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의 결정적 한마디
에이미를 만난 것은 우리 가족에게 더없는 행운이었다.
우리가 정착하기 시작했던 10년 전만 해도 이곳은 한인 사회가 크지 않았고, 내 주변 한인의 절반이 연구년으로 단기 방문하는 소위 ‘비지팅‘들이었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사이, 미국 내에서도 집값이 안정적이고 자연재해가 적은, 게다가 꽤 이름 있는 대학 세 곳이 붙어있다는 이유로 타주에서 많이들 이주해 왔다.
지금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병원들도 곳곳에 생겼고 H마트도 들어왔지만 10년 전만 해도 한국인 의사를 찾는다는 것은, 굳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정도로 흔치 않은 일이었다.
화음이의 내반족으로 자주 병원을 드나들던 중 만나게 된 우리의 첫 주치의는 타민족의 혈통이라고는 단 1%도 섞이지 않은 것 같은 금발머리의 백인이었다.
그녀와 통역사를 사이에 두고 더듬더듬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녀도 나도 안타깝고 머쓱한 답답함을 느껴야만 했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려는 우리에게 그녀가 말했다.
“내 친구 중에 완전히 한국인인 의사가 있는데 한번 만나볼래? 그 친구의 병원은 여기서 조금 멀긴 하지만, 그래도 원한다면 내가 연결해 줄게.”
그녀는 한국인 친구를 묘사하면서 ‘Totally Korean’이라고 말했다. 당시 다니고 있던 병원도 그다지 가깝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거리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우리는 당연히, 정말 원하는 바라고 답했고 그녀는 흔쾌히 우리를 에이미가 있는 병원으로 전환해 주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에이미는, 앞선 의사가 말한 것처럼 ‘Totally Korean’은 아니었다.
그녀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Korean American이었지만 그녀의 부모덕에 한국어를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고 일상적인 인사말 정도는 말할 수 있는 정도였다.
우리에게는 그마저도 정말 가뭄에 단비와 같았다.
손짓발짓, 영어와 한국어를 마구 섞어가며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엉망진창 콩글리시를 써도 전혀 창피하지 않은, 까만 눈동자의 의사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내 편이 생긴 것만 같은 든든함을 느꼈다.
미국 병원에서 듣는 ‘안녕하세요.’라는 어눌한 인사말이 이토록 반갑고 가슴 벅찰 줄이야.
에이미는 지금까지 10년째 우리 가족의 주치의가 되어 우리와 모든 의료적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있다.
한국에서 우여곡절의 진단명을 받아 들고 미국으로 돌아와 에이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글썽이며 말했다.
“아니길 바랐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와서 정말 안타까워요. 무엇이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세요.”
미국 병원 예약 단위는 보통 정기 검진 시에 15분, 첫 검진은 30-40분, 전문의의 경우에는 40-60분 정도로 잡힌다.
예약 시간이 정해져 있어도 의사는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앞 환자의 검진시간이 길어지면 뒷 환자는 자연히 밀려나 기다려야 했다.
뒷 환자가 되어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할 때에는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어 초조하게 배정된 진료실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복도를 기웃거리게 되지만,
시간을 넉넉히 들여 의사의 꼼꼼한 케어를 받게 되는 앞 환자의 입장이 될 때에는 그만큼 안심이 되는 것도 없었다.
우리는 실제로 앞 환자의 진료시간이 길어져 1시간 반까지 기다린 적이 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물어보라 ‘는 에이미의 말에 우리 또한 1시간 반동안 그녀를 붙들어 놓았으니, 이전에 기다린 1시간 반과 퉁친 셈이 된 것이다.
한국의 ‘3분 진료‘에 학을 떼고 난 직후여서인지 에이미의 살뜰한 관심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그것이 비단 의사 개인의 성격 때문에 생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더 근본적인 문제, 한국과 미국의 병원 시스템이 가진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은 전 국민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있어서 공공보건이 탄탄하고 일반 환자들의 기초 건강이 보장되는 장점이 있다.
언제든 원하는 때에 문을 열고 방문할 수 있는 동네 의원들이 즐비한다. 기본 진료비가 싸기 때문에 부담 없이 병원을 출입한다.
몇 년 전, 고질적인 허리 통증을 고치려고 한의원을 방문했을 때, 대기실에는 이른 아침부터 어르신들로 북적였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곳으로 ‘출근(?)’을 하셨다고 했다. 한의원에 들러 뜸을 뜨고 불편한 다리 허리 어깨에 침을 꼭꼭 찔러놓고 나면 친절한 간호사가 뜨거운 찜질팩을 가져다가 허리에 올려준다.
다정한 안부인사는 덤이다. 그렇게 한 차례 휴식을 취한 후 대기실에 비치된 믹스커피를 한 잔 들이키며 노닥노닥 수다를 떠는 것이 어르신들의 낙이라고 했다.
그 방문에 드는 비용은 고작 1700원이었다.
명절을 제외하고는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자식들보다 병원의 따뜻한 친절이 그들에게 훨씬 더 살가운 보살핌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 풍경에 익숙한 나는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예약 없이는 방문할 수 없는 병원이 퍽 낯설게 느껴졌다.
영어 때문에 가뜩이나 주눅 들어 쭈뼛거리는 나에게 병원 방문을 위해 넘어야 하는 단계들이 하나같이 높은 장벽들만 같았다.
감기 따위로는 문전박대당할 뿐만 아니라 뒤늦게 집으로 날아드는 진료비 청구서는 그야말로 뜨악! 수준이었다.
미국의 병원은 되도록이면 접근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런데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은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의 의료는 ‘일반‘에 강하지만 ’ 특수장애’에는 가혹할 만큼 매정하다. 그나마의 혜택도 부모가 스스로 찾아 헤매야 하고 겨우 찾아내어도 수도권에 한정된다.
국가 지원도 턱없이 부족해서 부모가 감당해야 할 의료비는 상상 그 이상이다.
반면, 미국은 정반대이다. 감기 따위는 환자 취급조차 하지 않는 배짱을 부리면서도 특수장애아동을 위한 혜택은 아낌없이 베푼다.
필요한 모든 조치, 앞으로의 계획뿐 아니라 부모를 위한 정신건강까지 체크한다.
이들에게 장애아동은 걸리적거리는 ‘소수’가 아니라 가능한 모든 수를 동원하고 어떻게든 빨리 개입함으로써 건강한 사회인으로 흡수시켜야 하는 공동의 과제,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나는 에이미와 한 시간 반에 걸친 상담을 하면서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화음이가 크는 동안, 도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돕겠습니다.”
그녀의 결연하고도 확신에 찬 그 말에, 우리는 낯설기만 했던 이 미국 땅이 처음으로 따뜻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