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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Feb 17. 2022

서면시장 칼국수

젊은 시절 풍경 하나

서면시장 뒷골목에 가면 30년 전 내가 있다. 그곳에 가면 행인이 뜸한 이른 아침 서면 4거리에 통근버스가 도착하고, 밤새 금속 공장 2교대 야간 근무를 마친 내가 하품을 하면서 내린다. 나는 북구청 옆 낡은 건물 4층에 있는 독서실로 바삐 걸었다. 그곳에서 월 이용료를 끊고 씻고 자고 공부했다. 그리고 점심때가 되면 독서실 계단을 내려와 서면시장 먹자골목으로 갔다. 내가 잡고 일어설 수 있는 끄나풀은 공부뿐이라고 생각했다. 내 나이 스물둘이었다.

      

시장 뒷골목 칼국수 집에는 뜨내기 손님보다 단골손님이 더 많다. 주인 아줌마는 단골 손님에게 뜨내기 손님보다 훨씬 가늘게 면을 썰고, 멸치를 우려낸 국물을 넘치도록 부어 주었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대접을 받는 일은 언제나 설렌다. 나는 단골집을 배신하지 않는 총각. 줄줄이 늘어선 칼국수 집 중에서 여섯 달 동안 매일 그 집에만 갔다. 젊은 날 소박한 점심 식사는 값싸고 맛있는 칼국수 덕분에 서글프지 않았다.

       

10년 후, 나는 새 직장을 얻어 출근을 앞둔 어느 날 좁은 골목을 지나 그곳을 찾아갔다. 긴 나무 의자도 큰 누님 같은 단골 가게 주인아줌마도 그대로라서 무척 반가웠다. 낯선 사람들이 어깨가 닿을 듯 옆으로 나란히 앉아서 한 끼 식사를 나누는 모습도 여전했다. 나는 칼국수 한 그릇을 받아 들고 감회에 젖었다.     


아줌마에게 “혹시 십 년 전, 한동안 매일 점심때마다 칼국수를 먹으러 오던 총각을 기억하느냐”라고 물어보았다. 아줌마가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하긴 그 시절 매일 점심을 칼국수로 때운 젊은이가 어디 나뿐이랴. 나는 웃으면서 그때 멸치 장국 칼국수 덕에 내 젊은 날 점심 식사가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 후 10여 년이 더 지났다. 그런데도 부산에 가면 골목 시장에서 혼자 칼국수를 먹는 청년이 생각이 났다. 그 추억은 늘 흐리고 우울하게 다가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서면시장 칼국수 골목을 찾기로 했다. 시장은 어수선했고 행인도 뜸했다. 칼국수 가게는 장사가 잘 안 되는지 전에 없던 주류와 안주 거리도 내놓고 함께 팔았다. 큰 누님 같던 주인아줌마는 허리가 약간 굽은 초로의 노인이 되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예전처럼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분도 중늙은이가 되어버린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잠시 후, 내 몫의 칼국수와 깍두기가 나왔다. 스물두 살 내 청춘도 어딘가에 홀로 앉아 있는 듯하여 쓸쓸했다.  아줌마는 바쁘게 반죽을 밀고 썰고 채로 건져냈다. 그러면서도 새로 온 손님을 웃으며 맞이 하였다. 나도 용기를 내어 마지막 남은 칼국수 국물을 단숨에 후루룩 마셔 넘겼다. 이제 다시는 연민으로 내 젊은 세월 언저리를 서성거리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시장 골목을 걸어 나왔다.     


내가 서면시장 골목 칼국수 가게를 찾았던 것은 추억 때문이 아니었다. 젊은 날 혹독한 외로움이 내 가슴 깊이 멍울져 있어서였다. 등 뒤로 낯선 사람이 지나가는 나무 의자에 앉아 혼자 칼국수를 먹던 나를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다. 젊은 나와 늙은 나는 좁은 시장통을 함께 나섰다. 길가 가로수에서 가지를 잡고 앙버티던 마른 나뭇잎 하나가 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떨어졌다. 나는 그 야위고 외로운 총각의 어깨를 한 손으로 감싸 안고 씩씩하게 걸었다. 큰길이 보였다.  


<사진 출처: 박익서님 카카오 스토리, https://story.kakao.com/_CGnZ87/hIcF0qs1C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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