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잊고 살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쯤일까
수업이 끝났다. 아이들이 썰물처럼 교실을 빠져나갔다. 파도가 밀려가도 모래밭에 남은 조개처럼 몇몇 아이들이 교실에 남아 밀린 과제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일기를 안 써온 아이들이 가고, 그 다음으로 숙제를 안 해 온 아이들도 갔다. 마지막으로 시현이가 남았다. 시현이는 오늘 미술 시간에 완성하지 못한 수채화를 그리는 중이다.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모두 떠나자, 시현이는 이제야 속도를 좀 내려는지 채색을 시작했다. 내가 말을 걸었다.
“시현아, 몇 시쯤 되면 완성하겠냐?”
“밤 12시쯤요.”
이 와중에 농담씩이나? 내가 눈을 날캄하게 뜨고 ‘진짜로 해볼 참이냐?’는 신호를 보내자, 녀석이 씨익 웃어 보였다. 모태 지각생 시현이는 원래 학교에 제일 늦게 오고 수업이 마치면 제일 먼저 교실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집에 엄마가 없다. 시현이 엄마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수술과 재활치료를 위해 멀리 떨어진 병원에 가셨다. 벌써 몇 번째 장기간 입원을 반복 하고 있다.
시현이가 양손에 붓을 하나씩 들고 열심히 색칠을 하고 있는데, 옆 반 학생이 비닐봉지를 들고 우리 교실로 들어왔다. 아이는 원뿔 모양으로 생긴 아이스콘 하나를 꺼내 놓고 돌아갔다. 마음씨 고운 옆 반 부장선생님이 가끔 교실마다 선생님들 몫으로 돌리는 선물이다. 입은 두 개인데 콘은 하나라서 잠시 난감했다. 나는 시치미를 딱 떼고 아이스콘 아랫부분을 천천히 돌려 알록달록한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아이 관심을 끌도록 콘을 트로피처럼 높이 쳐들고 큰소리로 중얼거렸다.
“음, 엄청시리 맛있겠군!”
입을 쫙 버리고 크게 한입 베어 무는 시늉을 하자, 느림보가 실눈을 뜨고 씨익 웃는다. ‘설마 혼자 다 드시겠어요.’ 하는 표정이다. 어쩔 수 없이 손짓을 하자, 기다렸다는듯 붓을 놓고 앞으로 나왔다. 나는 손가락으로 아이스크림 가운데 부분에 선을 그어 보였다.
“요 만큼 너 먹고, 밑에 부분은 내꺼다. 선 넘으면 땅콩 백 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제자리로 들어서, 한 손에는 콘을 다른 손에는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렸다. 잠시 후 시현이는 마치 칼로 반듯하게 자른 것처럼 정해준 선까지 먹고 콘을 반납하였다. 그 후 수채화 그리는 속도가 급상승하였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한 시간 후, 드디어 우리 시현이가 작품을 들고 앞으로 왔다. 도화지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며 내가 물었다.
“이번에는 얼마쯤 지나면 엄마가 돌아오시냐?”
“잘 모르겠는데요.”
시현이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위로랍시고 말했다
“엄마 없이 얼마 정도 참을 수 있어?”
바보같은 질문이었다. 도대체 열두 살 아이가 엄마 없이 지낼 수 있는 날들을 어떻게 가늠한단 말인가. 그런데 의외로 시현이 대답은 명쾌했다.
“한 달요!”
“우와! 대단해!”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내가 어릴 때 외갓집에 간 엄마를 기다리던 기억이 났다.
“선생님은 어릴 때 사흘도 못 가서 징징 울었는데 한 달씩이나? 비결이 뭔데?”
아이 옆으로 바짝 당겨 앉으며 물어보았다. 정말 궁금했다. 엄마 없는 시간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 어른인 나도 모르는 정답을 아이가 알려 줄 것 같았다. 시현이는 내 마음을 아는 듯 싱긋 웃으며 답해 주었다.
“그냥 재미있게 놀면 되요.”
“아하!”
맞다. 맞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재미있게 놀면 된다. 엄마가 없다고 징징 울고만 있으면 안된다. 엄마가 올 때까지 잊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멀리 있는 엄마도 걱정을 덜 하신다. 열두 살 아이가 오십 줄 넘은 선생님한테 깊은 가르침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좀 슬프다. 이제 나는 오래 오래동안 우리 엄마를 잊고 살아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