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놈

당나귀 선생 귀를 접다

by 최형식

1994년 유월 어느 날 우리는 읍내에서 ‘가훈 자랑 대회’를 마치고, 식당에 앉아 갈비탕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 안에는 우리처럼 입상하지 못한 학생들과 인솔 교사가 패배자처럼 모여 있었다. 그때 식당 내실 안쪽에서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심사가 말이야. 개판 오 분 전이야!”

아까부터 울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던 중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는 주위 사람에게 들어라는 듯 심사 위원 자질과 대회 운영을 비판했다. 그러나 아무도 동조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그가 지도한 학생은 공감을 얻기에는 좀 부족했다. 그에 비하면 내가 데리고 출전한 한나는 정말 억울했다.


사실 그때 우리 학교에는 배충진이라는 걸출한 어린이 연사가 있었다. 인물이 달덩이같이 훤하고 두뇌가 명석할 뿐 아니라. 웅변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어서 대회에 나갔다 하면 최우수상은 언제나 따 놓은 당상이었다. 학교장은 이번에도 충진이가 출전하여 학교의 명예를 드높여 줄 것으로 기대했다. 나는 반대했다. 대신 한나를 키워 출전하겠다고 했다.


한나는 단발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전형적인 시골아이였다. 공부도 그저 그렇고 생김새도 평범하고 더구나 웅변은커녕 수업 시간에 발표 한번 시원하게 해 본 적이 없는 숙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한나를 선택한 이유는 이랬다.


첫째, 이번 대회 주제가 ‘가훈’이다. 한나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중학생 오빠와 살고 있었다. 내가 지난봄에 언덕배기 외딴집에 사는 한나 집에 가정 방문을 갔을 때, 한나가 색연필로 ‘화목’이라고 적어 벽에 붙어 놓은 글을 보았다. 한나한테 화목이 무슨 뜻인 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우리 할머니가 오래오래 사시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감동했다. 아이의 속 깊은 바람을 참된 가훈으로 널리 알리고 싶었다.


둘째, 이번 대회는 웅변대회가 아니라 발표대회이다. 한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서울에 살아서, 서울 억양이 조금 남아있었다. 이번 대회는 작은 여자아이의 차분한 서울 목소리가 더 어울린다. 필요 이상으로 꽥꽥 과장된 고함을 질러 댈 웅변보다 훨씬 설득력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원고 내용은 한나가 직접 체험한 이야기다.


내 말을 듣고 난 선생님들이 동조해주었다. 이번 대회에도 당연히 자기 아들이 출전할 것이라고 믿고 있던 배충진이 어린이의 아버지도 쾌히 양보해 주었다. 나는 신이 나서 순식간에 원고를 완성했다. 한나도 발표 내용이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실력이 늘었다. 그리고 드디어 군대 가훈 자랑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읍내 극장에 동원된 초중고 학생들이 꽉 찼다. 차례로 연단에 오른 학생 연사들이 주먹을 불끈 쥐어 외치고 눈물로 호소했다. 하지만 관에서 주도하는 행사가 대부분 그렇듯, 학생들은 교실을 벗어났다는 자유로움과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가는 뻔한 계몽적인 내용에 식상한 듯 시근둥했다.


식당에서 심사위원을 성토하던 교사가 지도한 학생도 그랬다. 중학생 연사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완전 신파조로 이야기를 발표했다. 특히 “아! 어머님의 두 눈에서 옥구슬 같은 눈물이 똑 똑 똑 떨어져 옷섶을 적시고....”라는 부분이 나올 때, 여기저기서 킥킥 웃음이 나왔다. 나이 드신 선생님이 어린 중학생 목소리를 빌어 자신의 감성을 호소하려는 티가 너무 많이 났다.


아무튼 사회자가 몇 번씩 호응과 박수를 유도했지만 대회장 분위기가 심드렁했다. 그리고 그 맥 빠진 분위기 속에 한나 차례가 되었다. 한나는 약간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단상에 올랐다. 관중들은 잠시 어린 연사에 관심을 주는가 싶더니, 금방 고개를 돌리고 저희들끼리 떠들었다.


한나는 연습한 대로 심호흡 한 번을 하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나가 살고 있는 외딴집과 꼬부랑 외할머니 그리고 착한 오빠 이야기가 동화처럼 흘러나왔다. 다른 연사들의 웅변과는 사뭇 다른 말투와 생경한 소재가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처럼 천천히 파문을 일으켰다.


한나는 힘들지만 외롭지 않은 이유와 가난하지만 행복한 까닭을 차분히 이야기했다. 어느새 장내는 숙연해지고 모든 시선이 작은 연사를 향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아 감동의 물결이 흐르는 순간을 숨 죽이고 지켜보았다.


그런데 연설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한나가 갑자기 말문을 닫았다. 모두 초조하게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데 어린 연사는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쟤, 왜 그래 왜?”

“어머, 어째 저걸 어째”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나는 마지막 부분에 말할 내용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회자가 원고를 보고 해도 된다고 손가락으로 원고 넘기는 시늉을 해 보였다. 하지만 온통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이 부담스러웠을까. 열한 살 꼬마 연사는 꾸벅 인사를 하고 곧바로 단상을 내려왔다. 게다가 한나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까지 하였다. 다행히 금방 일어나 대기석으로 돌아갔지만 모두 할 말을 잃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십 초도 안된 순식간에 일이었다.


“그때 당황하지 말고 원고를 보고 읽어도 되는데 왜 그랬냐?”

갈비탕이 나오자, 나는 비로소 한 마디하였다. 한나는 아무 말도 않고 웃었다. 녀석은 어쨌든 속이 후련한 모양이었다. 하긴 내 잘못이 크다. 잘하는 법만 지도했지, 실수를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아무튼 한나와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갈비탕에 코를 박고 주린 배를 채웠다.


그런데 아까부터 심사위원을 성토하던 중학교 교사가, 이번에는 학생 연사들 이야기를 꺼냈다. 언뜻 들어보니 한나 이야기가 들렸다. 그는 식당에 있는 많은 손님 중에 자신이 언급하고 있는 아이와 인솔교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갑자기 화살을 애먼 나에게 돌렸다.

“아까 말이야, 그 초등학생이 연설하다 말고 내려오다가 넘어질 때 말이야. 대체 인솔 선생놈은 코빼기도 안 보이데? 얼른 달려와서 아이를 안고 보건실로 가야지. 그게 선생이야? 하여튼 요즘 젊은 선생놈들도 다 틀려먹었어!”


그 순간 내 목구멍에서 갈비탕이 켁 하고 막혔다. 안 그래도 속에서 끓어오르는 억울한 마음을 겨우 다독거리고 있는데, 이 무슨 개뼈다귀 같은 망발인가 싶었다. 나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달려가 당나귀처럼 발길질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린 제자를 앞에 두고 차마 그럴 수 없어서 듣고도 못 들은 척했다. 선생님이 선생놈 되는 것 한순간이었다. 나는 갈비탕 그릇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후루룩 마셔 버렸다. 두 귀를 닫고 개울물을 건너는 당나귀처럼 담숭담숭 살아갈 뿐, 뭘 어쩌겠는가.



keyword
이전 19화날마다 보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