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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Jan 06. 2022

초핀을 아십니까

고상하고 싶었던 젊은 날 초상

학기 초, 우리 교실에 오디오 세트가 들어왔다. 서울에서 중고 오디오 점포를 내고 혼자서 사장 영업 배달까지 다 하는 친구가 시골 아이들을 위해 기증한 것이다. 자신의 표현대로 '오디오쟁이'인 그 친구는, 우리 반 수업이 다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비석만한 스피커 두 개와 검은색 앰프 그리고 시디플레이어를 설치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좋은 음악 많이 들려주라는 공손한 협박을 남기고 선걸음으로 서울로 돌아갔다.


퇴근시간이 지나고 학교가 텅 비게 되자, 나는 창문을 닫고 천천히 오디오 볼륨을 올려 보았다. 역시 카세트로 듣는 것과는 달랐다. 교실 바닥에 묵직하게 깔리는 저음에서 사방으로 부딪쳐 날아다니는 듯한 유쾌한 고음, 그리고 교실 창문을 날려버릴 듯 박력 있는 음향은 무딘 사내 가슴을 제멋대로 주물럭거렸다.


며칠 뒤 그 친구로부터 택배가 왔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들을 만한 음악 시디가 부족한 것 같다면서 초등학생용 클래식 등을 시디 꽂이와 함께 부친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보낸 것 중 딱 한 장의 음반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쑥스러운 나의 과거사를 떠올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세상에 그렇게 매혹적인 선율이 있었다니! 나는 깜짝 놀랐다. 만약 천상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면 분명 그러하리라. 스무 살 청년 가슴 깊은 곳에서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온몸을 짜르르 휘감았다. 라디오 진행자는 그 곡이 쇼팽이 작곡한 피아노 연주곡이라고 했다.


다음 날, 공장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쇼팽을 만나러 레코드점을 찾아갔다. 그런데 실로 오랜만에 만난 클래식들은 너무나 도도하게 날 맞이하였다.  나는 굳게 입술을 닫은 베토벤 얼굴과 영민함이 넘쳐 장난기가 느껴지는 모차르트 그리고 읍내 미용실에서 금방 파마를 하고 나온듯한 쇼팽의 헤어스타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클래식 음반집은 한결같이 작곡가와 아무 관련이 없는 무슨 악기 그림이나 풍경 사진 또는 심심한 정물화 등으로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한글로 표기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 꼬부랑글씨로 되어 있었다. 혹시나 해서 살펴본 음반 뒷면은 더 어지러웠다. 따라 읽을 수조차 없는 복잡한 서양 글만 가득했다.

나는 잔머리를 굴렸다. 베토벤 이름의 영문 첫 자는 'B'자로 시작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매장 위에 베토벤 음반이 금방 눈에 띄었다. 더듬더듬 읽어보니 베토벤(Beethoven)! 그러면 모차르트는 당연히 'M'이 아니겠는가. 옳거니! 모차르트(Mozart) 음반이 내 눈에 쏙 들어왔다. 그렇다면 쇼팽은 분명 'S'. 나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런데 쇼팽은 없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쇼팽이 없다니. 한 번 더 눈을 부릅뜨고 영문자 'S'에 집중했지만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낯선 'S'들만이 어지러이 눈에 띌 뿐이었다. 'Stravinsky, Salier….' 온통 생면부지의 이름들이었다. 겨우 'Schumann' 슈만만이 나를 위로했다. 그런데 이거 또 뭐람. Suppe… 수페? 소페?


진열대 앞 방황은 점점 더 깊어 갔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낯선 작곡가 속에서 나는 점점 풀이 죽었다. '초핀(Chopin)'이라는 작곡가가 특히 그랬다. 이름도 금시초문인 이 양반 음반은 베토벤과 모차르트와 같은 반열임을 증명하듯 진열대 가득 음반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학창 시절을 떠올려봐도 초핀은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쇼팽과 발음이 비슷한 '수페'를 들고 한참 망설였다. 레코드 방 주인장에게 자문을 구해 볼까? 그러나 만약 그것이 쇼팽이 아니라면 나는 마치 '남진' 카세트 테이프를 들고 "이거 나훈아 꺼 맞지요?" 하는 꼴일 테고, 혹 그가 나처럼 고전음악에 문외한이라면 "이 양반이 지금 날 테스트하는 겨?" 하고 화를 낼지도 모를 일이다. 묻지 않았던 것이 잘한 짓이었다. 훗날 알고 보니 '수페'는 쇼팽과 사돈팔촌 사이도 아닌 '주페'라는 작곡가였다.


나는 더 이상 진열대에서 쭈뼛거릴 수가 없었다. 쇼팽이 아마 우리나라 음반협회에서 판금 당했거나 한국 대중에게 인기 없는 서양 작곡가일 것이다. 분명 그 둘 중 하나일 것이라는 나름대로 홀가분한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래서 쇼팽 대신 남진 최신 히트가요 카세트 테이프 하나를 달랑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있어서, 나는 찜찜했던 나의 무지몽매함에 혀를 내둘렀다. 바로 그 문제의 '초핀'이 내가 애타게 찾던 '쇼팽'임을 알게 된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쇼팽을 영문자 'Chopin'이라고 표기할 줄 꿈에도 몰랐다. 아니 어떻게 'Chopin'을 쇼팽이라고 읽을 수 있단 말인가? 길을 막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고 싶었다.


곤혹스러웠다. 이를테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미모의 여인에게 말이라도 걸어 볼 요령으로, 허겁지겁 차에서 내렸으나, 이름모를 여인은 이미 인파 속으로 홀연 사라져 버린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그 후 오랫동안 클래식에 관해 선 입을 봉하고 살았다. 시쳇말로 생뚱맞다 하기엔 나름대로 고상했고, 촌스럽다고  하기엔 꽤나 진지했던 풋총각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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