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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미

나를 더하는 힘

by 쓱쓱

고등학교 마지막 학교 수련회를 앞두고 첫째가 미용실을 예약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고수해 왔던 큰 딸은 자유롭고 힙한 스타일을 추구했고 중학교 때에는 노랗게 부분 탈색을 하기도 했다.


춤을 사랑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인 큰 딸은 특히 이번 학교 수련회에 사활을 건 듯 보였다.

수련회 장기자랑을 위해 반 아이들과 몇 달 전부터 춤 그룹을 결성했고 K 고2라는 위치가 무색하게 맹훈련을 하러 다녔다.


학교 수업과 미술 입시와 교회 활동 등으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틈틈이 학원을 빼고(?) 친구들과 시간을 맞춰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한 번은 밤 11시가 넘어 끝난 연습으로 우리 집 행 버스가 끊겨 따릉이를 타고 오기도 했다. 다음날 종아리가 터질 것 같다며 어그적 걷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그렇게 대망의 수련회가 다음 주로 다가왔기 때문에 딸은 좀 더 힙한 느낌으로 장기자랑 무대에 서기 위해 미용실을 예약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댄스 연습 전에 다녀오겠다며 카드를 들고 갔던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웅~ 딸~"


한 마디 했을 뿐인데, 전화기 넘어 딸의 대성통곡이 들렸다.


"아아아아앙...... 엄마.....!!!"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아아아앙.... 아아아앙... 엄....마.... 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놨어.... 완전 단발로 만들어 놨어....!!!"


하아..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도 참...


미용실에서 나와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큰딸은 엉엉 울었다. 다 큰 처녀가 무슨 아이처럼 대성통곡을 하며 걸어오는 모습을 상상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조금 웃기기도 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머리가 너무 길고 지저분해서 길이를 가슴선에 맞춰서 층을 좀 많이 낸 스타일로 잘라달라고 요청했으나, 담당 미용사분이 뒷 머리를 가슴에 맞춰서 머리를 싹둑 잘라버린 것이다.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듯 우는 딸을 연신 달래며 일단 빨리 집으로 오라고 했다.


집에 도착한 딸의 모습을 보니...


얌전하고 참하고 순수한 한 여학생이 있었다.

많이 짧아지긴 했지만 단발까지는 아니었고 어깨선 안으로 내려오는 길이였다.

엄마의 입장을 떠나 솔직히 단정하고 청순한 느낌에 전 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지만 여전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엉엉 우는 딸에게는 영 통하지 않았다.


함께 있던 짝꿍도 니가 너무 속상해해서 미안하지만, 솔직히 훨씬 잘 어울린다고 거들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큰 딸은 내 품에 안겨 그렇게 한 참을 더 울었다.

미용사의 부주의와 자신의 요청에 대해 최소한의 확인도 하지 않고 머리를 그냥 잘라버린 무신경함과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길이의 머리와 스타일에 대해 폭격기처럼 쏟아냈다.

다음 주가 대회인데 머리를 이모양을 만들어놨다면서 또 격해져 울었다.


그러다 지쳤는지 방으로 들어가서 괜찮은가 봤더니,

아예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나와 방문을 닫아 주었다.

스스로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는 걸 익히 알기 때문이었다.


한 참 뒤 딸이 방에서 나왔다.

퉁퉁 부은 눈으로 터덜터덜 걸어와 다시 내게 안겼다.


그렇게 속이 상했냐고 물으니 이건 또다시 울음이 시작될 판이었다.

물론 너의 마음엔 안 들겠지만 그래도 잘 어울린다고 계속 이야기를 해 주자 딸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내 추구미가 아니라고!"


자신에게 잘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잘 어울려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추구하는 형태의 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만의 기준과 취향이 뚜렷하고 그것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딸을 보며,

자시만의 추구점이 타인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 그토록 원통하고 슬픈 일로 여겨지는 딸을 보며

그렇게 1시간을 넘도록 울며불며 상실한 머리카락에 대해 애도하는(?) 딸을 보며


나는 몰래 웃었다.

삶을 살다 보면 나라는 자기감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가 고수해야 할 것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유연성이라는 명목 아래 가끔은 너무나 쉽게 나를 용해시킬 때가 많다.

나를 온전히 나일 수 있게 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한 신념이 필요할 때마다

나는 큰 딸의 눈물과 그 아이의 추구미를 떠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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