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었어.
처음엔 내가 좋아서 시작했다.
“될까…? 저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이 감히 다가설 수 없는 산 같아.”
그런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온 힘을 다해 대쉬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시작된 관계.
그가 내 옆에 있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했다.
누구 앞에서도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존재라 생각했고, 그래서 더 깊이 빠져들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도 나를 좋아한다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딱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그의 배려는 “나는 배려하는 사람이야”라는 것을 보이기 위한 제스처였고,
그의 미래는 보여주되, 내 손에 쥐여주진 않았다.
긴 시간동안 나의 삶은 변했고, 환경도 변했는데
그는 변하지 않았다.
투정부리고 짜증낸 적은 많았지만,
“헤어져야겠다”라는 말은 단 한 번도 꺼낸 적 없었다.
왜냐면, ‘인생에 세 번 온다는 운명’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걸 놓치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짜증은 더 많아지고, 스트레스는 점점 깊어졌다.
결국 나는 처음으로 말했다.
“헤어지자.”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으니까.
내가 잘해준 만큼 아쉬워했지만, 결국 우린 헤어졌다.
그는 매너 있게 나를 보내줬고,
나는 직감했다.
곧 나를 잊겠지,
곧 다른 사람을 만나겠지,
곧 내 자리는 흔적도 없이 지워지겠지.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 피어오르는 생각.
혹시, 세 달쯤 뒤 다시 돌아와 달라고 한다면...
나는 그 손을 또 잡아야 할까?
퇴사한 날, 나는 머리를 했다.
히피펌을 한 채 거울을 보며, “이제 달라져야지” 다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남편과 함께 도쿄행 비행기 안에 올랐다.
평일 아침,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나, 이제 자유예요! 오갱끼데스까~!”
잠시 후련했지만, 곧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뭔 짓을 한 거지? 잘한 걸까?”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이 생각은 곧 확신이 되었다.
‘나, 큰 사고를 친 거구나.’
그 순간부터 여행이 여행 같지 않았다.
도쿄의 번화가도, 맛있는 음식들도 모두 무색, 무취처럼 느껴졌다.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 공허함이, 나를 깊게 파고들었다.
이건, 내가 생각한 퇴사 후 감정이 아니었다.
이건, 너무 빨리 온 '현타'였다.
어쩌면 나는 너무 오랫동안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른다.
15년을 함께한
남자친구와
헤어진 기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