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을 듣다가

순수한 또는 거침없는 그들만의 합창

by 최형식

아주 오래전, 시골 학교 지붕 위로 울려 퍼지던 아이들 합창 소리가 지금도 내 귓가에 선명하다. 그날 열어놓은 창문으로 벌이 들어왔다. 막 전교 어린이회의를 시작하던 참이었다. 시골 아이들은 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꿀벌은 환경심사 나온 교감선생님처럼 이리저리 교실을 살펴보더니 창밖으로 사라졌다.


벌이 다녀간 뒤부터 회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절차와 발표권은 온 데 간데없고 제각기 웃고 떠들고 장난치기 바빴다. 전교어린이 회장마저 의사봉을 장난감처럼 빙빙 돌리고 킥킥대며 무질서를 방관하였다. 교실 뒤편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끓어오르는 마음을 누르면서, 얼른 전교 회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 녀석들 두고 보자’


드디어 회의 마지막 순서인 '교가 제창' 차례가 되었다. 앞에 앉아있던 남자아이가 지휘봉을 흔들며 씩씩하게 걸어 나왔다. 전교 회장과 부회장은 고정이지만, 지휘는 매주 4학년부터 6학년까지 돌아가면서 하였다. 그날은 항상 코를 찔찔 흘리는 까까머리 4학년 남자아이 차례였다.


풍금 반주가 나오고 교가 제창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세상에나! 내 살아생전 4분의 4박자를 지휘를 그렇게 엉터리로 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4학년 꼬마 아이는 박자와 전혀 맞지 않는 손동작으로 허공에다가 제 마음대로 지휘봉을 휘저었다. 무작정 활기차게! 무작정 당당하게! 내 멋대로!


코흘리개의 엉터리 지휘를 망연자실했다. 게다가 그 엉터리 손동작을 전혀 개의치 않는 까까머리의 당당한 표정에 두 손을 들었다. 만약 교장 선생님이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본다면 “대체 음악 시간에 뭘 가르친 거요?”라고 따져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또 벌들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였다. 벌들도 무슨 좋은 구경 난 듯이 교실 창가를 오르락내리락하였다. 그렇게 창밖으로 눈을 두고 한숨을 쉬는데, 아이들 합창 소리가 천천히 내 귀를 열었다. 지휘는 엉망진창인데 아이들 노래는 예사롭지 않았다. 음색은 다르지만 모두 한 목소리였고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악곡의 특징을 살려 밝고 힘차게 불렀다.


세상 제일 엉터리 지휘와 제일 아름다운 합창을 함께 듣는 묘한 상황, 나는 그 신비로운 조합에 넋을 잃었다. 그리고 합창이 끝날 때쯤, 내심 지휘법을 새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4분의 4박자 지휘법은 단 5분이면 가르칠 수 있지만, 새와 꽃과 꿀벌이 함께 부르는 노래 같은 저들만의 어울림은 내가 가르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순수한 또는 거침없는 합창에 두 손을 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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