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처럼 화려한 결말은 없었다. 퇴직일을 정하고, 인수인계를 하며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마지막 날에도 평소처럼 퇴근을 하고, 문을 닫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 소리가 이상하게 또렷했다.
“덜컥.”
그 순간 실감이 났다. 끝났구나. 15년을 다닌 회사의 마지막이 이렇게 담백하게 찾아올 줄이야.
커피 내리는 소리, 회의실의 에어컨 바람, 점심시간의 웃음…
익숙했던 풍경들이 이제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었다.
퇴사한 바로 그날, 나는 미용실로 향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
“히피펌 해주세요.”
자유롭고 싶었다. 변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회사에 다닐 때 나는 늘 단정하고자 했다. 튀지 않으려는 머리, 반듯한 옷, 굽 5센티 구두.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전부 내가 스스로 만든 규율이었다.
특히 구두. 나는 운동화를 절대 신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들과 서 있을 때 괜히 낮아 보이는 게 싫었다.
굽 몇 센티 차이에 불안을 느끼던 나였다.
그래서 히피펌은 단순한 머리 모양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의 태도를 바꾼 작은 선언이었다.
“이제, 달라져도 된다.”
운동화를 신어도 되고, 머리가 헝클어져도 괜찮다. 단정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그 작은 자유가 나를 회복시킨 듯 했다.
보상이라도 받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퇴사 후 달라지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려 노력 했다.
아침 운동, 아이를 깨우는 일상, 공복 올리브유 한 숟가락, 커뮤니티 요가.
내 에너지를 회사가 아닌 나와 가족에게 쓰기 시작했다.
그 사소한 변화들이 모여 새로운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가끔은 문득 이런 질문이 올라온다.
나는 규율 안에서 길러진 사람이었을까?
정말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었을까?
구두 굽 몇 센티에 흔들리던 마음도, 머리를 헝클어뜨린 채 웃고 있는 지금도 모두 ‘나’다.
그래서 아직은 헷갈린다.
자유 속에서도 불안이 찾아오고, 규율 속에서도 안도가 있음을 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이제는 회사가 아닌 내가 정한 질문에 답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오늘,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았니?”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질문 앞에서 서성인다.
때로는 불안하게, 그러나 조금씩 나답게.
<퇴사한 그 날. 이 사진을 들고 미용에 갔다. "히피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