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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Jan 21. 2022

야바위와 도둑 기차

누군들 가출을 꿈꾸지 않으랴.

누군들 한 번쯤 가출을 꿈꾸지 않으랴. 그해 가을, 나는 자취방에서 가출했다. 공동 수도를 빙 둘러싸고 여섯 개의 자취방에서 살던 자취생들 그 누구도 내 이탈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날 왠일인지 내가 농촌 출신의 공업고등학교 자취생이라는 운명에 울컥해, 마침 고향에서 부쳐온 월세와 한 달 생활비를 들고 부산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마음으로 절을 올렸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반드시 큰 놈이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보니 내가 가출이 아니라 출가하는 느낌이 들어 비장해졌다.

      

드넓은 부산 역 광장, 열여덟 살 청춘은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 인파 속을 서성대고 있었다. 나는 터벅터벅 시내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역 광장 한편에 남자들이 어깨를 맞대고 무엇인가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른들 틈새로 얼굴을 밀어 넣었다. 돈 놓고 돈 먹기. 말로만 듣던 야바위 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과박스를 세로로 세워 놓은 듯한 작은 탁자 위 보를 깔아놓고, 그 위에 하얀 종지 세 개를 엎어 정신없이 위치를 바꾸어가다가 멈춘다. 간단하다. 세 개의 종지 중에서 주사위가 들어있는 곳에 돈을 거는 사람이 판돈을 쓸어가는 것이다. 


어깨너머로 가만 보니, 주사위가 어떤 종지 그릇에 숨어 달그락거리는지 감이 잡혔다. 내가 봐도 알 수 있는데, 사람들은 자꾸 엉뚱한 곳에 돈을 걸고 툴툴거렸다. 답답했다. 그런데 지나가다가 끼어든 어떤 사람은 돈을 거는 족족 따갔다. 그가 돈을 건 곳은 내심 나도 찍었던 곳이었다. 슬슬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어느새 주머니에 있는 지폐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빈털터리가 되었다. 


아차! 싶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월세와 생활비는 물론 손목에 차고 있던 내 시계마저도 넘어간 후였다. 하늘이 노래졌다.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아저씨, 개평 좀 주면 안 됩니꺼?”     

나의 슬픔과 아랑곳없이 어른들은 서로 눈빛을 보내며 피식 웃었다. 그들은 모두 한 편이었다. 날치기, 바람잡이, 야바위 사기꾼들. 그들은 점점 흥분하는 내 심리를 꽤 뚫고 슬금슬금 판을 정리하였다.  나는 그중에서 그나마 순해 보이는 아저씨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아저씨요. 차비라도 좀 주이소."


순해 보이는 아저씨는 나를 말리는 척 떼어 놓더니, 순식간에 좌판을 말아 들고 달아났다. 그들은 뒤를 따르는 내게 주먹을 휘두르며 따라오지 말라고 협박했다. 나는 부산에 도착한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무일푼이 되었고, 여전히 역 근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배는 고프고 날은 저물고 갈 곳마저 없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때 길가 레코드 방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필리핀 가수가 부른 '아낙' 이라는 노래를,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 씨가 불러 히트한 번안곡 ‘아들’이었다. 


♪ 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네가 태어나던 그날 밤

우린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지

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천사 같은 너의 모습을 

우린 언제나 보고 있었지 

밤새 엄마는 너에게 우유를 따뜻이 데워 주셨지

낮엔 언제나 아빠가 네 곁을 감싸며 지켜 주었지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너도 이제 후회하겠지

엄마는 언제나 울고만 계신다

너도 이제는 후회의 눈물이 두 눈에 고여 있겠지

너도 이제는 후회의 눈물이 두 눈에 고여 있겠지 ♪         

 

마치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애타게 돌아오라 말하시는 것 같았다. 길가 가로수를 잡고 꺼이꺼이 울었다. 나는 어두워질 때를 기다렸다가 역 개찰원의 눈을 피해 도둑 기차를 탔다. 그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내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비장했던 출가는 어리버리 했지만, 귀가는 비교적 신속하고 정확했다. 야바위와 히트송 그리고 도둑 기차 덕분에.




* 브런치에서 함께 하고 있는 '블루애틱' 작가님께서, 가족이 위급한 상황이라 도움을 청합니다.  

   바쁘신 중이라도 잠시 아래 링크를 보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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