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상으로

by BM

우리는 느끼지 못할 뿐 각자가 만든 굴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흔히들 이것을 각자의 일상이라고들 말합니다.


누군가의 일상은 다른 누군가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이 세상에 같은 일상을 하나도 없습니다. 비슷한 것조차도 없습니다. 지구 전체의 인구가 얼마인지 분명히 모르지만 10억 명이라고 가정하면 10억 개의 일상이 있다는 것이며 하루하루 그것들로 24시간이 채워지고 돌아갑니다.


이런 일상들이 가끔 변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각자의 일상이 바뀌는 가장 흔한 이벤트가 바로 "여행"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행이라는 것은 언제나 익숙한 나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새로운 곳에서 삶을 살아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나의 여행으로 인해서만 나의 일상이 변화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누군가가 나에게로 여행을 와서 그로 인해 나의 잔잔한 일상에 파동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나의 일상이 더욱 소중해집니다. 월화수목금토일을 정해진 식단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 어쩌면 너무 단순하고 심심한 삶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가장 안정적인 삶이기 때문에 그것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기도 합니다.



최근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저에게도 여행자가 찾아왔습니다. 한국에서 몇 년 만에 가족이 왔습니다.


무려 일 년 전에 예약했던 비행기 그리고 호텔 예약은 초고속 열차의 속도로 금방 다가왔습니다. 1년 전 예약을 할 때만 해도 아직 1년이나 남았다고 생각하고 기분은 좋았지만 막 설레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기다려지고 보고 싶어 지고 오히려 마지막에는 시간이 더 천천히 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세월은 나와 나의 가족뿐만 아니라 몇 년 만에 다시 시드니로 돌아온 한국 가족들에게도 변화를 주었더군요. 내가 나이 든 만큼 조카들은 더 이상 꼬맹이들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젊고 혈기 많았던 형님내외 분은 이제 더 이상 그때의 그분들이 아니라 이제는 나와 같이 나이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온 가족들과의 만남과 여행은 너무 잔잔하고 고요하기만 했던 나의 일상의 연못에 큰 돌이 되었습니다. 파동이 치는 것을 떠나서 파도가 치고 오랜만에 역동적이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추억 이야기를 해도 시간 가는 줄 몰랐으며,

커피를 마시며 하는 수다들이 귀찮거나 지루하지 않았으며,

늘 걷기에만 집중했던 산책로 주변의 풍광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평소 특별하지 않았던 토요일 저녁 불꽃놀이도 너무 이뻐 보였으며,

저녁마다 와인과 맥주는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지도 않았으며,

.....

.....



우리는 일상의 편안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편안한 일상에 변화가 생기고 누군가가 그것을 치고 들어 올 때의 불편함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른 것은 아마도


그 변화된 일상으로 오는 기쁨이 뭔지를 까먹고 사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이번에 한국에서 가족들이 여행 왔을 때 순간순간 느끼곤 했습니다.


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

그것이 전부이고 그것이 내가 지켜야만 하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일상.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착각이고 교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지난 2주였습니다.


내 일상이 바뀌고 변화가 생기면서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힘든 것도 있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또 나는 인생을 배웠으며, 더 소중한 것들을 하나 더 발견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나의 모자람에 겸손한 태도를 배웠습니다.



조카들은 10년 만에 찾아온 시드니에서 추억 여행을 다녔습니다.

예전에 다니던 학교를 찾아보고,

예전에 걸었던 길들을 다시 걸어보고,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을 다시 먹어보고,

그리고 예전에 함께 했던 시간들을 선물 보따리처럼 끄집어내어 주었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문득 나 자신도 클라우드 디스크에 저장만 해놓고 보지도 않았던 오래된 사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일상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의 색깔이 있었을 터이고 지금은 또 다른 색으로 살아가는 나의 일상이 있습니다.



여행에서 아름답고 새롭고 이쁜 곳을 보는 구경도 분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더 소중한 것은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뭐 특별한 것들을 하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유의미한 여행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들은 금방 잊히지만,

함께 공유했던 시간 속에서 대화했던 것들은 우리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출렁이던 나의 일상의 연못도 다시 잔잔해졌습니다.


일요일 나는 다시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갈 것이며, 월요일이 되면 나는 다시 회사일로 바쁜 일주일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상이 될 것입니다.


약간의 아쉬움에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뒤적거리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다시 돌아온 나의 일상으로 편안해지리라 생각됩니다.


잘 가요.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Sydney Opera House and Harbour Bridge.


"사람마다 먹고 마시며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알았도다." 전도서3:13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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