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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Nov 16. 2021

돼지를 찾아서

내 삶의 소품 하나

창원 이모님이 또 오셨다. 이번에는 아예 며칠을 묵어가실 요량으로 옷 보따리까지 챙겨 오셨다. 나는 썩 반갑지 않았다. 우리 엄마의 친언니도 아니고 나이도 꼴랑 한 살 차이인데 너무 어른 노릇을 하려 해서 내심 못마땅했다. 순하디 순한 우리 엄마는 낮에는 삼시 세끼 따뜻한 밥을, 밤에는 늦도록 말동무해 드려야 한다.     


그날 아침만 해도 그랬다. 이모님은 눈뜨자마자 선심 쓰듯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척 꺼내 놓으며 “동생, 오늘이 장날 이제? 우리 삼계탕이나 해서 묵어보세”라고 하셨다. 자신은 허리가 안 좋다는 핑계로 꼼짝도 안 하면서, 이 더운 여름날 생닭을 사 와서 삼계탕을 만들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말씀인가. 내가 뭐라고 한마디 하려고 입을 달막 달막 하는데 엄마가 웃음으로 참아라는 신호를 보내는 바람에 그냥 집을 나섰다. 그런 갑갑한 날이면 교실에 꼭 무슨 일이 터진다.      


“선생님 돼지가 없어졌어요!” 

교실 문을 열고 들어 가니 아이들 목소리가 우박처럼 쏟아졌다. 교사용 책상 위에 복스럽게 웃고 있던 돼지 저금통. 십시일반 코 묻은 동전을 받아먹고 무럭무럭 자라던 돼지 저금통. 학년을 마칠 때 돼지 잡아 책거리를 하자던 희망이 사라지게 생겼다.

“모두 자리에 앉거라.”     


교실을 서성대는 아이들을 자리에 앉혔다. 그 속에 그 아이도 있었다. 나는 예정에 없던 훈화를 시작했다. 바늘 도둑과 소도둑 이야기를 말머리로 삼아, 도덕책에 나오는 정직한 생활을 복습시키고 평화로운 제안을 건넸다. 

"자, 지금부터 모두 눈을 감고 저금통을 가져간 사람만 살며시 손 들기."    

  

아무도 자백을 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 자백이나 물증이 없으면 반성도 교육도 없다. 나는 물증에 희망을 걸고 두 번째 과정을 밟았다. 

“가방과 호주머니에 있는 물건을 모두 책상 위에 올려놓아라.”     


하지만 돼지는 이미 누구의 손에 의해서 교실을 떠난 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지품 검사는 범인 색출이 아니라 무고한 아이들의 결백을 증명하는 요식행위이다.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벌써 세 번째다. 어떻게 하든 바늘과 소 사이 어디쯤에서 긴장하고 있는 그 아이를 구출해야 했다.   

  

그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니 삼계탕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먹는 동안 이모님은 아들이 사주었다는 건강기구 내놓고 목하 자랑 중이었다. 홈쇼핑에서 광고하는 고주파 치료기였다. 이모님은 겸사겸사 아들 자랑까지 곁들였고, 속 없는 우리 엄마는 마냥 웃으시며 장단을 맞추어주었다. 그때 뽀로통한 채 수저질을 하고 있던 내 머릿속으로 번개 같은 그 무엇이 바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튿날 아침 교실에서 엄숙하게 돼지 저금통에 대해 운을 뗐다. 

“선생님 친구 중에 한 분이 경찰서 형사님이시다.”

아이들 시선이 일시에 집중되었다. 그 아이도 움찔하는 눈빛이었다. 

“돼지 저금통은 우리 공동의 기쁨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돈뿐만 아니라 소박한 믿음도 함께 잃어버려서, 서로 의심하는 지경까지 왔다. 이래서는 안 된다. 그래서 선생님 친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나는 이제껏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대응을 발표하였다. 

"내일 아침 열 시에 형사님이 거짓말 탐지기를 가지고 오실 게다. 오늘 학교 마칠 때까지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최후통첩을 하고 반응을 기다렸지만 그 아이는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007 가방처럼 생긴 고주파 치료기 가방을 들고 학교로 갔다. 그리고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형사님이 갑자기 사건이 발생해서 못 오시게 되었다. 그래서 대신 장비만 빌려왔다.”


나는 가방을 열어 내부를 공개하였다. 복잡한 전선 끝에 센스가 부착되어 있고, 수치를 나타내는 다이얼을 돌리니 여러 색깔의 불빛이 반짝거리며 의미 있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진짜 형사처럼 말했다.     

“이제 선생님은 컴퓨터실에서 기다리겠다. 번호 순서대로 한 사람씩 들어와 센스에 손만 살짝 올려주기만 하면 된다. 협조 바란다. 이상.”      


출석번호 1번 아이가 컴퓨터실에 들어왔다. 나는 가방을 닫아 놓고 아이를 맞이하였다. 아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넌 정직하니까 검사받을 필요가 없겠다고 했다. 대신 부모님은 잘 계시냐, 공부는 할 만하냐, 요즘은 친구 사이는 어떠냐 등 개별상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2번 아이도 3번 아이도 또 그다음 번호도 모두 그런 식으로 진행했다.    

 

마침내 그 아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조용히 007 가방을 열면서 말했다. 

“네가 정말로 잘못이 없나?”

아이는 묵묵부답이었다. 나도 한참을 입을 닫고 있다가 말했다.

“네가 정직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더 이상 너를 도울 수 없을지도 몰라”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건 진심이었다. 아이 손이 가방 쪽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내가 아이 손을 잡아 센스 쪽으로 이끌었다. 아이가 화들짝 놀라며 얼른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너도 이 검사 안 받고 싶제?”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상담은 미끄럼 타듯 빠르게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교탁 위에 가출했던 돼지가 돌아와서 활짝 웃고 있었다. 아이는 범인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나도 쥐가 물고 갔다가 돌려주었는지, 고양이가 가지고 놀다가 제자리에 갖다 놓았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저  책거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그날 이후 그 아이는 착하고 반듯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한동안 '최형사'라는 별명으로 불려졌다. 벌써 오랜 일이지만, 빨간 돼지 저금통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작은 소품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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