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으로 연애 걸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창원에서 보험 하는 친구가 손목시계를 보내왔다. 입사 10주년을 자축하고자 자비를 들여 만든 이른바 '고객 사은 기념품'이었다. 세상 무뚝뚝하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모습 같지 않게, 남에게 퍼주고 선심 쓰기 좋아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친구 이름은 '말식'이다. 친구 아버지가 아들만 내리 셋을 낳게 되자, 이제 아들은 그만 있어도 되겠다 싶어 붙인 이름, 끝 말(末) 심을 심을 식(植). 말식이다. 그랬더니 다음번에 정말 딸을 보았다. 바라는 대로 태어난 여동생 이름은 '말순'. 딸이건 아들이건 이제 그만 낳고 싶어 지은 이름이었다. 말순이는 진짜로 고명딸이 되었다. 여린 배처럼 순하고 착한 여동생이었다.
고등학교 때 우리 동네에서 읍내까지 통학하는 학생은 말식이뿐이었다. 열 명 가까운 동갑내기 친구들이 하나 둘 고향을 떠났기 때문이다. 누구는 멀리 이사를 가고, 누구는 도시에 있는 학교로 전학 갔다. 또 어떤 친구들은 공장에 가서 돈 벌어오겠다며 고향을 떠났다. 동네 친구들은 그렇게 뿔뿔이 흩어지고,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동네에 고등학생은 달랑 말식이뿐이었다.
나도 집을 떠나 인근 도시에서 자취 생활을 했다. 내가 고향집에 오는 날이면, 늘 외롭던 말식이가 귀신같이 알고 우리 집 대문을 들어섰다. 우리는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강 언덕으로 가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어둑한 밤길을 걸어서 이웃 동네 여고생 집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그러나 피 끓는 청춘한테 시골은 늘 무료하고 맥 빠지는 곳이었다.
"우리, 수박 서리 가자!"
찌는 듯 더운 여름날, 강 언덕에서 말식이가 불현듯 말했다. 수박 서리? 의외였다. 키 크고 싱겁기는 하지만 올곧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 대뜸 남의 밭에 수박 훔치러 가자는 것이다. 무더운 날씨에 답답했던 우리는 뭔가 짜릿한 것이 필요했다. 자리를 털고 벌떡 일어서며 내가 대답했다.
"좋다. 가자!"
동네를 빠져나와 개구리 소리가 들려오는 들판을 걸었다. 밤하늘 구름 뒤에 숨은 초승달이 날캄하게 눈을 뜨고 우리를 지켜보았다. 말식이는 서리할 수박밭을 미리 봐 둔 것처럼 씩씩하게 앞장을 섰다. 정말 그랬다. 그 수박밭에는 손만 살짝 대도 쫙 벌어질 것 같은 커다란 수박들이 그야말로 넝쿨째 뒹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주인이 달려와 금방이라도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거나 한 덩이 따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친구 말식이는 허리를 꽂꽂하게 펴고 거침없이 수박밭을 누비고 다녔다. 심지어 수박 장사처럼 요놈이 잘 익었나 안 익었나 통통 두드려 보기까지 했다. 녀석이 그렇게 강심장일 줄 미처 몰랐다. 확실히 양반집 혈통은 서리할 때도 뭔가 달랐다.
말식이는 내게 커다란 수박 한 통을 넘겨주었다. 제법 묵직했다.
"됐다. 됐어. 얼른 가자."
나는 오금이 저려 재촉했다. 그러나 녀석은 들은 척 만 척, 계속 잘 익은 수박을 선별하고 다니더니 양팔에 하나씩 수박을 끼고 보란 듯이 내 쪽으로 나왔다. 나는 녀석의 무지막지한 식탐과 배짱에 혀를 내둘렀다. 우리 동네 어른들은 이런 아이를 일러 '간이 멍석만한 놈.'이라고 했다.
그래도 뭐 나쁘지는 않았다. 커다란 수박을 품에 안고 안전지대로 복귀하는 순간, 콧구멍이 확 뚫리는 해방감. 온몸을 휘감는 성취감! 그 기분은 야밤에 서리를 해본 사람만 알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수박을 농구공 삼아 슛 연습할 것도 아닌데 왜 세 통씩이나 필요한가 싶었다.
"아무래도 세 통은 너무 많다. 두 통은 도로 갖다 놓자."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말식이가 말했다.
"그럼 재먼당 가시나한테 갖다 주까?"
재먼당 가시나? 아하! 나는 비로소 녀석의 수작을 눈치챘다. 우리 동네 초입, 완행버스가 서는 재먼당(언덕 길 꼭대기)에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원래 가게 주인이 이사를 가고, 부산에서 이사 온 사람이 가게를 넘겨받아 장사를 하고 있었다. '재먼당 가시나'는 그 가겟집 딸이었다. 말식이는 도시에서 온 그녀에게 홀딱 빠져 버린 것이다. 키가 크고 한껏 세련되어 보이는 그 소녀는 우리와 동갑이었다.
녀석은 애초부터 그녀 몫을 계산에 넣고 수박 서리를 했다.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는 수작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쯤 되면 벌써 '소녀에게…'로 시작하는 연서를 몇 번 보냈을 터이다. 나는 불알친구의 애틋한 순정을 차마 뿌리치지 못해, 수박을 농구공처럼 끼고 의기양양 걷는 녀석 뒤를 털레털레 따라갔다.
재먼당 가게는 벌써 문을 닫고, 집 안쪽으로 돌아들어가는 입구에 백열등만 환히 켜져 있었다. 나는 대문 밖에 멀찍이 떨어져 녀석을 지켜보았다. 친구는 깨금발로 살금살금 작은 방 쪽으로 가더니 끈이 달린 여닫이 문을 '톡톡' 치며 신호를 보냈고 이내 방문이 삐끔 열렸다. 그리고 둘 사이에 무슨 말이 잠깐 오가는가 싶더니 수박 두 통이 그녀의 방으로 쏙 들어갔다.
전리품을 상납하고 돌아오는 순정파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넘쳐흘렀다. '눈꼴시럽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이번에는 내가 앞장서서 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풀밭에 앉아서 짝사랑에 눈먼 친구와 함께 남은 수박 한 통을 반으로 쪼갰다. 녀석은 안 먹어도 배부른 듯 흡족했지만 나는 괜히 심통이 나서 마지막 한 조각까지 우걱우걱 다 먹어 치웠다. 그리고 어둑신한 강물을 향해 수박 껍데기를 휙휙 던졌다. 제기랄! 초승달은 또 왜 그렇게 밝은지 모를 일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사랑에 눈먼 자를 위해 연애편지 한 통을 대필해 주었다. 간이 멍석 만한 내 친구는 그 대가로, 그날 밤 서리를 했던 수박 밭주인이 다름 아닌 자기 큰형이라고 고백했다. 하나뿐인 친구를 능멸한 죄를 물어 녀석의 등짝을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참았다. 왜냐하면 그즈음 친구의 애간장을 태우던 소녀는 소리 소문 없이 부산으로 돌아가버렸고, 졸지에 꽁지 떨어진 매 신세가 된 친구는 풀이 픽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내 친구 말식이는 지역에서 잘 나가는 지점장으로 활약 중이다. 게다가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에서 수 년째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그의 선행을 신문지상에서 보고 알았다. 어느 날, 둘이 만난 자리에서 내가 물었다.
"어이구, 용타. 어쩌다 그렇게 오랫동안 남들에게 베푸는 천사가 되었냐?"
"어릴 적에 엄마 심부름으로 옆집에 음식 갖다 주는 기분 있지? 어른이 돼서도 그때 기분이 좋아서."
나는 단박에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야시시한 초승달 뜬 여름밤, 잘 익은 수박에 순정을 담아 고이 바친 시골 머슴아의 그 순수함. 확실히 모르지만 음식 심부름과 수박 서리와 봉사 활동은 무언가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오랜 내 친구이기는 하지만 그 마음 씀씀이가 하도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다 큰 친구한테 그럴 수는 없고 내심 궁금했던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런데 그날 밤 난데없이 굴러 들어온 수박 두 통을 두고 재먼당 가시나는 뭔 생각을 했을까. 만약 네가 한 통만 방에 들였다면 나름 멋있지 않았겠나?"
뜬금없이 질문에 말식이는 눈을 끔벅거리다가 말했다.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치아라.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