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보너스

네가 나를 몰라 주어서 더 기쁜 어느 날

by 최형식

왁자지껄! 초등학교 급식소입니다. 아까 골마루에서 마주친 얼굴인데 새삼스럽게 뭐 그리 반가운지 얼싸안고 콩콩 뛰는 아이, 장애물 경기하듯 식탁과 식탁 사이를 신나게 질주하는 개구쟁이, 서로 마주 보고 금방이라도 한방 칠 듯 씩씩거리는 악동들, 참으로 각양각색입니다.


하지만 담임에겐 녹녹지 않는 시간입니다. 일렬로 늘어 선 아이들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질서유지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주로 매일 식전에 땅콩 배급을 합니다. 여기서 친구 밀치는 녀석 땅콩 하나 꽁!, 저기서 고함치는 땅콩 하나 꽁!, 코앞에서 까불대는 녀석 옛다 너도 하나 꽁! 무작위로 불쑥대는 녀석들을 향해 땅콩 세례를 날리는 내 모습은 오락기 앞에서 두더지 잡는 중년 남자 모습입니다.


점심시간만 되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진다는 경철이는 바로 내 앞에 서 있습니다. 경철이는 제 차례가 되면 식판을 들어 반드시 뒤에 있는 나에게 건네줍니다. ‘수저는 부모님이 먼저 들고 난 뒤 따라 들어야 한다.’고 가르쳤더니 ‘식판은 우리 선생님께 먼저 드리고 난 뒤 내 것 챙기기’ 를 실천합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식판 한 장은 아홉 살 제자가 날마다 건네주는 보너스입니다.


얼마 전에 경철이와 나 사이에 1학년 꼬마 하나가 샌드위치처럼 끼여 서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식판을 챙겨 들고 나에게 보너스를 주려던 경철이는 뒤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닌 걸 알고 멈칫하였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경철이는 들고 있던 식판을 동생에게 불쑥 내밀었습니다. 이제 친절함이 몸에 밴 것입니다.


아이들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는 마른논에 물 대는 소리처럼 흐뭇하다던가요. 만준이는 편식이 심한 아이입니다. 할 수없이 내 앞자리에 앉혀 놓고 골고루 먹기를 지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도 숟가락질이 영 시원찮았습니다. 맛있는 햄이나 고기반찬이 없으면 숟가락을 들고 세월아 네월아 코를 빼고 있었습니다. 내가 다그치자 조그마한 입에서 한 마디 합니다.

“선생님 안 먹으면 안 돼요?”

“안돼!”


하지만 여전히 깨작깨작 입을 오물거립니다. "김치는 코를 예쁘게 하고 햄은 눈을 크게 하고 시금치는 입을 예쁘게 한다. 그런데 네가 햄만 먹어봐라 어떻게 되겠냐? 코만 커지겠지? 얼마나 보기 싫겠냐?" 날마다 그렇게 지도 했는데 효과가 없습니다. 오늘은 보다 못해 기어코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요놈아, 반찬을 골고루 먹아야 한다 그랬지? “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야 선생님처럼 얼짱 되는 것이야."

그랬더니 요 녀석이 숟가락을 들다 말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봅니다. 그리고 따지듯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성형수술했잖아요!"


우와! 나는 하마터면 젓가락을 떨어뜨린 뻔했습니다. 내 생전 처음 들어보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릴 적 ‘우리 아들 뒤꼭지가 세상에서 최고 예쁘다’는 엄마의 칭찬 이후, 사십 년 만에 들어보는 외모에 대한 현란한 헌사였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들도 모르는 무심결에 상대방을 적어도 석 달 정도는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른들은 흉내도 못 냅니다.


그건 그렇고 그날 아이의 편식 지도는 잘했냐고요? 아이 참, 그 판에 미주알고주알 무슨 지도씩이나 합니까. 너무 좋아 입이 벌어져 안 다물어지고 목구멍에 밥이 안 넘어갈 판인데요. 더군다나 엄마 뱃속에서부터 성형하고 온 주제에 무슨 지도씩이나 합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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