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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이 끊기자, 나는 무가치한 사람 같았다

by 그러려니

퇴사 후 한 달,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월급이 단순한 돈이 아니라 내 존재를 증명하는 무언가였다는 걸.
나는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15년 동안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왔다.
그 월급은 곧 나의 삶의 리듬이었고 내 사회적 위치였으며 내 스스로의 자존감이었다.
그런데 퇴사와 동시에 그 리듬이 끊기자 삶 전체가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입금 문자가 오지 않는 통장은 내 가치를 증명해주지 않았다.


남편은 한 번도 나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한 적이 없었다.
압박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혼자 불안해했다.
돈이 없다는 건 곧 내가 가족에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뜻 같았다.
‘나는 무능력하다’라는 낙인이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찍혔다.


스무 살 이후 나는 늘 돈을 벌며 살아왔다.
대학 등록금은 아르바이트로 해결했고, 낮에는 사회복지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했다.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을 이어갔고 졸업하기도 전에 교수님의 추천으로 사회에 나갔다.
내 월급은 집안 빚을 갚는 데 쓰였고 나는 늘 용돈을 받으며 살았다.
엄마가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짊어진 삶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기간을 제외하면 늘 일을 했다.
돈 관리는 수에 더 밝은 남편이 맡았고, 나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씩 용돈을 받으며 살았다.
그 돈은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래서일까.
월급이 끊기자 나는 존재감마저 잃은 기분이 들었다.
무엇을 하면서 예전 월급을 벌 수 있을까?
돈을 벌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걸까?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때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끼면 되잖아.”

단순한 말이었지만 그 안에 큰 깨달음이 있었다.

돈을 반드시 내가 의무적으로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것.
내가 돈의 무게를 홀로 짊어질 필요는 없다는 것.
그 순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돌아보면 나는 사회생활도 일도 오직 돈을 벌기 위해 해왔다.

하라는 대로 하고 정해진 길을 따라 걸으며 매달 월급으로 나를 증명했다.

이제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보고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남이 나에게 만들어 놓은 정체감. 그게 맞는지 따져보려고 한다.


꼼꼼하지 못한 사람. 싫은 소리 못하는 사람, 끝맺음 못하는 사람.


내가 주도하는 인생.

이제야 비로소 나 자신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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