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실에서 꼬마들이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은 단연 이것입니다.
"선생님, 화장실 갔다와도 되요?"
그런데 어느 해부터 학교급식을 시작하고 난 후, 아이들은 질문이 하나 더해졌습니다.
"선생님, 언제 밥 먹으로 가요?"
아이들은 이제 점심 때에 따뜻한 밥과 국을 드실 수 있습니다. 모두 같이 잔칫집에 초대받은 것처럼 급식소 가는 시간을 묻고 또 묻습니다. 도시락 우열의 시대가 가고 급식 평등 세상이 온 것입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왔습니다. 2학년 꼬마들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목소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한 옥타브씩 목소리가 올라가고, 출발선에 선 조랑말들처럼 발을 동동 굴립니다. 그렇지만 급식소로 가는 긴 복도 끝에는 교장실이 있습니다. 나는 안전한 통과를 위해 사전에 예측 불허 행동 차단합니다.
"모두 머리 손!"
머리에 손을 하면 입이 조용합니다. 참 신기합니다. 머리 어디엔가에 어른이 모르는 입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왁자지껄함이 순식간에 잦아듭니다. 아이들은 병아리 나들이처럼 줄을 맞추고 급식실로 향합니다. 우리 반에서 키 제일 작은 준영이가 오늘도 제일 앞에 서 있습니다.
유난히 늦된 준영이는 개구쟁이 그 자체입니다. 체육 시간에 준비운동을 제일 하기 싫다고 합니다. 선생님 동작을 따라서 하지 않고 염소처럼 버팁니다. "왜 안 하느냐?"라고 물으면 "그냥 하기 싫어요."라고 합니다. 그냥 하기 싫다는 걸 어떡하겠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나귀를 물가에 몰고 가서 억지로 물 마시게 하는 일이라 하지 않던가요.
급식 시간 준영이는 다릅니다. 식판과 수저만 들었다 하면, 고분고분 조신해집니다. 준영이가 맨 처음 배식을 받습니다. 조리원님이 큰 주걱으로 김이 솔솔 나는 따뜻한 밥을 퍼담아 줍니다. 준영이가 꾸벅 인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아이 키가 너무 작아서 꼭 밥에 인사하는 것 같습니다. 오른쪽으로 한 걸음 옮기면 국이 나옵니다. 준영이는 까치발을 하고 식판을 높이 들어 올립니다. 조리원님이 조심조심 국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정성껏 퍼 담아 줍니다. 국을 퍼 주시는 분께도 큰소리로 인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번에 커다란 커다란 국자한테 인사하는 것 같습니다. 조리원님이 미소로 답례합니다. 그분은 날마다 큰소리로 인사하는 준영이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시 오른쪽으로 한 걸음. 이번에는 반찬을 담아 주시는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오늘은 후식으로 바나나가 나왔습니다. 가끔 과일이 나오는 날이면, 모자라는 일손을 6학년들이 돕습니다. 6학년 누나가 배식대의 맨 끝에 서서 바나나를 나누어 줍니다. 노란 바나나에 눈이 휘둥그레진 준영이가 낯선 얼굴을 올려다봅니다. 6학년도 멀뚱 눈을 맞춥니다. 우리 착한 꼬마는 고개를 갸웃하며, 망설이는 듯하더니 인사를 합니다.
"고맙습니다!"
바나나도 깍듯한 인사를 받습니다. 준영이는 진수성찬이 담긴 식판을 턱밑까지 받쳐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색시 문지방 넘듯 조심조심 식탁으로 갑니다.
농부가 쌀 한 톨을 얻기 위해 일곱 근이나 되는 땀을 흘린다고 합니다. 그 정성에 바람과 비와 햇빛을 더하여, 비로소 온전한 밥 한 그릇이 된다고 합니다. 어린 준영이가 밥심으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우리네 살림살이를 잘 배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도 배꼽 아래에 처진 식판을 가슴까지 들어 올리고 밥에게 인사를 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