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고, 모두 같은 마음이다.
운전을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고 없이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가길 원한다.
베테랑 운전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운전을 하면서 차와 도로의 흐름에 대한 감각이 몸에 각인된다.
따라서 자동적으로 몸이 운전에 대한 감각을 기억해 인지적인 노력이 없이도 자연스럽게 운전을 할 수 있다.
또 차량의 흐름과 도로의 상황을 빠르게 읽고 그에 적합한 차선 바꾸기와 속도도 조정할 수 있다.
반면 초보 운전자들은 운전대를 잡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요동친다.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으면 차가 앞으로 나가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두렵다. 어느 정도 깊이로 페달을 밟아야 하는지 영 감이 없다. 끼익 끼익 차가 요동치면 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린다.
앞차와의 거리를 조정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차선을 변경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차선 변경을 하지 못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다는 말은 왠지 구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초보 운전자와 베테랑 운전자를 넘어 각각의 운전자들은 모두 다른 삶의 배경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
운전대를 잡기 이전에 그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운전을 하는 동안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고 불안이 높은 사람은 뒤에 오는 차를 과도하게 신경 쓰며 운전을 한다.
혹시 내가 뒤차를 가로막고 있지는 않는지, 아니면 뒤차의 속도에 맞춰서 더 빨리 달려야 하는지 걱정을 하다 보면 긴장과 불안감이 더 높아진다. 그렇게 운전하는 내내 불편함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긴장을 많이 한 탓에 갑자기 차량의 흐름이 바뀌거나 뭔가 자신의 흐름에 거슬리는 상황이 생기면 버럭 화를 낸다.
자신의 안전을 위협했다고 느끼면 창문을 열고 쌍욕을 하거나 시끄럽게 경적을 울린다.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오직 앞만 보며 가기도 한다. 뒤에서 차가 바짝 붙어오든, 옆에서 차가 깜빡이를 켜고 들어오든 오직 자신의 길만 간다. 밖에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이웨이로 쭉 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로 인해, 혹은 서로의 과실로 인해, 온전히 타인으로 인해 사고가 난다.
그러면 각자만의 방식과 가치관에 따라 서로를 대하게 된다.
그러나 사고가 났을 때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다.
사고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쩌면 모두가 사고가 나지 않게 나름 자신만의 방법을 사용하여 각자의 상황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불안한 사람도 쌍욕을 하는 사람도 혼자만이라도 잘해보려 했던 사람도 모두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말이다.
모두가 각자의 삶의 배경과 위치에서 사고가 나지 않길 바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의 대처 방식도 조금은 달라 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모두가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가고 싶지만 자신만의 운전 방식이 상황에 따라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래서 나의 운전 방식을 조금은 다르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 인생길에서의 운전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안전하고 편안해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