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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해야 한다.

빠져나가려면

by 쓱쓱

여기 깜깜하고 긴 터널 속에 갇힌 한 사람이 있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

너무나 간절히.


하지만 터널 속 깊은 어둠은 그에게 원초적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은 무력감과 절망감으로 그를 잠식하며

무엇보다 갇혀있다는 느낌이 그의 몸과 마음을 옥죄여 주저앉게 한다.


그는 뒤돌아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어 보인다.

뒤돌아 간다고 해서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다고 앞으로 계속 전진한다고 해서 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얼마만큼 와 있는지, 얼마만큼 더 가야 하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모든 가능성이 단단히 차단된 것처럼 견고하게 그를 둘러싸고 있다.

어둠과 고독과 불안과 공포가 한꺼번에 웅집 되어 거대한 그림자를 만든다.

실체인 그를 넘어 비대하게 몸집을 키운 거대한 그의 그림자가 천천히 그를 삼키려고 한다.

그의 발에서부터 천천히 다리와 허리를 지나 가슴과 목까지 기어 올라올 때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순간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태어나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들숨과 날숨의 반복이 어색해진다.

쉼 쉬는 방법을 잊는 자처럼 제멋대로인 호흡이 그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그러다 그 순간,

단 하나의 생각에 이른다.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


유기체적 생존 본능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에게 외친다.

살아야 한다.

그러니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


그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가까스로 되뇐다.

공기는 충분하다.

어둠은 익숙해진다.

터널의 시작은 결국 끝이 있다는 증거다.


한발 내딛을 때 들숨, 다른 한 번을 내딛을 때 날숨을 내쉰다.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는 통과 중이다.

여전히 어둠과 고독과 불안과 공포가 그에게 매달려 있다.

들숨과 날숨의 반복을 힘겹게 유지하며 그는 한발 한발 천천히 내딛는다.

통과하는 과정은 고통스럽기 그지없어서 그대로 놓아버리고만 싶다.


하지만 그는 계속 내딛는다.

빠져나가려면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통과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 빠져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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