는 기준이 부모들마다 다르다. 어떤 부모는 공부를 잘해야 잘 컸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부모는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해야 그리고 또 어떤 부모는 아이들이 성장해서 뭔가 크게 효도를 하면 잘 컸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다. 부모의 마음도 생물처럼 변한다. 나 역시도 예전에는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잘해서 남들에게서 칭찬을 받으면 참 잘 컸구나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두 딸이 각각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 그 마음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저 건강하게 그리고 밝게만 자라면 좋겠고 그러면 잘 컸다고 생각이 들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같은 마음이다. 좋은 학교, 훌륭한 성적, 좋은 직장 등등 외적인 화려함 보다는 자신의 일상을 하루하루 잘 살고 감사할 줄 알고 최선을 다하고 실패하더라도 곧 용기를 얻어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내면의 것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부모의 소소한 기대도 자식들에게는 무거운 부담과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아무리 대화를 하고 동기부여를 주어도 딱 그때 당시에만 좋고 돌아서면 언제 그렇나 싶게 또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다. 마치 밑이 빠져 있는 독에 물을 계속 부어도 차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에너지와 좋은 말을 해 줘도 언제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결국 바닥을 치면 늘 감정 섞인 말과 행동으로 부모에게 상처를 준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상처는 그냥 당연히 부모이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감정이 예전처럼 강철처럼 강하지 않고 점점 약해지면서 조그마한 상처에도 이제는 힘들다. 회복하는데 시간이 점점 더 오래 걸린다. 언젠가 생각을 해 봤다. 과연 언제까지 이런 감정 소모를 해야 하며 또 언제까지 자식들의 인생으로 인해 내 인생이 쪼그라들고 조급해져야만 하는 걸까. 이러다가 어느 듯 환갑이 되고 칠순이 지나 팔순에 이러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생각을 해봤다. 헤어짐에 대해서. 남녀가 헤어지듯이 자식과 부모도 어느 순간에는 헤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진정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맨 앞에 인용했던 책에서 읽었던 문장처럼 떠나보내야만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여기서 헤어짐이라는 것은 분명 서로가 영원히 보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고 지내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물리적 그리고 정신적인 거리를 두자는 의미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서로를 좀 더 “존중”하자는 의미도 있다. 자식의 인생이 소중하듯이 부모의 인생도 소중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더 이상 희생만 요구하지 말고 양보만 기대하지 말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하고 굳이 말하고 공유해서 힘들게 할 것이라면 조금씩은 감출 필요도 있는 약간의 존중을 하자는 의미다. 만약 이렇게 얘기하면 관계가 너무 건조해지는 것 아니냐라고 반대할 수 있다. 처음에는 그럴 수 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예전보다 더 가볍고 편해지는 관계가 될 수 도 있지 않을까.
나의 할머니는 슬하에 자식이 7명이었다. 그래서 어릴 적 명절 때면 삼촌들 고모들이 장남이신 우리 부모님 집에 와서 며칠씩 맛있는 음식도 드시고 술도 마시고 오랜만에 수다도 떨다가 가곤 했다. 젊었을 때 삼촌과 고모들은 만나면 늘 기분들이 좋으셨다. 하지만 삼촌들도 고모들도 나이가 드시고 각자 자식들이 생기고 그네들이 성장하면서 모이면 웃고 좋은 날보다 무슨 이유였든 간에 싸우고 다투는 날들이 더 많았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그 분쟁의 한가운데에 늘 계셨고 해결해 주려고 하셨다. 그러다 보니 고모들 삼촌들은 이미 출가를 해서 각자의 가정이 있을 만큼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할머니에게 말씀하시고 그러면 또 할머니는 힘들어하셨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런 모습을 본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님에게 손벌이지 말자 좋은 것만 말하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능한 한 빨리 부모님을 나로부터 독립시켜 주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나의 그 계획은 무참히 실패였다. 여전히 나의 부모님은 나와 헤어지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지 못한 것일 수 도 있고 아니면 부모님이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의 잘못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우리 두 딸을 키우면서 “헤어질 결심”을 생각하면서 제발 딸들이 독립해서 자기들만의 인생을 잘 살기를 바라고 있는데 진작 나 자신이 제대로 살지 못해서 아직도 우리 부모님은 나랑 헤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씩 우리 부모님이 불쌍하다 그리고 죄송하다. 우리 부모님도 나름 노후 계획을 세워본 적이 있을까 있었다면 어떤 것들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요즘 세상이 백세인생 이라고는 말들을 하지만 팔순이 넘으신 부모님에게 노후계획이라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일 수 도 있다.
이 책을 만들어가면서 중간중간 내내 마무리를 무슨 주제로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영화 “헤어질 결심”을 알게 되었고 영화 내용이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해서 줄거리만 간략하게 봤다. 결론은 사랑에는 포기와 붕괴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특히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너무 사랑한다 들었는지 아니면 사랑하면 안 되는 관계인데 사랑하게 되면 더 그렇다. 포기와 붕괴는 결국엔 희생이라는 의미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도 대부분 일방적인 것들이 많다. 부모는 그저 무엇이든 자식에서 쏟아붓고 싶어 하고 다 주고 싶어 한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사랑이 어느 선에서 멈추지 못하고 계속될 경우 붕괴가 생기거나 포기를 해야 하거나 아니면 희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 많다. 나의 주위에도 끝없는 사랑을 자식에게 베푸는 부모들이 많다. 자식이 어려서는 이해가 되지만 자식이 독립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고 더 나아가 이제 같이 늙어가는 동안에도 베풀고 또 베푼다. 그런 부모들은 대부분은 나이가 들어도 자식은 늘 어린 자식으로만 보인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렇게 베푸는 사이 부모들은 나이가 들어가고 당신들이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은 뒷전에 두는 희생을 하게 마련이다.
나의 부모님도 그런 부류이다. 자식들에게 뭐라도 주려고 한다. 마치 오래전부터 빚을 지신 것처럼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하신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아직도 나랑 헤어지기 싫으신 모양이다. 이미 벌써 헤어져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그러지 못하게 만든 것이 나이다. 내가 잘 살고 행복하면 벌써 나와 헤어지고 당신들의 삶을 살았을 텐데 팔순이 넘어선 지금도 나와 헤어지지 못하고 계신다. 이것보다 더 불효가 어디 있나 싶다. 그래서 요즘은 카톡영상전화를 하면 신나고 즐거운 일만 얘기한다. 혹시 기분이 다운되어 있거나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연락을 안 하거나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길을 이제는 좀 여유 있고 가볍게 갈 수 있게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억지로라도 그렇게 한다.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