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가 만져버린 인천공항의 풍경

서로를 위해 참아내는 눈물

by 채플힐달봉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양가 부모님들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나와 두 아이들이다. 남편은 포스트닥터 신분으로 연구실에 매일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나보다 한 달 늦게 한국으로 올 계획이었다.

우리의 첫 한국 방문이었다. 이후, 서로를 향한 ‘안쓰러움‘은 인천공항에서 느껴지는 다른 모든 감정들의 기본값이 되었다.

공항의 풍경은, 마치 ‘인사이드아웃’ 애니메이션 속 ‘슬픔이’가 만진 코어 메모리처럼 푸른빛을 띤다.

나는 나의 엄마의, 눈물로 일렁이는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눈물을 참느라 일그러지는 엄마의 붉어진 눈과 마주치는 순간 나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장애가 있는 아기를 안고 입국장에 들어서는 딸의 모습은 엄마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아이를 낳고 내가 ’ 엄마’가 되어보니 자식의 고통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다.

나는 그 모든 고난의 길을 기꺼이 걸을 수 있지만 내 아이는 절대 안 된다고, 혹 내 아이가 그 가시밭길 기어이 걸어야 한다면 내가 아이를 들쳐 안고 그 길을 대신 걷겠노라고.

내 살을 찢고 태어난 그 아이가, 내 모든 기력을 소진시키는 그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게 만드는 강한 동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아. 행여 부서질까 손목 한번 꽉 잡지 못하는 그 귀한 자녀를.

예수님을, 하나님은 어떻게 고통의 십자가에 내어주셨나. 십자가의 고통보다 더 깊게 베었을 하나님의 마음, 그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을 이제는 안다.

나를 보는 엄마의 눈은 나의 고통보다 더 처절하고 아프게 젖어있다. 나는 그 마음을 알기에 되도록이면 엄마 앞에서 울지 않으려 애쓴다.

내가 울면, 엄마는 오랫동안 눈물 젖은 딸의 얼굴이 잔상으로 남아 가슴 치며 더 크게 울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의 젖은 눈을 보지 않으려 연신 눈을 깜빡여 차오르는 눈물을 말리면서 실없는 농담을 건네곤 했다.

우리는 공항에서 짧은, 눈물을 머금은 포옹을 나눈 뒤 근처 식당으로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우리 가족은 1년 사이, 아이의 내반족을 보았을 때 보였던 반응-부정과 비난과 모든 의심-으로부터 완전히 치유되었으며 서로를 할퀴었던 미성숙함을 눈물로 반성하고 화해를 이루었다.

다시 한번 불어온 지금의 ‘진짜‘ 위기 앞에서 우리는 처음의 불일 듯 치솟던 감정에서 벗어나 되레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내반족은 눈에 보이는, 교정이 가능한 장애였기 때문에 보란 듯이 큰 소리를 냈는지도 모른다.

겁 많은 강아지가 실제로는 전혀 위협적인 상황이 아닌데도 유난스럽고도 시끄럽게 짖어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정작 진짜 공포를 만나면 꼬리를 다리 사이에 내리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만다.

그와 같이 우리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의 가능성 앞에서 모두가 침묵했다. 어깨를 감싸안는 격려, 괜찮을 거라는 희망, 간절한 기도로 양가 모든 가족들이 하나로 묶였다.


연대 세브란스 병원 소아신경과는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예약을 하고서도 대기만 몇 시간이 걸렸다.

아직 돌도 되지 않은 아기의 팔에 바늘이 꽂히고 전신 마취 후 MRI를 진행했다. 입술이 하얗게 변해 축 늘어진 아기를 MRI 원통 속에 넣어놓고 돌아서면서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원인을 찾으려면 온갖 검사란 검사는 모두 받아봐야 했다. 소변 스티커로 찔끔찔끔 받아낸 소변을 냉동실에 조금씩 얼리면서 분량을 채우기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

담당 의사는 소변검사를 굳이 춘천에 있는 성심병원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더 정확한 검사결과를 위해서라니 환자로서는 달리 항의할 수가 없었다.

아이스 포장을 해서 퀵으로 배송하란다. 기껏 정성 들여 얼린 소변통을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이 영 미덥잖아서 얼음으로 꽁꽁 포장한 후 아이스박스를 안고 직접 춘천으로 배송을 갔다.

이쯤 수고로움이야 얼마든지 감당할 만한 것이었다.

한 달이 넘는 검사 과정에서 우리는 의사와 고작 두 번, 그것도 5분이 채 넘지 않는 외래 진료를 받았다.

나중에 의사로 일하는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니 한국의 대학병원은 ‘외래 진료 시간이 3분을 넘으면 적자가 발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하다고 알려주었다.

환자가 내는 진료비의 대부분은 국가가 정한 ‘수가’에 따라 책정되는데, 이 금액이 실제 병원이 지출하는 인건비·운영비·시설비를 충분히 보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의사들은 3분 법칙을 깨지 않으려 서두른다.

그들의 서두름과 냉대, 병원을 오가는 우리의 수고로움과 그 모든 기다림도 다 참아낼 수 있었다.

그가 오진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첫 생일을 맞은 화음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