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기다림 /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2025.06.01. 일요일의 기록

by 허건

영화 '봄날은 간다' 어렸을 땐 유지태에 감정이입해서 봤다.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나와 비교하며 들을 나이가 되니 이영애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순간의 진심은 진심이 아니었던 걸까. 여태 난 진심이 아니라고 믿고 살았다. 진정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고 나를 속였다.

지나간 순간들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며 유지태처럼 울었던 적도 있고, 사랑은 원래 변한다며 이영애처럼 매몰찼던 적도 있었다.

내 사랑은 찌질의 역사. 그런 기억들이 모여 사랑의 영원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뜨겁게 사랑하는 것만이 사랑인 것도 아니다. 뜨겁지 않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다. 순간의 진심도 진심이었다. 열정을 다해 불사 지른 순간도 사랑이었고, 묵묵히 뒤에서 응원하던 마음도 사랑이었다.

단지 내 마음이 변하듯 상대도 변하고, 권태를 못 이겨 이별할 뿐이다. 상대와의 만남이 처음부터 잘못된 건 아니다. 사랑한 척하며 만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모든 이별 후에 진정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 모든 만남에 진심이 없었다고 말하면 내 삶이 너무 가여워진다. 난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만날 땐 몰랐어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남은 이별의 시작이고, 이별은 만남의 시작이다. 자기 꼬리를 먹어 삼키며 재생하는 상상 속의 동물 '우로보로스'처럼 끊임없이 순환하는 만남과 이별. 전생에 억겁의 인연이 쌓여야 이 생에서 한 번 만난다는 데, 이 말이 가슴에 박히자 모든 만남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별 후에 항상 생각했던 '처음부터 만나지 말걸'하는 후회도 이제는 다르게 생각하기로 맘먹었다. 그 순간의 진심도 진심이었기에 사랑이 아니었다고 나를 속이지 않기. 좌절과 아픔의 순간도 더 나는 내가 되기 위해 겪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하기. 인간은 평생 성장통을 앓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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