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재앙
캥거루는 극한의 환경에서 태아 성장을 멈추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기후 변화와 천적 감소로 캥거루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호주 정부는 역사상 몇 차례 캥거루 대학살(Kangaroo Cull) 을 시행했다.
인간이 무분별한 개체 수 조절에 개입할 경우, 예상치 못한 생태계 변화가 발생한다.
Question
인간의 개입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필요한 조절’과 ‘멸종의 위기’는 종이 한 끗 차이일 뿐인가?
만약 우리가 새로운 종을 탄생시켰다면, 그것을 ‘괴물’이라 부를 자격이 있는가?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서 호주의 기후 패턴이 급격히 변화했다.
뉴사우스웨일스와 퀸즐랜드의 건조한 사막지대는 점차 초지로 변했다.
강수량 증가로 식생이 풍부해지면서 캥거루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천적이었던 딩고의 개체수는 기후변화로 감소했고,
따뜻한 겨울이 지속되면서 캥거루의 번식 주기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졌다.
도로를 점령한 캥거루 떼,
밭을 짓밟는 수만 마리의 초식동물,
농작물 피해와 차량 충돌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이제 캥거루는 국가의 상징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2026년, 호주 정부는 ‘캥거루 대학살’을 선포했다.
캥거루 사냥은 국가 차원의 ‘통제’였다.
헬리콥터에서 총알이 퍼부어졌고,
광활한 초원은 수십만 마리의 캥거루 시체로 뒤덮였다.
피로 물든 대지 위에서 살아남은 캥거루들은 인간을 피해 숨어들었다.
그리고 모든 암컷 캥거루들이 배아 성장을 멈추기 시작했다.
환경이 좋지 않을 때 태아의 성장을 조절하는 캥거루의 생존 전략이
지금껏 없던 방식으로 발현된 것이다.
하루, 한 달, 1년이 지나도
캥거루들은 출산하지 않았다.
정부는 대학살을 종료했다.
캥거루 개체수는 안정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변화는 예상과 달랐다.
10마리 내외로 움직이던 캥거루 무리가
30마리 이상으로 커졌고,
겁이 많고 회피적이었던 동물들이
더 이상 인간을 피하지 않았다.
밤이면 민가 주변을 어슬렁거렸고,
일부 지역에서는 대형 캥거루들이 울타리를 감시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캥거루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어.”
하지만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곧, 그것이 실수였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
한 농장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새벽, 울타리 너머에서 이상한 인기척이 들렸다.
농부는 손전등을 들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 순간,
거대한 수컷 캥거루가 울타리를 박차고 뛰어들었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농부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을 둘러싼 수십 마리의 캥거루들.
이튿날,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가족들 또한 실종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사고로 여겼다.
하지만 비슷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캥거루는 이제 인간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초식동물이 아니었다.
연구진은 긴급 표본을 분석했다.
"캥거루들의 뇌가 변했습니다."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했고,
스트레스 반응을 관할하는 시상하부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었다.
캥거루는 학습했다.
그들은 인간을 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긴급회의가 열렸다.
“캥거루를 다시 몰살해야 합니다.”
정부의 주장에 많은 연구자들이 반발했다. 그러나 들끓는 여론을 잠재울 묘책이 없던 것도 사실이었다.
캥거루는 이미 달라진 존재가 되어 있었고 많은 시민들은 불안이 떨었다.
정부는 결국 최악의 결정을 내렸다.
전 지역에 저격수를 배치하고,
드론으로 무리를 추적하며,
호주의 상징을 직접 ‘청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캥거루가 사라지자,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졌다.
캥거루가 뜯어먹던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다른 초식동물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사막화가 가파르게 진행되었다.
딩고는 먹잇감을 잃고 인간의 거주지로 내려왔으며,
농장은 들개들에게 초토화되었다.
가축 도살 사건이 빈번해졌고,
목축업은 붕괴 위기에 처했다.
호주는 ‘국가의 상징’뿐만 아니라
자연의 질서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이건 우리가 원하던 결과가 아니야…”
정부 관계자들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정말 캥거루는 사라졌을까?
그날 밤, 한 연구자가 남쪽 평원을 탐사하던 중이었다.
그는 무너진 숲 가장자리에서
전혀 다른 형태의 캥거루를 발견했다.
더 작고, 더 날렵하며,
무엇보다도 인간의 눈을 피하는 법을 익힌 존재.
그들은 이제 무리지어 다니지 않았다.
대신, 어둠 속에서 조용히 이동하며 인간을 관찰했다.
그들은 변했고, 살아남았다.
더 이상 인간과 공존할 생각이 없는 새로운 종(種)으로.
캥거루 대학살이 만들어낸 최악의 결과였다.
이제 인간은,
자신들이 창조한 존재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