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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M Oct 06. 2024

소소한 일상을 망쳤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 나의 정체성은 그저 나 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후 누군가의 “남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고 그 후로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는 “부모”라는 타이틀을 또 하나 더 가지게 되었다. 나 자신으로 사는 동안에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하나씩 새로운 타이틀들이 추가되면서 더 이상 나는 내 인생으로만 살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혀 내 인생이 사라진 것은 없지만 점점 그 부분들이 줄어들게 된 것은 사실이다. 


삶에 있어서 우선순위도 역시 바뀌게 되었다. 남편이라는 타이틀이 생기면서 어떤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나 자신만을 생각하기는 더 이상 힘들어지게 되었다. 부부로서 나뿐만 아니라 같이 사는 아내도 역시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생기면 더 복잡해진다. 자식도 하나일 때와 두 명일 때 또 다르다. 가령 가족 여행을 가더라도 아이가 생기면 나만 좋은 곳으로 가기 힘들어진다. 가족 모두가 다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는 장소를 골라야만 한다. 


가족이 최고 상단에 위치하게 되고 나 자신은 그저 그 가족의 일부이고 가장 중요한 책임을 지게 된다. 그때부터 어쩌면 나는 부모로서의 인생을 줄 곧 살아왔으며 오로지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기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불가능의 것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이 막 태어났을 때는 걸음마만 좀 하면 내 시간들이 많아지고 좀 여유로워지겠지 했고 그러다가 막상 걸음마를 시작하면 또 다른 일들이 생겨서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나아지겠지 하지만 그건 희망 사항이었을 뿐 부모로 사는 인생은 계속되었다. 


언젠가 아내와 그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애들 둘 다 대학만 들어가고 나면 이제 더 이상 애들 보면서 살지 말고 우리 인생 살자” 그런 얘기를 할 때 사실 상상 만으로도 너무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희망도 막상 그 시간들이 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내도 나도 여전히 우리는 부모로서 인생을 살고 있으며 더 복잡해졌다. 


그러다가 나의 부모님 생각을 해봤고 나 자신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 부모님은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들을 위한 삶을 살지 못하신 것 같다. 작년에 팔순을 지내신 아버지 그리고 곧 팔순이 다가오는 어머니 두 분을 보고 있으면 여전히 부모로서 삶을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매주 주말이면 두 아들자식들이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한 번도 안 빠지고 영상 통화로 확인하시고 손주들이 보고 싶어서 전화하고 또 전화하시고 어쩌다가 뉴스에 이상한 소식이 나오면 바로 전화해서 괜찮은 지 확인하시고 추우면 추워서 그리고 더우면 덥다고 전화해서 확인하신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부모님의 전화를 받으면 아내도 나도 둘 다 좋은 얘기만 하고 끊는다. 이제 더 이상 심각한 일들이나 안 좋은 일들이나 또는 시시콜콜한 고민들을 말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성격상 조그마한 것이라도 안 좋은 소식을 들으면 걱정하고 또 걱정하고 하시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기로 했다. 사실 너무 늦어서 죄송하다. 하지만 지금부터 서라도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을 삶 동안 제발 부모님이 당신들 만을 위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딸들 일로 인해 속상해하고 힘들어할 때 나의 부모님이 내게 해 준 단 한마디어 조언은 부모는 평생 그렇게 사는 거니까 애들한테 절대로 내색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시는 걸 보면서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나도 우리 부모님처럼 살아야 하나 하는 답답함을 느꼈었다.   


아내의 엄마 장모님은 당신 슬하에 자식들이 참 많으시다. 두 분들을 보고 계시면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모든 자식들을 키워서 시집보내고 장가보내기까지 하루도 온전히 당신들만의 삶을 살아 보지 못했을 터이다. 아마도 눈물과 서러움으로 지낸 밤들이 어마어마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모든 것들이 몸으로 증명된다. 장모님은 무릎, 허리 등등 관절 하나하나가 다 안 좋으시다. 어쩌면 부모로서의 인생을 다 사시고 나서 마지막에 남은 것들일지도 모른다. 나의 부모님처럼 장인 장모님도 이제 살아갈 날들이 얼마 남지 않으셔서 더 이상 시시콜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직 기쁘고 좋은 것들만 공유하곤 하다. 이제 더 이상은 자식들 걱정으로 부모인생을 사시는 것이 아니라 늦었지만 당신들 삶을 즐기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가끔씩 아이들 몰래 데이트를 하곤 한다. 단 둘이서만 쇼핑을 하거나 맛있는 식당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거나 아니면 동네 근처 술집에서 맥주잔을 부딪치면서 서로의 고민을 얘기하거나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곤 한다. 그 시간들이 유일하게 아내와 나 만을 위한 시간이어서 너무 소중하고 그래서 너무 좋다. 그런데 과연 우리 부모님들도 우리들을 키우면서 중간중간에 이렇게 소소하고 재미있는 시간들을 보낸 적이 있었을까? 


내 주위에는 자식이 없는 부부들이 있다.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않아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그들 부부들은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다. 기념일도 빠짐없이 챙기고 여행도 자주 다니며 각자 취미 생활도 꾸준히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있는 다른 부부들이 종종 그들을 부러워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들 부부들은 항상 대신 우리는 나중에 나이 들어서 찾아올 딸도 없고 아프면 의지할 아들도 없다며 나름 다른 부부들을 위로한다. 나도 그 부부들을 보면서 가끔씩 과연 저런 삶이 행복한 삶인지 아닌지는 생각해 볼 때가 많다. 그런데 잘 모른다. 그들처럼 살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시간 좀 더 지나서 내가 주가 되는 삶을 살 때가 올 것이라고 바라고 있을 뿐이다. 자식이 있고 부모가 되었지만 부모로서의 삶만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삶도 잘 살아가는 부부들도 분명 이 세상에 있을 터이다. 그런 분들을 만나서 대화를 해 보고 인생 조언을 듣고 싶다. 과연 어떻게 그런 인생을 설계하게 되었을까 그런 인생이 행복하냐고 묻고 싶다. 


아내와 늘 생각하는 것이 아이들이 독립적인 어른으로 성장하면 우리가 좀 더 우리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하곤 한다. 처음에는 대학에 들어가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둘 다 대학에 들어갔지만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기고 그런 것들을 차마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요즘에 들어서는 직장을 다니고 정말 경제적으로도 독립적으로 되면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 회로를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온전히 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식의 도움이 필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이 어리든 나이가 들어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생을 살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홀로 되신 할머니를 도와야 했고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오래된 공직 생활의 끝에 은퇴를 하실 무렵에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은퇴하면 더 이상 일을 하기 싫으시다고 했다. 매일 양복을 입고 출근하시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운동복에 운동화만 신고 다니시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났다. 아직 충분히 일을 해도 괜찮을 나이였지만 정말 그 이후로 더 이상 월급쟁이 일은 하지 않으셨다. 대신 시골 동네 소일거리를 낙으로 삼으시고 지내셨다. 그 후로 자세한 얘기는 안 해봤지만 아마도 아버지는 은퇴를 하시면 당신의 삶을 온전히 살고 싶으셨던 모양이었다. 나의 부모님을 생각했다. 나의 부모님들을 자신들을 삶을 온전히 살고 계신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나를 걱정하는 그런 부모의 삶을 더 많이 살고 계실까? 만약에 당신들이 아직도 나로 인해 당신들의 소소한 일상을 온전히 살지 못하고 계신다면 너무 죄송하다. 그것은 결국 당신들의 눈에는 아직 내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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