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래더윌리와 엔젤만의 미묘한 차이

오진보다 더 아팠던 그의 태도

by 채플힐달봉

우리를 담당한 의사는 그의 분야에서 이미 명성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를 인터뷰 한 기사에는, 환자들을 향한 그의 집요한 헌신과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칭송하는 말들로 가득했다.

그를 우리에게 추천해 주셨던 의사 선생님도 ’ 환자를 정말 잘 본다’며 적극적으로 그분을 만나보라 권하셨다.

한 달 동안 이어진 많은 검사들을 거쳐 드디어 그의 진단을 받게 된 날, 병원 수유실에서 몇몇 엄마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거제도에서, 전주에서 새벽부터 서둘러 병원으로 왔다고 했다.

세 달에 한번 꼴로 그를 만나러 서울로 오는데 자신들은 운이 좋아 그분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며 예약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했다.

아픈 아기를 품에 안고 새벽 찬 바람에 행여 감기라도 들까 말간 아기 얼굴을 연신 살펴보며, 열차에 몸을 실었을 것이다.

낯선 대도시의 분주한 아침을 겨우겨우 견디어 병원에 도착했을 그들이었다.

그간 관찰했던 아기의 사소한 변화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불쑥불쑥 떠오르는 질문들을 쏟아낼 준비를 하는 그들, 그런 그들에게도 의사와의 면담시간은 고작 5분이다.

수유실에 모인 우리는, 엄마의 품에서라면 장애 따위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평안한 얼굴로 새근거리는 아가들을 안고 젖을 물리며,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프래더-윌리 증후군(Prader–Willi syndrome, PWS)이라고, 염색체 이상으로 생긴 유전자질환이야.”

의사는 우리에게 내내 반말을 사용했는데 의사와 환자 사이의 친밀감을 위한 그의 장치라면 충분히 수용할만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와 나 사이의 나이 차이를 고려한다면 반말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한국 어른으로서의 반응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 프래더윌리 증후군‘이라는 말은, 어린 시절 눈물 흘리며 보았던 범고래와 소년의 우정을 그린 영화 ‘프리윌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 영화의 포스터에는 범고래 윌리가, 소년이 힘 있게 들어 올린 오른팔 신호에 맞춰 바다를 향해 뛰어오르는 장면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 자연스러운 연상작용은, ’ 프래더윌리 증후군’이 범고래 윌리처럼 모든 난관을 뚫고 자유를 향해 점프할 수 있는, 극복 가능한 것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Free Willy, 1993년 작

”치료가 가능한 건가요?”

치료의 가능성 유무는 모든 부모들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아니겠는가.

“치료 불가하지. 유전자 변형이라니까...”

치료가 불가하다는 말 뒤로 프래더윌리 증후군에 따라오는 증상들을 주욱 열거해 주었는데 나는 그의 다음 말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치료가 불가하다는 말에 울음이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울고 있는 나를 보며 그는 짧은 한숨을 푹 뱉어냈다.

하루에 그를 거쳐가는 환자들이 많게는 수 십 명일 터였다. 그들 중 나처럼 울음이 터져버리는, 심정 약한 환자 혹은 환자의 보호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가 느끼는 매너리즘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되어 그의 기본 태도로 굳어졌을 것이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너 같은 사람 많아. 이거, 다음 카페 주소니까 한번 들어가 봐. “

노란색 포스트잇에 휘갈겨 쓴 다음 카페 주소를 받아 들고 등 떠밀려 쫓겨나다시피 진료실 문을 나왔다.

간호사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등 뒤에서 이내 다음 환자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아기와 함께 나를 기다리던 친정 부모님이, 멍하니 서 있는 내 모습을 보자 벌떡 일어나 걱정스러운 눈으로 다가왔다.

엄마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미 눈치를 채고는 일렁이는 눈이 되어 나를 안아주었다.

그런 엄마의 품도 다 자란 딸에게는 평안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평안이기보다 이제는 나를 더욱 무너뜨리는 슬픔의 무게로 다가온다.

나는 와르르 무너져 병원 복도에 서서 어어억 하고 울었다.


나보다 뒤늦게 한국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미국 병원에서 6주 걸린다고 했던 화음이의 피검사 결과가 이메일로 도착했다.

결과에 따르면 화음이는 ‘엔젤만 증후군(Angelman Syndrome)‘이었다.

남편과 함께 다시 세브란스 병원을 찾았다. ‘프래더윌리 증후군‘으로 진단했던 의사에게 그렇게 진단한 근거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조금 짜증스럽게 “검사 결과에 따른 의사적 소견”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미국 병원에서 받은 피검사 결과에 대해 전하면서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그제야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처음으로 우리에게 존댓말을 썼다.

“그럼, 검사를 다시 진행해 봅시다.”

지금까지 핏줄도 보이지 않는 여린 팔에 얼마나 많은 바늘들을 꽂았는데 그걸 다시 하자니! 검사 비용만 300만원을 지불한 후였다.

우리는 한사코 그럴 수는 없다, 검사는 이미 다 했으니 그것을 보고 진단만 다시 해달라, 요청했다.

“그럼, 피검사만 다시 해 봅시다.”

우리는 마지못해 아기의 팔에 다시 주삿바늘을 꽂아 4통의 채혈보틀을 채웠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출국 날짜가 다가왔다.

병원에서는, 검사 결과가 나왔더라도 외래 진료 예약을 반드시 해야만 결과를 알려줄 수 있다고 했다.

예약이 가능한 날짜는 우리의 출국일 이후였다. 우리의 사정이 이러이러하니 결과를 알려달라, 아무리 사정을 해도 원칙상 그럴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는 병원 수납창구에 찾아가 예약된 날짜의 진료비를 미리 계산하고 사정을 다시 설명했다.

“이미 나온 결과인데, 제발 알려달라.” 그들은 그제야 의사와 상의 후 전화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결국, 출국일 공항에서 병원의 전화를 받았다.

‘엔젤만 증후군‘이었다.



제목 이미지 출처 : https://www.osmosis.org/learn/Angelman_synd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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