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꽃밭, 나의 첫 정원 인상

천상의 화원처럼 12달 꽃을 피워주시던 Gardener , 나의 아버지

가끔씩 누군가 묻는다

"어디에서 정원, 꽃 밭에 대한 애정을 키웠는지,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그러면 내겐 코끝을 찡하게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먼저 다가온다. 나는 어린 시절, 꽃밭에 파묻혀 살았다 심지어 겨울이면, 방 아래목에

바나나 나무가 들어와 살고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집 주변에 꽃 들이 피고 지고 또 피었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딱 2가지 모습만 기억난다. 낮잠 주무시는 아버지와 꽃밭에 앉아 있는 아버지.

저 위 그림의 평상에 앉은 이는 나의 아버지이다. 마고자나 조끼 혹은 저고리를 입고 계신 모습 아버지 직업은 농사인데 아버지가 밭일, 논일하는 모습은 본 기억이 없다.


1910년생, 48세에 외동딸을 얻으신 아버지를 내가 처음 기억하는 것이 할아버지 때가 되어서 이기도 하지만,권 씨 집성촌인 우리 마을에서는 나이 50이 넘는 사람이 논 밭에 들어가는 일 없이, 젊은 오빠들의 품앗이로 일이 이루어져서 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그때도 조선 시대에 사람 같아 보였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가려하니,"언문 깨쳤으니 그만 집에 있어" 라 하시고, 교회 나갔더니 " 천 주 악 " 한다고 못 가게 하시고 , 인천 시내로 고등 학교를 갔더니 뱃 사람들 학교에서 계집에 다 망친다고 성화하시며 ,학교 못 가게 돈은 안 주시면서 족보상자 다 보이는데 돈을 감추고 엄마는 몰래 차비와 책값을 주고 수시로 집안 행사에 오시는 친척들의 용돈으로 간신히 학교 다니는 비용을 충당하게 했다.


그렇게 초등학교 이후 아버지 반대에 맞선 전쟁을 치르느라, 잘 몰랐다. 아버지가 가꿔주신 꽃밭의 의미를

그리고, 아버지를 기억하면 늘 견고한 옆모습과 대청마루 혹은 평상에서 낮잠을 자거나-(아마도 중학교 이후의 기억이라, 방학 때만 본듯하다) 마당의 꽃을 가꾸는 모습만 기억에 떠오른다.


그리고 내 나이 24,

갑자기 쓰러지시고 하룻밤 사이에 돌아가신 후 한없이 후회했다 아버지와 화해도 하지 못한 채 보내드린걸,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정원디자이너이자, 작가로 살고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정원작가가 된 계기가 무언가를 묻는 처음의 질문에 답을 찾다가, 내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기억해 내기 시작했다. 기억속 아버지의 모습과 그 집 그 꽃밭.


스무 살까지 살았던 그 집에 가득 피었던 그 꽃과 특이한 바나나 나무 아버지의 꽃밭!

가드너, 아버지의 기억 4.jpg 20살까지 나를 가꿔준 아버지의 꽃 밭

내 어린 시절 집 둘레는 뺑뺑 돌아가며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가득 피어났다. 매화, 진달래, 복숭아, 앵두, 달리아, 장다리, 황매, 백일홍, 원추리, 백일홍, 맨드라미 그리고 꽃밭 한가운데의 그 바나나 나무와 오른쪽 끝자락의 운용 향나무 .


어느 곳이나 있을 것 같던 뒷동산과 집옆 텃밭, 그리고 참죽나무 개나리 울타리였지만 그냥 조금 있는 게

아니었다. 시선을 돌리면 다 꽃이 가득 눈에 들어 왔다.


이른 아침 햇살과 함께 안방 동창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던 해 묵은 진달래 그리고 마루 바람창을 열면 뒤편 굴뚝 뒤로 피던 현란한 홍매와 앵두.다른 집들은 감나무와 대추 과일나무가 많았는데 우리 집은 그 흔한 감나무는 없고 과일나무는 꽃이 예쁜 매화, 앵두, 복숭아, 살구들이 둘러 피고 지었다.열매를 먹은 기억은 거의 없고 그 열매로 담근 술만 기억나는 걸 보면 아버지는 "꽃보고 술마시고"같은 꿈을 꾸셨나보다.


그리고 안마당에서 마당으로 향한 쪽 문을 열면 마루에 앉아 탁 바라보는 곳에 바나나 나무가 마당가의

꽃밭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그 옆에 옥잠화, 달리아, 백일홍이 피고지고, 뒤편으로 장다리 노란 꽃이 피고

앞쪽으론 이름도 모를 분홍 보라 하얀 꽃들이 피고지며 이른 봄부터 늦가을 까지 색과 향기를 피워 주었다.

가드너, 아버지의 기억 5.jpg

특히 내방으로 쓰던 사랑방 창을 열면 저 호수처럼 물을 담은 논벌판 뒤, 동그마한 산자락에 솟아올라 논바닥 물위로 긴 그림자로 덮던 포프라 세그루. 마을 입구 미끈한 적송이 무리진 노송지대를 배경으로 그 여린 분홍의 복숭아꽃을 피워 주셨다.

복숭아꽃이 필 때 저 논벌판은 호수 같았고,그 호수 끝에 곧게 하늘로 뻗어 나무와 소나무 숲을 보는 듯 했다.

아버지의 기억 1.jpg

그리고 마을 입구의 노송과, 논 건너 초등학교 뒷산의 소나무 숲, 이런 것들을 배경 삼아 저 작은 도토리

나무 한그루 심어 놓으시고, 그 아래 평상에서 아버진 맨날 낮잠을 주무셨다.


난 방학 동안에 내내 저런 풍경을 보았는데 아마도 아버진 새벽 물고를 보 신 후 그때가 한 숨 쉬실 때였나 보다.


하지만, 봄가을 해 질 녘엔 저렇게 그 평상에 우두커니 앉아 그 벌판을 바라보며 계시곤 했다.

<어떤 화려한 풍경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저 풍경>"길게 포프라 그림자를 눕히는 논과 산 능선으로 퍼져

가는 노을 빛, 그리고 아버지의 등" <노송과, 물에 잠긴 논 위의 푸른 벼, 그 너머의 긴 포프라>


그림을 좀 더 잘 그리면, 좋겠다. 정원배치도로 배운 실력으론 그 맛도 느낌도 못 살리고 있다. 나의 정원에 대한, 꽃 밭에 대한 애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무뚝뚝한 조선시대 아버지 하나뿐인 딸에게조차 여자라고 엄했던 사람. 하지만 제일 좋은 것을 주고 싶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천국 같은 꽃 밭을 가꿔 주시고 귀한 바나나 나무를 심어 동네 손님이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었던 분 마을에 사진기만 들어오면 들고 와

바나나 나무아래서 사진을 찍게 하시던 그 시절 그런 분.


그 아버지의 대화 방식은 그러했다. 이쁜 꽃으로 보여주고, 귀한 나무로 나눠주고 그리고 지금 나 또한 한참 재미나게 잘 나가던 나이에 잘하던 일을 뒤로하고 정원디자이너로 플랜팅 디자이너로, 정원학교 선생으로 직업을 갈아탔다.

그리고 이제 그 일을 한 지 15년 꽃을 배운 지 25년이 되었다. 이 바닥에선 아직 경험이 짧지만, 그전에 한 예술창조경영 컨설팅 덕분에 바로 정원에 플랜팅에 비주얼 아트의 시각과, 영화의 무대 같은 ,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정원 인문학을, 정원예술을 접목해 열심히 연구하고 창작과 위탁 디자인을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일을 할 때마다 책상 앞에 아버지를 소환해 모시고 새 일을 시작한다. 그렇게 넌지시 내 생활에 밀어 넣어 주시고, 나를 그 꽃으로 둘러쌓아 키우셨던 그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 사랑으로 나도 그 공간에 들어올 사람에게 그 사랑을 흘릴 수 있도록..

:

무지 보고 싶어요 아버지...!그리고 살아계신 동안 못해서 많이 후회했던 말 들어주세요

:

:

" 보고싶어요!!!"할수 있다면 그시절로 돌아가 화해하고 싶어요. 마지막 전달 그말 하려고 안방문을 열었다

그만 단단한 아버지 모습에 다시 문을 닫고 더이상 말할 기회가 사라진 그말


"저도 아버지 좋아해요!!."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