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경제적으로 스스로 독립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이들을 외국에서 키우기 시작한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와 외국의 그것을 비교할 수 있었다. 다른 나라들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10년 넘게 살아온 여기 호주의 경우 대부분의 호주 부모들은 빠르면 고등학교 늦어도 대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경제 지원은 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가정의 환경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아온 평균의 호주 가정들은 대부분 그렇다는 얘기다. 그에 반해 대부분의 한국에 있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경제적인 독립을 못할 경우 나이와는 상관없이 무한 반복적으로 경제적인 지원을 아낌없이 주는 경우가 많다. 가령 자녀가 대학을 입학했지만 여전히 공부를 하는 학생으로 간주하고 등록금은 물론이고 생활비, 등등을 지원해 준다. 그래도 이건 뭐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근데 대학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을 잡아서 이미 경제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경제적 지원을 하는 부모들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런 경제적인 지원이 결코 나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부모님이 여유가 있어서 자식들에게 지원해 주겠다고 하는데 무슨 흠이 있겠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으며 더군다나 부모가 언제까지 경제활동을 계속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일찍 은퇴를 해야 만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부모님들 은퇴 후의 삶이 예전보다 더 길어진 것도 문제다. 호주에 사는 나는 대부분의 호주 부모들이나 내 주위의 한국부모들 중에서 일찍이 이민을 오셔서 자녀들을 여기서 낳아 기르신 부모들을 보면 대부분이 자녀들이 대학을 들어가는 순간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끊는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의 경제 독립을 고등학교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그런 부모들의 직업이다. 다들 자영업 사장, 의사, 변호사, 그리고 유명한 기업의 임원들이시다. 나름 현지 사회에서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사시고 말하자면 성공하신 분 들 이어서 경제적으로는 별로 부족함이 없으신 분들이지만 아이들을 일찌감치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하고 더 이상의 지원을 하지 않는 편이다. 경력과 경험이 전무한 아이들은 대부분 식당이나 또는 카페에서 일을 하거나 공부 과외도 종종 하면서 일주일에 평균 2~3개씩의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돈을 번다. 적게는 매달 돌아오는 각종 서비스 사용 고지서들을 지불하거나 크게는 일 년에 한두 번씩 가는 해외여행 비용을 위해 저축하는 것에 사용된다.
나의 첫째 딸은 대학을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과 비슷하게 역시 식당에서 일을 해서 용돈을 벌어 사용했다. 큰돈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 힘든 일을 투덜거리면서도 그만두지 않고 다니는 것이 자랑스러워 보였다. 그렇지만 첫째 녀석 한국 친구나 중국 친구들 중에서 부모님의 재력이 어느 정도 되고 해서 몇몇 친구들은 일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부모님의 카드를 사용하거나 용돈을 받아서 사용하나 보다. 그래서 가끔은 그네들이 부럽고 그런 그들을 만나고 올 때면 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싶다 힘들다 등등의 투정과 짜증을 부리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미안했지만 나의 아내는 당당하다는 듯이 아이들에게 현실을 자각시켜 줬다. “엄마 아빠는 부자가 아니야. 그리고 이제는 너희가 스스로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해. 우리가 언제까지 니들 곁에서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니?” 등등의 잔소리를 내뱉곤 했다. 구구절절이 다 맞는 얘기라서 그럴 때면 나도 아무 말 없이 아내의 잔소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런 잔소리는 스트레스이고 인생이 뭔가 공정해 보이지 않고 나는 왜 이런 부모한테서 태어났을까 라는 생각을 만들게 했다. 첫째 녀석은 처음에는 그런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나면 늘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더 인식하게 되었는지 더 이상 그런 불평이나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첫째 녀석이 대학교 2학년이 되고 회사에서 인턴으로 파트타임 일을 하면서였다. 식당 일이 너무 힘들어서 처음에는 인턴 일이 편하고 좋다고 했지만 첫째 녀석은 얼마 못 가서 나를 찾아와서는 오피스 일이 생각보다 힘들고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 나는 당시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었는데 그 뒤로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했다. 3학년으로 올라가서는 더 큰 기업에서 여러 친구들과 경쟁하는 본격적인 인턴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첫째 녀석은 좋은 시간들도 즐겼지만 역시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면서 첫째 녀석은 아빠가 그동안 30년을 가까이 일을 해 오고 있다는 사실과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일들을 나에게서 듣고 나서는 지금껏 부모님에게 받은 경제적 지원들이 그냥 쉽게 나오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이 후로는 첫째 녀석은 용돈을 저축하고 알뜰하게 사용하고 스스로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그랬다. 그래도 부모로서 가끔씩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뭔가 도와주려고 하면 애써 거부하면서 빨리 완전 독립을 원했다. 고마웠다.
둘째 녀석은 첫째 아이보다 더 일찍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등학교를 중간쯤 지나고 나면서 슈퍼마켓에서 간단한 일들을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다. 처음에는 공부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반대를 했는데 다른 친구들도 다 한다면서 설득을 하길래 별다른 저항이 없이 그렇게 하라고 내버려 두었다. 둘째 아이는 언니보다 2살 차이가 나지만 성장한 환경 때문인지 생각하는 방식이 좀 더 외국 아이들과 가까웠다. 당시 나는 그렇게 일을 하면서 공부도 병행하면 좀 더 독립적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을 가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좋은 점도 있었다. 어느 날인가 파트타임을 하고 돌아온 둘째 아이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말을 했다. 순간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물으니 슈퍼 마켓에서 같이 일하는 어른들을 보면 너무 힘든 일을 계속해야 하고 그래서 좀 불쌍하다고 생각되었다면서 자기는 그들처럼 살기는 싫어서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해서 오피스에서 일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었는지 몰라도 적어도 둘째 아이는 높은 목표를 정하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내내 참 열심히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 둘 다 모두 대학을 들어가고 스무 살이 넘어 말 그대로 어른으로 성장하였다. 결론적으로 첫째 녀석은 예상과는 달리 우리들로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하였고 스스로 거의 모든 것들을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둘째 녀석은 여전히 모든 경제적인 것들을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살고 있다. 가끔씩 가족 모두 저녁을 먹게 되면 아내는 아이들에게 종종 말한다. 엄마 아빠가 언제까지 너희 겉에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너희들에게 물려줄 재산도 없다. 그러니까 가능한 한 빨리 경제적인 독립을 할 수 있도록 해라라고 말이다. 아내는 나보다 좀 더 많이 직설적이고 더 현실적인 면이 많다. 나도 아내의 말에 동의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아내의 말은 참 맞는 말이다. 아이들이 더 이상 어리지 않고 어른이라면 좀 더 빨리 현실인식을 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유행어가 있지 않나. 아내와 나도 흙수저인 부모 밑에서 자랐고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정말 끝까지 모든 것들을 도와주지 못할 것 같으면 아이들에게 빨리 현실 인식을 시켜주는 것이 어쩌면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싶다. 아내처럼 모질지 못하는 나는 늘 돌아서서 아이들에게 그래도 힘든 것이 있으면 말해 도와줄 테니까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달래 주지만 아이들도 안다. 누구의 말이 현실인지.
내가 어릴 적에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참 많이 들었던 얘기 중에 하나가 “아들아 아빠가 아직 젊으니까 다 도와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혼해서도 우리 부모님은 계속 “너는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가진 것들은 다 네 거니까 너무 힘들게 살 필요가 없어”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이런 우리 부모님의 말들은 참 위로가 되고 힘이 되기는 하였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나의 현실 감각을 떨어뜨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말들만 믿고 내가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절박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것 때문에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그래서 내 인생이 나아지지 못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나도 두 아이들의 부모가 되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의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신 이유는 정말로 그렇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다고 보기보다는 그저 당신의 자식들을 맘 편하게 해 주고 싶었고 아마도 아들 둘 정도는 경제적으로는 충분한 지원을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말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철없이 행동했던 나의 지난 시간들에 후회가 되었고 조금 더 노력하지 않았던 나 자신이 못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전화를 하면 지금도 나의 부모님들은 여전히 비슷한 말을 반복하시고 있다. 시간이 지나서 나도 부모가 되어 보니 당신들의 말들이 얼마나 힘든 것들인지를 뒤늦게 알게 되었고 죄송했고 그러면서 너무 고마웠다. 철이 들고 현실을 점점 더 알기 시작하면서 점점 내 부모님의 그런 격려와 위로는 내 현실 인생에 도움이 되지는 못했고 나는 또 더 이상 그런 말들에 귀를 기울이거나 기대려고도 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내 아이들의 부모로서 어떤 방향이 좀 더 우리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들이고 행동인가를 더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매일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바뀌고 무한 경쟁이 극심해지고 빈부의 격차도 점점 더 심해지는 자본주의 세대를 살고 있는 나와 우리 아이들은 더 이상 평범한 부모가 자녀들의 경제 지원을 무한히 해주기 힘들다. 정말 말 그대로 금수저로 태어난 분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자녀에게 현실을 좀 더 빨리 말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이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로 인해서 부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내 자식들에게 더 빨리 이런 현실들을 알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커다.
부모의 재력이 얼마나 자녀들의 성장에 영향을 미칠까? 너무 풍족한 가정은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만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한 문제 그리고 너무 많은 주고 나면 자연스럽게 높아진 기대와 실망으로 인해 생기는 상실감 등으로 고민한다. 너무 부족한 가정은 너무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감정이 메말라지고 따뜻함이 사라지고 차가운 이성만이 남아서 인생의 덧없음으로 고민한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들에게 많이 주고 싶고 자식은 또 언제나 부모에게서 많이 받기를 기대한다. 많이 줄 수 없다면 많이 받을 거라는 기대를 빨리 없애 주는 것이 부모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대가 높으면 늘 실망이 큰 편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