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침엔 김동률의 '감사'
아침에 함께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짝꿍이 말했다.
"아, 이 순간은 딱 김동률이다."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린 여름이 끈질기게 공기를 데우고 있었지만, 유리창 밖은 그럼에도 명백한 가을 아침이었다.
첫 곡은 김동률의 '감사'.
눈부신 햇살이 오늘도 나를 감싸면 살아있음을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부족한 내 마음이 누구에게 힘이 될 줄은 그것만으로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그 누구에게도 내 사람이란 게 부끄럽지 않게 날 사랑할게요.
단 한순간에도 나의 사람이란 걸 후회하지 않도록 그댈 사랑할게요.
이제야 나 태어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요.
그대를 만나 죽도록 사랑하는 게 누군가 주신 나의 행복이죠.
그 어디에서도 나의 사람인 걸 잊을 수 없도록 늘 함께 할게요.
단 한순간에도 나의 사랑이란 걸 아파하지 않도록 그댈 사랑할게요.
이제야 나 태어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요.
그대를 만나 죽도록 사랑하는 게 누군가 주신 내 삶의 이유라면
더 이상 나에겐 그 무엇도 바랄 게 없어요.
지금처럼만 서로를 사랑하는 게 누군가 주신 나의 행복이죠.
대학시절 내내 내 주변에는 김동률의 목소리와 음악성에 빠진 마니아들 많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김동률의 노래는 마치 공기처럼 항상 내 주변에 존재했던 것 같다.
덕분에 나도 그의 감성에 흠뻑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시기가 있었다.
속삭이듯 시작해서 절규하듯 쏟아내고 이내 살뜰히 감성을 어루만지며 긴 여운을 남기는 그의 음악 세계는 매번 가슴속에 독특한 파장을 남겼다.
특히 그의 가사는 담백하다 못해 날것처럼 순수했고 그럼에도 전혀 진부하지 않았으며 마음을 울리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딱 그의 가사처럼 말해주고 싶었고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면 딱 그의 가사처럼 내게 속삭여주길 상상하며 마음이 붕 떠오르곤 했다.
그렇게 20대를 지나 중년에 이른 지금 김동률의 감사는 한층 더 깊고 무게감 있게 다가왔다.
아침에 눈을 떠 오늘도 내가 살아있음을, 나에게 새로운 하루가 주어졌음 감사하는 이유가 바로 당신 때문이며
당신에게 나의 연약하고 부족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한 일이며
무엇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모두 당신 때문이라는 고백.
그러니 내 전부로 당신을 사랑하겠다는 고백.
당신과 죽도록 사랑하는 게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이며 그것 외에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고백.
누군가를 이토록 무조건적으로 강렬하지만 한결같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자기애를 뛰어넘는 삶의 궁극에 도달하는 경험일 것이다.
자칫 내가 사는 이유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이 위험한 일이 될 것 같은 걱정이 든다면 그건 어쩌면 아직 충분히 자신이 단단하지 못한 상태이거나 자신의 내면의 뿌리가 약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누군가를 자신보다 더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훨씬 더 높은 차원의 숭고한 영역이며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자기와 꽉 찬 에너지가 필요하다. 때문에 그도 당신을 죽도록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겠다고 한 것이다.
무엇보다,
모든 것이 당신이 내게 뭔가를 해 주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내 삶의 이유가 되어주어서 감사하다는 관계와 감사의 본질을 명확히 짚어낸 그가 새삼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가을 아침, 창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짝꿍과 함께 노래를 부르다 서로를 마주 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씨익 웃으며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긴 눈빛을 주고받았다.
깊은 속에서 무언가가 차오르며 마음이 붕 떠올랐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모두 이룬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