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더 갤러리 호수 <틈을 걷다>
Sub : ~의 아래, 부차적인, 근처의, 가까이
가닿지 못한 것들이 뿌리내리는 곳
예전부터 느낀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주변인, 이방인이었다. 무언가의 중심이 되기보다 늘 곁방살이하듯 겉도는 'Sub(부차적인)'의 생, 가닿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주변인의 삶이 나의 본질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런지 무언가를 가지거나 소유하면 그게 시간이 됐든, 감정이 됐든 그 안으로 완전히 침잠해 하나가 되고 싶어 했다.
벚꽃이 피면 흩날리는 잎들 사이에 박제되고 싶었고, 누군가 옆에 앉으면 이대로 시간이 멈춰 영원히 흐르지 않기를 소망했다. 내가 나에게 가닿기 위해서도, 그만큼의 영원한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석촌호수 갤러리에서 내 욕망의 형상을 닮은 작품을 마주했다.
'피노키오 - 안개 속을 빠져나가는 히드라'
하늘을 향해 처연하게 뻗은 나뭇가지들은 마치 무언가를 애걸하는 손가락 같았다. 태양이라는 절대적인 존재에 가닿고 싶어 몸부림치는 인간의 간절함이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시선을 아래로 옮기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숲 - 홀로 서는 사람들'
하늘을 향해 뻗었던 열망의 크기만큼, 나무는 땅 아래로 묵묵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닿고 싶은 욕망이 거대했던 만큼, 스스로를 지탱해 홀로 우뚝 서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인 나무들.
하늘을 향한 구걸이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땅을 향한 의지가 시작된다.
예술 작품은 시간을 영원히 가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멈춰진 시간 앞에 서서 있는 그대로를 보기로 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세계.
벚꽃이 져서 슬픈 것이 아니라, 벤치 아래 앉아 흩날리는 꽃잎을 온몸으로 맞이할 수 있어 행복한 세계.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내게 다가오는 행복을, 나는 그동안 거추장스러운 먼지인 양 털어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가방 속에 우연히 들어온 꽃잎 한 장을 발견하고도, 혹여 가방이 더러워질까 노심초사하며 들쑤시던 나의 불안들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고, 시간 속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운다.
내 감정과 주관을 잠시 배제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기. 남과 비교하는 눈을 감고 내 안의 뿌리를 살피기.
내가 'Suburban(주변)'의 삶을 넘어 'Urban(중심)'의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타인의 손을 잡는 법이 아니라 내 발밑의 토양을 믿고 홀로 서는 법임을, 예술 작품이 알려준다.
미술관의 경비원이 고요히 작품을 지키듯, 나도 나라는 존재를 고요히 지키며 사유하려 한다. 나는 이미 나라는 숲을 이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