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이가 들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혼자 있는 시간들이 많아질 때다.
돌이켜 생각을 해 보면 20대에는 늘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과 어울렸고, 30대 에서부터 40대 까지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기간이었기에 그들이 늘 내 곁에 언제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삶을 보면 점점 혼자만의 시간들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만 갔던 것 같다.
아이들은 이제 다 커서 어른이 되어버렸으니 각자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기에 바쁘고, 어느 순간 아내도 더 이상 집에서 내가 퇴근해서 오기를 기다리는 가정 주부가 아니라 커리어를 하고 있는 일명 직장인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더불어 아내와의 자유 시간도 점점 더 줄어들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진 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사실 제법 좋은 점들도 많다. 우선, 혼자 있을 경우 나는 주로 글을 쓴다. 주중에는 솔직히 일, 운동, 기타 다른 일 등등으로 시간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글쓰기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의외로 글 쓰는 일도 어느 정도의 무드나 환경이 필요하다. 그냥 단순히 시간만 난다고 글감이 떠오르거나 좋은 글이 술술 잘 쓰이거나 하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는 적당한 고요함과 무엇보다도 내 주위에 아무도 없는 빈 공간이 있을때 잘 되는 편이다. 따라서, 혼자 있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런데 혼자일 때가 정말 괴롭거나 싫을 때가 있다. 그런 시간들은 어느 날 훅하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갑자기 힘든 일이 생겼는데 막상 혼자일 때가 있다. 가슴이 답답함이 느껴져 오고 그래서 그 힘든 것을 나누거나 아니면 위로를 받고 싶은데 누군가가 당장 내 옆에 없을 때가 있다. 서럽기도 하고 한마디로 현타가 온다.
물론 전화하면 받아 줄 아내, 자식들 그리고 한국에 계시는 가족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지만, 보통 그럴 경우는 당장 내 옆에 누군가가 있어 주기를 원할 경우가 많았다. 굳이 전화기를 꺼내 들어서 카톡앱을 누르거나 전화번호를 누르지 않아도 내가 내 몸을 자연스럽게 기댈 수 있는 그런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 보다도 더 힘든 경우는 누군가가 분명히 내 옆에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혼자라고 느껴질 때다. 내 옆에 분명히 아내 또는 남편 또는 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투명 인간처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거나 아니면 내가 힘들다고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그들이 내 말을 듣지 못하는 마치 귀머거리 같은 사람들만이 내 옆에 있을 경우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주일에 목사님 설교 말씀이 생각난다. "고달프고 긴 인생 여정길에서 혼자 걷지 말고 같이 걸아갑시다."라고 말씀하셨다.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격려하고 서로 위로하고 때로는 서로 사랑한다고 말해주면서 "혼자"가 아닌 "우리"라고 느끼라고 하는 말씀이었다.
3년 전만 해도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3년 전 나는 많이 방황했고 무엇보다도 혼자라고 느꼈다. 내 곁에 내가 사랑하는 아내도 있었고 딸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혼자 걷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가 여기 린필드로 도망쳐 온 후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방황하던 나를 찾아 원래 자리로 돌려 주었다. 그 이후 늘 누군가가 내 옆에서 같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힘들 때나 외로울 때나 즐거울 때도 나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있다. 그분은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오실 뿐만 아니라 가끔씩은 나를 대신해서 일도 해 주신다. 참 좋으신 분이다.
한때 나도 친구들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나 혼자가 될까 봐 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간절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누군가 말했듯이 내 전화기에 등록된 친구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내가 힘들 때 내가 전화해서 나의 고민이나 힘들을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요즘 들어 나는 참 그 말이 와닿는다.
긴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이기에 혼자 걷는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다리가 풀리고 숨이 벅차게 오른다. 반대로 누군가가 내 옆에서 같이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길이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비포장도로든 아니면 평탄한 길이든 상관없이 걸어갈 만하지 않겠나?
최근 아내와 같이 스포츠 센터 멤버십에 가입했다. 이제는 들어가는 나이에 체력이 예전만 못해서 운동을 안 할 수가 없다는 결론을 둘 다 같이 내렸다. 그래서 당장 가입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같이 걷고 뛰고 그리고 수영도 한다.
운동으로 인해 건강에 좋아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이런 것으로 인해 또 나와 아내는 같이 있는 시간이 더 생기게 되었다. 혼자 우두커니 러닝머신을 걷거나 뛰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서 내가 사랑하는 아내가 같이 걷고 있다. 혼자 걷지 않는다.
행복은 별것 아니다. 뭔가를 거창하게 해야만 행복의 퀄리티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소소한 일상이나 작은 행복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지 않나요? 그저 지금 내 옆에 누군가가 있어서 혼자 걷지 않고 같이 걸어갈 수 만 있다면 그냥 행복한 것이다. 적어도 지금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소중하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면 혼자 린필드 동네를 한바퀴 한다. 혼자지만 혼자 걷지 않는다. 누군가 옆에서 걷는다.
Tryon lane, Lindfield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