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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은 아니지만 소중해

나팔꼿의 전세살이

by 쓱쓱

지난봄 어느 날 베란다에 놓여있던 화분 하나에 나팔꽃 줄기가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그저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며칠이 지난 어느 순간 어느새 바로 옆 화분에 꽂아 둔 막대기를 돌돌 감으며 정신없이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더 두고 보니 그저 감아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내 당당하게 잎을 틔우며 존재감을 뽐내더니 이윽고 동그란 꽃몽우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버젓이 주인이 있는 땅에 무슨 배짱인지 무단 침입도 모자라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그 당당함에 기가 차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기어이 해내고야 마는 그 생명력에 가슴이 저릿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여기 이곳에 있기까지 나팔꽃의 스토리가 궁금해졌다.


바람에 실려 하늘을 여행하는 동안 자신이 시작된 곳도 끝을 맺어야 할 곳도 알지 못한 채 부유하던 꽃씨는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분명 길지 않았을 바람의 여행을 하는 동안 마주쳤던 그 모든 풍경과 대상들을 보며 과연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한치도 예측할 수 없는 순간순간에 기대와 두려움 사이를 오가며 어쩌면 꽃씨는 조금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울다 어느 순간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했을지도.


왜,

무엇을 위해,

나인건지.


한 번도 원한 적 없던 나팔꽃의 씨앗이 되어 18층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 도착했을 땐 머리보다 본능이 빠르게 움직이며 흙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생명의 경향성은 언제나 한결같다.


최선을 다해 그저 살아가는 것.

나팔꽃으로써의 실현 경향성을 최대한 발현하며 살아가는 것.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밀어 올리고 마침내 꽃을 피우며 또 다른 기회의 열매를 맺는 것.


반겨주는 이 하나 없어도 그 순간 할 수 있는 것을 그저 해내는 것이

결국 나인 이유일 수 있다면 모순 같지만

전혀 메인이 아니면서도 저토록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는 걸 보면.


왜,

무엇을 위해

나팔꽃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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